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적 원인으로서의 자유

칸트 Kant 2010. 5. 17. 13:5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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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게서 이념은 현상에 적용되지 않음으로 인해, 사유의 형식인 범주보다도 비실재적이지만, 어떠한 경험적 인식도 도달할 수 없는 완벽성을 함유하고 있다(B595). 이러한 이념의 심원한 궤적을 인도하는 것이 이성의 규제적 사용이다(주1). 『순수이성비판』의 <선험적 변증론> 중 “제 4 이율배반의 해명”을 다루면서 칸트는 이성의 규제적 원리가 고려할 두 가지 과제를 제시하는데, 첫번째는 세계 내의 모든 것이 경험적으로 제약된 실재(empirischbedingte Existenz)를 가질 뿐, 무제약적 필연성은 없으며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계열의 근거로서 가상적 존재(intelligibelen Wesen)가 상정된다고 말한다(B590). 여기서 ‘가상적’이라는 용어의 선택과 관련해 칸트는 바로 앞서의 ‘제 3 이율배반의 해명’을 다루면서 자유 행위를, 이것의 인과성과 관련해서 가상적 원인(intelligibele Ursache)이라고 말한다(B586). 그렇다면 이 가상적 원인은 자연세계의 인과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성의 규제적 원리가 고려할 두번째 과제, 즉 전 계열의 근거로서 가상적 존재가 상정되는 바처럼, 인과의 계기로 물려있는 자연세계에 자유의 계기가 시원적 원인으로 상정될 수 있는가? 이 두 번째 물음은 제 3 이율배반의 정립 측 명제와 동일하다. 그러나 자유와 자연필연성의 제약은 각기 독립적이면서 상호 불간섭적이다(B586). 자유라는 가상적 원인과 경험의 계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칸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가상적 존재를 허용했다 하더라도 이성의 경험적 사용은 영향을 받지 않고...이와 마찬가지로 규제적 원칙도 이성의 순수한 사용이 문제일 경우에, 계열 중에는 없는 가상적 원인의 상정을 배제하지 않는다. 실로 가상적 원인은 이 경우에 감성적 계열 일반을 가능케 하기 위한, 우리에게 선험적인, 알려지지 않은 근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근거의 실재는 감성적 계열의 모든 제약에서 독립해 있다”(B592)(주2)  

칸트는 이런식으로 현상으로서의 자연과 가상으로서의 자유의 사이를 명확히 구분지으면서도 관련시키는 복잡한 논의를 <선험적 변증론> 편 곳곳에서 반복적이고 변형된 형태로 진행한다. 그러나 점차로 그가 자유에 무게중심을 두어가는 논의는 『순수이성비판』의 후반부인 <선험적 방법론> 편에서 두드러진다. 여기서 칸트는 이념으로서의 가상적인 도덕세계는 감성계에 영향을 미치며(B836), 자연의 최후의도는 이성이 도덕을 지향하도록 하는데 있다(B829)고 말한다(주3). 『실천이성비판』을 직접적으로 예고하는 이런 논의는 인과성에 대한 명확한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이는 이성이 자연전체에서 체계적인 자연통일을 위한 원인성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자유일반에 관한 원인성은 가질 수 있다(B835)는 것이다. 즉 이론이성의 대상인 자연에 대해서 우리는 인과계열로 설명할 수 밖에 없지만 이 계열을 완결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도덕의 세계에서는 문제가 전혀 달라진다. 도덕적 행위의 제 1원인은 바로 자유이기 때문이다. 즉 자연의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실천적 자유는 의지를 규정함에 있어 이성의 원인이며(B831) 이때의 순수이성은 이론이성에서와는 달리 객관적 실재성도 지닌다(B836). 자연에서는 결코 상정될 수 없는 제 1의 원인이 도덕의 세계에서는 자유로 정립되는 것이다.


