시대불명 운동회

단상 Vorstelltung 2012. 9. 24. 15:0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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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지난 토요일에 있었다. 가보니 지역잔치라고 할 만큼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었다. 운동회라는 건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가본 색다른 풍경이다. 9시 넘어 학교에 도착했을 때 유치원생을 포함해 초등 전교생이 운동장에 사열되어 있는 걸 보고 저런 건 도대체 변하지 않는구나 하면서 욕설이 나왔다. 길게 이어지는 내빈들의 인사말, 도대체 언제까지 아이들은 어른들을 위한 사병인가? 병영문화와 위계구조로 구획된 교육공무원들에게 아이들은 변함없는 먹잇감인 셈이다. 아무튼 시작은 실망스러웠지만 운동회 프로그램은 그나마 구태의연함을 벗어났다. 사실 그들이 건드릴 수 있는 건 이런 부분일테니까.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춘 청백 댄스 대항전은 운동장의 흙먼지까지 자욱히 일으킬 정도였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잘도 흔들어 대는 광경은 미디어가 점령한 거실문화의 일면이기도 하다.  감기에 걸려 이리저리 몸이 안좋은 나날이었다. 이병주의 <지리산>에서 병든 하영근이 우렁차게 떡을 목구멍에 쳐 넣는 두 수재 청년에게 세계를 정복하려해도 일단 건강하고 볼 일이이라고 하듯이, 무슨 일을 하려해도 건강하고 볼 일이다.   

 

                                                       밀, <정치경제학> 중 '정지상태에 관하여'(녹색평론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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