각주

주1)이성의 규제적 사용의 원칙은 오성의 인식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탐구의 전제이지 실체적 원인이 아니다. 즉 이 원칙은 자연법칙에 따라 이성의 경험적 사용을 무한히 확장하기 위한 것이면서도(B708) 자연에 관한 실체로서의 구성적 원리가 아니라 전제이다(B721). 또한 이성의 규제적 사용의 원칙은 보편법칙에 따른 자연의 기계적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지 미리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B719-720). 한편 태만한 이성이란, 인과계열상 절대적 전체성은 미정이기에 인과계열의 추구를 중단하고 초자연적 이념에서 안식하려는 것이다(B801).

주2)칸트, 최재희 역 『순수이성비판』(박영사, 1997), p425.

주3) 자연의 이러한 개입은 칸트의 역사철학에서 더욱 명시적으로 주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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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실천이성비판』 서문에서, 도덕법칙의 연역이 불필요한 외적 조건은, 이성의 실천적 사용이 이성의 이론적 사용과는 달리 당장의 행위를 위해 요구되는 조건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A7)(주1)
. 여기서 이론이성과 구분되는 실천이성의 극명한 차이는 행위에서 드러나는 데, 이것은 이론이성에서는 문제이었던 것이 실천이성에서는 확정된다는 것이다(A7). 즉, 칸트는 가상적인 그의 논적들에게 이론이성으로 신의 존재, 자유,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식의 반어적 어법으로 자문하는데, 이러한 이념들은 도덕적 사용에서 정초될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확정적 응답이다(A7).

칸트에게서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이 각각 대상으로 삼는 자연세계와 도덕세계는 구분되면서도 양립가능하다고 할 때, 이 ‘양립’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판단력비판』에서 동일한 상태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의미의 취미판단 논의와도 상관있지만 다른 맥락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유에 의한 근본원인의 규정은 오직 도덕세계에서만 가능하지만, 이 도덕의 세계 내에서와 자연의 세계 내에서 공통적으로 추론의 인과계열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양립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고 존재를 가정하는 권리는 만물의 체계적 연관을 위해 인과성에서 유추한다고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밝혔듯이(B728), 범주는 두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논리적 도구상자다. 이러한 추론의 인과성은 칸트의 도덕철학에서도 볼 수 있으며, 그 형식화의 절정은 『도덕형이상학』에서 이루어진다.  

『실천이성비판』의 분석학 1장의 1절 “순수실천 이성원칙들의 연역” 절에서 칸트는 순수이성이 경험으로부터 독립해 의지를 규정하는 실천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것도[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순수이성의 의지 규정], 우리에게 있어서 순수 이성이 실천적임을 입증하는 사실에 의거해서, 즉 의지를 행위로 규정하는 윤리성의 원칙 안에 있는 자율에 의거해서 말이다.-또 분석학이 동시에 제시하는 바는, 이 사실은 의지의 자유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아니 의지의 자유와 한가지이며, 그럼으로써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는, 감성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는, 다른 작용하는 원인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인과법칙에 종속함을 인식하되, 그럼에도 실천적인 일에 있어서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곧 존재자 그 자체로서는, 사물들의 예지적 질서에서 규정되는 그의 현존재를 의식하고, 그것도 자기 자신에 대한 특수한 직관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인과성을 감성세계에서 규정할 수 있는 역학적 법칙들에 의거해 그러하다는 것이다.”(A72,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주2)  

여기서 순수 예지계의 근본법칙인 순수한 실천이성의 자율은 비록 경험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나 있지만(그렇지 않다면 타율이 되므로), ‘감성세계의 법칙을 깨뜨림 없이, 실존해야 할 도덕법칙’으로 칸트는 규정한다(A74-75). 이 절에서 나아가 칸트는, 실천이성 최상의 원칙의 연역에 관해, 그 객관적 실재성과 관련해서는 그 확실성을 포기하지만, 능력의 연역 원리로 쓰인다고 말하면서, 도덕법칙이 사실상 ‘자유에 의한 인과법칙’임을 천명하며, 이 법칙에 의해 초감성적 자연이 가능함을 말한다(A82-83)(주3). 

같은 장의 제 2절 ‘실천적 사용에서 순수이성의 권한’에서 칸트는 감성세계 너머에 인과성의 법칙을 세우는 일이 어떻게 도덕의 원리에서 가능한지 묻는다(A95). 이 물음은 가능한 경험의 대상들과 관련해서만 연역할 수 있었던 인과성과 같은 개념의 실재성이 도덕적 사용의 대상인 예지체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칸트는 그러한 사용이 전혀 무리가 아니라고 말한다(A95). 왜냐하면 인과성의 개념은 대상과 대상을 규정하는 실체성의 범주가 아니라 대상과 대상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관계성의 범주이므로 이미 감관의 대상에 적용되기 이전에(논리적 선행), 오성에 그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A95). 달리 말해 인과성의 개념은 경험적 대상에 적용되는 것이나, 경험적 대상이 없더라도 가능한 오성의 순수한 선험적 능력이다. 그런데 왜 능력인가? 

이론적 인식에서 오성은 대상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한편, 순전한 실천적 사용과 관련해서 오성은 또한 욕구능력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욕구능력을 칸트는 의지라고 지칭하며, 이 의지의 개념에는 자연법칙에 의해서는 규정될 수 없는 원인성의 개념이, 자유의 개념과 함께 함유되어 있다고 말한다(A97). 이 원인성은 그 객관적 실재성을 경험적 직관에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사용에서 정당화된다. 즉 원인이라는 개념은 『순수이성비판』상 범주의 선험적 연역에서 대상 일반과 관련하여 제시되기도 하지만, 이 개념은 원래 순수 오성에서 생겨난 것으로 ‘근원상 일체의 감성적 조건들로부터 독립적’이므로 ‘순수예지 존재자로서의 사물들에’(auf Dinge als reine Verstandeswesen) 적용된다(A97). 칸트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자의 개념을 ‘예지원인’(causa noumenon)이라고 하는데(A97), 이 개념은 이 개념의 실재성을 규정하는 도덕법칙과 관련해서만, 즉 실천적으로만 사용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칸트는 말한다(A98). 여기서 객관적 실재성이란 비록 이 개념에 맞는 직관은 없더라도 우리 마음의 준칙에서 드러나는 바처럼, 현실적 적용을 할 수 있음을 말하며,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 개념이 예지체(Noumenen)(주4)와 관련해서 충분한 권리(Berechtigung)를 보유하는 점이 도출된다(A99). 즉 순수 오성의 개념(인과성 외에 다른 오성의 범주들도 포함해서)이 실천적인 것과 관련해 그 객관적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권한(Befugnis)으로 정당화된다. 칸트가 이 절의 마지막에 드는 바처럼, 신의 존재를 유추(Analogie)에 의해 이끌어내어 가정하는 권한은 오직 도덕적 사용과 관련해서 의미가 있지, 그 이상으로 신의 존재를 인식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성의 월권이다.


각주

1)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의 텍스트는 백종현의 번역본(아카넷, 2002)에 의존했으며, 부분적으로 Weischedel판 Kant Werke Band 6 을 참고했다.

2)칸트, 백종현 역『실천이성비판』(아카넷, 2002), p.108-109.

3)자유에 의한 도덕 법칙의 인과성은 칸트의 법철학에서 더욱 분명히 제시된다. 도덕법칙의 직접적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법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의 외적 사실 행위의 관계에서, 의지와 사실행위 간에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행위자의 내적 마음의 동기와 상관없이 법개념의 외적 사실 행위의 관계는 무력해 진다. 칸트는 한 발 더 나아가, 법의 대상인 권리관계의 규명에 있어 수학적 엄밀성까지 지향하는데, 이는 불분명한 권리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피하기 위함이다(이충진, 『이성과 권리』2.법칙과 권리(철학과 현실사, 2000), p.60-61, 72참조).

4)Noumenen은 기존에는 가상체로 옮겨 왔다고 하나, ‘예지[오성]적으로 생각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백종현은 Noumenen을 예지체로 옮겼다.(칸트, 백종현 역, 『실천이성비판』, p.42 각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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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유추에서 인과법칙

칸트 Kant 2009. 12. 9. 15:2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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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의 <선험적 분석론>은 우리의 모든 선천적 인식이란 순수한 오성자신의 능력, 곧 개념을 이용한 인식으로 이루어짐을 증명하려는 논의이며, 여기서 제시되는 오성의 4가지 원칙은 모든 자연법칙이 예외없이 종속하는 것이다(B198). 이때 원칙이란 종합적 판단의 최상원칙을 말하는데, 이들 원칙은 12범주를 4가지 판단형식으로 묶은 것으로 분량, 성질, 관계, 양상을 지시한다. 이중 분량과 성질에 관한 논의는 각각 ‘직관의 공리’와 ‘지각의 예료’에서 다뤄지며, 관계에 관한 논의는 ‘경험의 유추’에서, 양상에 관한 논의는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에서 다뤄진다. 여기서 유추란 힘의 표출로부터 비롯되는 역학적 관계를 다루는 것을 의미하며(주1)
, 이중 제 2의 유추에서 다뤄지는 인과율에 관한 논의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면서도(주2), 많은 주석가들로부터 다양한 해석을 촉발시키는 논란의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제 2 유추의 다양한 해석에 관한 부분은 생략하고(주3), 원전에 기반해 제 2유추에서 논의되는 인과율의 의미에 관해 다루는 것으로 제한한다.

제 2 유추에서 칸트가 제시한 인과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초판의 ‘산출의 원칙’ : "발생하는(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은, 그것이 규칙에 따라 후속하는 것을 전제한다."(A189)

재판의 ‘인과의 법칙에 따른 시간적 후속의 법칙' :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결합법칙에 따라 발생한다."(B232)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있는 초판과 재판의 원칙을 간단히 결합시킨다면, 발생하는 모든 것은 시간적 후속에 의한 인과의 법칙에 따른다고 제시할 수 있다. 여기서 시간적 후속이란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시간에 존재할 수 있는 사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시간의 순서, 곧 역학적 선후로 이해해야 한다(B248-249). 왜냐하면, 칸트가 예를 드는 바처럼, 실내의 온기가 따뜻해지는 것이 난로 때문이라고 해도, 원인으로 간주되는 난로의 등장과 결과로서 간주되는 실내의 온기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원인을 일으킨 실체로서의 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원인과 결과의 선후관계, 즉 그 필연적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간순서의 규정, 곧 필연적 관계의 규정은 지각의 대상인 사건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각하는 주관에 있는 것인가? 칸트에 따르면 시간의 순서가 사건에 있냐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건 자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내감을 거쳐 수용된 현상으로서의 사건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관에 있는 것인가?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시간의 후속에 대한 결정은 현상들의 개별 위치를 연속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오성의 선천적 조건에 기인한다(B210). 이러한 선천적 조건에 의해 비로서 타당한 경험적 판단이 가능하며, 여기서 타당성이라는 진리검증은 바로 인과관계의 규명에서 완료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성의 중차대한 능력은 바로 대상 일반의 표상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러한 표상은 바로 시간순서의 부여에 의한 인과관계의 규정으로 가능한 것이다.

 “모든 경험을 위해 또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 오성은 필요한 것이다. 오성이 기여하는 첫째의 일은 그것이 대상의 표상을 판명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대상 일반이라는 표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여를 하는 것은, 오성이 현상에 또 그것의 현존에다 시간 순서를 줌에 의해서다. 왜냐하면 오성은 선행현상에 관계해서, 결과로서의 각 현상에 선천적으로 규정된 시간상의 위치를 승인하기 때문이다. 위치 없이는 현상은, 그것의 모든 부분들의 위치를 선천적으로 규정하는 시간 자신과 합치하지 않을 것이다.”(B244-245)(주4)

인과법칙을 주관적 심리의 연상물로 축소시킨 흄의 회의론에 대해 칸트의 인과론은 타당한 반격인가? 인과를 규정하는 오성의 능력도 주관에 있음으로 해서, 역시 주관적 심리로 격하될 위험은 없는가? 그러나 칸트의 주관은 직관의 선천적 형식인 내감, 아직은 순수하지 않은 종합 일반인 구상력, 선험적 통각이라는 삼중의 과정을 거쳐 선험적 종합판단을 수행하는(B197) 논리적 기관이지 심리적 구성물이 아니다. 즉 인과율은 오성이 대상에 부여하는 선험적 능력이다.(주5)


각주
1)유추의 의미에 관해서는 박정하, “칸트의 인과 이론에 대한 연구 : 『순수이성비판』의 ‘제2유추의 원칙’을 중심으로”(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p.27-28참조. 참고로 이 논문은 제 2 유추의 해석과 관련해 칸트의 인과론이 개별인과법칙을 문제삼지 않고 보편인과법칙만을 문제삼고 있다는 관점에서 칸트의 인과이론을 세밀히 다루고 있다.

2)칸트에게서 합리론의 독단이라는 선잠을 깨워『순수이성비판』의 작업에 매진케 한 근본적 동인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과론을 부정한 흄의 『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1739)이었다. 이러한 인과론의 부정은 비단 합리론의 위기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과학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방어가 필요했으며, 이런 점에서 인과론을 제시하는 제 2 유추론의 위상이 드러난다.

3)제 2 유추론의 해석에 관한 선행연구는 박채옥,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인과성과 자유”(전북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3장에서 다뤄진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제 2 유추의 해석에 관한 논쟁은 벡크, 유잉, 클레베, 브로드, 타카르트, 버드, 스트로슨에서부터, 셀라스, 퍼트남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4)칸트, 최재희 역 『순수이성비판』(박영사, 1997), p203-204.

5)능력이라는 말은 오성의 타당한 작용과 아울러 오성의 정당한 권리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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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이율배반에서 인과성과 자유

칸트 Kant 2009. 11. 24. 17:5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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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전개한 이성의 체계적 비판작업은 도덕철학으로 귀결된다. 비록 이론이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선험적 자유로 시발하는 도덕론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그의 도덕철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것은 『도덕형이상학정초』(1785)와 『실천이성비판』(1788)에서 부터이며, 그의 최종 저술인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단초들』(1797, 이것은『도덕형이상학』에 포함된다)에서 그의 도덕철학은 법철학으로 종지부를 찍는다(주1). 이미 57이라는 늦은 나이에 제 1 비판서를 내놓은 칸트가 고령이 될 때까지 도덕의 문제에 고심했다는 것은 그의 제 1 비판서가 도덕철학을 위한 예비작업의 성격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순수이성비판』은 단지 이런 식으로만 한정할 수 없을 정도의 인식론적 중요성과 아울러, 학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담보하기 위한 문제의식도 지닌 저서다. 이 저서에 한정시켜 칸트의 도덕론에 관한 유력한 주제를 든다면, 이율배반의 대립쌍처럼 ‘자연과 자유의 문제’로 풀어갈 수 있다. 여기서 자연은 인간 주관의 두 형식인 감성과 오성의 작용에 의해 이해된 자연이며, 자유는 인간 주관의 경험을 벗어나 있는 개념으로서 이성에 의해 다뤄지는 자유이다. 그렇다면 왜 자연과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인과율과 자유의 문제가 논제가 되는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험적 분석론의 제 2 유추에서 드러나는 인과율 뿐만 아니라 실체성과 상호성 등 다른 범주들도 필요하지 않는가?  

칸트가 수학과 자연과학의 명제에 관한 판단에 새롭게 도입한 선험적 종합판단(주2)이란 개념은 형이상학(주3)의 명제에서도 사용된다. 따라서 제 1 비판서에서 다루는 선험적 종합판단에 관한 논구는 곧 수학과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도덕 일반에 관한 논구로 확장된 것이다. 비록 칸트의 철학에서 현상계인 자연의 세계와 가상계인 도덕의 세계는 엄격히 구분되는 관계이지만 두 세계의 이해에는 선험적 종합판단의 형식이 사용되는 공통점이 있다. 즉 동일률적인 분석판단의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고 발생론적인 선험적 종합판단의 방식으로 이해된 자연에서, ‘선험적’(transzendental)이란 논리적으로 경험에 앞서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말한다. 이 조건은 주어진 질료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으로 질서지우는 감성의 작용, 감성에서 직관에 의해 주어진 질료를 12 범주의 형식으로 질서지우는 오성의 작용을 말한다. 여기서 오성은, 감성의 직관으로부터 주어진 현상을 인식하기 위해서 범주를 사용해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성에 사용되는 범주는 단지 자연의 대상을 인식하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철학에도 그대로 사용된다. 이들 범주 중 인과율은 흄의 인식론적 회의주의에 대적하기위해 중시되는 범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전혀 상이한 자연과 자유를 매개하는 고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히 주목된다. 여기서는 제 3 이율배반을 통해 드러나는 인과율과 자유의 문제를 보자.  

제 1 비판서의 선험적 변증론에서 칸트는 우주론과 관련된 선험적 이념(주4)의 4가지 이율배반을 다룬다. 선험적 변증론은 이성이 경험에 제한된 인식을 벗어난 문제를 다룰 때 빠지게 되는 모순을 보여주는 논의인데, 이런 모순은 4가지 이율배반의 형태로 제시된다. 제 1의 이율배반은 공간적 시초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제 2의 이율배반은 세계 내에서 합성물을 구성하는 단순체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제 4의 이율배반은 세계 내의 모든 것에 있어 궁극적 원인으로서의 최고 존재(신)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다룬다. 그리고 제 3의 이율배반은 세계에서 자유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해 다루는데, 여기서 자유의 대립항으로 자연이 설정되며, 이 문제를 다루면서 칸트가 제시하는 범주는 인과성(Kausalität)이다. 우주론의 선험적 원칙의 문제, 즉 주어진 피제약자에서 제약의 총체, 곧 무제약자에 이르는 계열을 다룸에 있어 인과성은 이성이 답할 수 있는 유력한 범주로 규정된다(B441). 그렇다며 제 3 이율배반에서 인과성은 어떻게 다뤄지는 알아보기 위해 제 3 이율배반의 정립과 반정립의 명제와 이에 대한 해석을 살펴 보자.  

정립
자연의 법칙에 따른 인과성은, 세계 전체의 현상을 도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현상의 설명을 위해서는 자유에 의한 인과성이 요구된다.

반정립
자유란 것은 없으며, 세계내의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따라서만 발생한다.

정립의 명제는 인과율만으로 자연법칙을 성립시킬 수 없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배진적으로 전제된 계열을 추적해 가는 추리가 무한히 진행된다면 원인상의 계열은 완료될 수 없기 때문이다(B472). 이에 반해 반정립의 명제는 이러한 자연법칙의 개시로서의 자유를 자연법칙으로부터의 해방으로(B475), 인과법칙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한다(B474). 앞서 밝혔듯이, 칸트는 초험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이성이 빠질 수 밖에 없는 오류를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이라는 형태로 보여주려는 것인데, 이런 모순점이 그의 자유에 근거한 도덕철학을 정립하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칸트는 이율배반을 통해, 본성상 경험 세계 밖으로 문제를 확장하려는 이성을 한계지우려는 계획을 회의적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인해 초험적 이성의 본성에 활로를 열어 주는 여지도 남긴 셈이다. 왜냐하면 이미 반정립의 해석에서 칸트가 자유를 자연법칙으로부터의 해방(Befreiung)이라고 말한 점은 도덕의 문제가 자연법칙에 구속될 수 없다는 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분명 우주론적 문제와 관련해 자연법칙의 인과계열의 시초에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결코 결정될 수 없는 문제이며, 어느 쪽으로 결정된다면 그것은 독단에 불과하다. 우주론에서 대두되는 자유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순수이성의 선험적 이념인 영혼의 불멸성, 신의 존재 문제도 순수이성이 피할 수 없으나 증명불가능한 문제다. 그러나 도덕의 세계에서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존재와 같은 선험적 이념은 도덕적 행위의 촉진을 위해 요청되며, 자유라는 이념도 요청되기는 하지만 도덕을 위한 근거로도 주장된다.  

각주
1) 『순수이성비판』의 재판(1787년) 머리말에서 칸트가 실천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면서도(B XXII) 자유의 무모순성(증명불가능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자연적 기계성과 양립 가능하다고(B XXIX) 서술한 점에서 칸트는 도덕론에 적극 가담하고 있음을 보인다. 또한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을 발표하기 30년 전인 1767년에 법철학 강의를 하였으므로 전비판기에 이미 도덕과 법철학에 대한 고민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2)선험적 종합판단이란 종래의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을 아우르는 칸트의 독창적 개념이다. 수학적 명제의 경우(대표적으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두 직각의 합이다’) 종래에는 주어에 이미 객어의 의미가 함축된 분석명제로 인식되었지만, 칸트는 수학에서도 선험적 종합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18세기 중반에 이미 알려진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다”는 공리로도 모순없는 정리의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또한 ‘두 점 사이의 직선은 두 점 사이에서 가장 짧은 거리다’라는 명제의 경우 주어부에 해당하는 ‘두 점 사이의 직선’에서 술어부의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으며, 이 경우 직관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서 술어부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경험과 상관없이 보편타당하며(선험적), 술어부의 의미가 주어부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종합적) 선험적 종합판단의 명제가 된다. 이에 비해 형이상학적 명제(예를 들어 ‘인간의 본질은 자유다’)는 마찬가지로 선험적 종합판단의 명제이나 직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상 선험적 종합(synthetic a priori)에 관해서는 S.E.Stumpf, Philosophy : History and Problem(McGraw-Hill, 1989), p.304-306,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해서는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p.104 참조.

3)칸트에게서 형이상학의 의미는 경험가능한 대상의 세계 너머에 있는 것(영혼의 불멸, 자유, 신적 존재 등)에 관한 학을 의미하므로(A VII 참조), 아리스토텔레스가 원래 자연학 너머에 있는 학으로 규정했던 metaphysic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4)오성의 개념에서 발생하는 선험적 이념(transzendentale Ideen)이란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서(B377), 오성의 개념에서 오성의 순수한 개념이 범주이듯이 이성의 순수한 개념이다(B368). 그러나 선험적 이념은 범주와 달리 객관적 연역이 불가능하며, 이념에 합치되는 객관에 관한 관계를 가질 수도 없으며 다만 이성의 본성에서 도출된다(B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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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철학사에서 칸트의 의미

칸트 Kant 2009. 11. 20. 09:0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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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의 의의

근대 철학사에서 칸트가 주력했던 기획은 이성의 세가지 기능에 대한 비판적 작업으로 완결된다. 이론이성이 작용하는 방식과 그 한계를 규정한 순수이성 비판,  표상된 도덕법칙을 보편화 가능성에 견주어 의욕하는 실천이성 비판,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에서 각각 매개역할을 하는 판단력 비판이 그것이다. 이상의 비판은 이성의 세가지 기능에 대한 총체적 비판으로서, 인간의 인식이라는 주관 내에서 인식의 근거와 한계, 그리고 그것의 확장 가능성을 검토하는 의식철학의 체계화이다. 의식의 확실성, 즉 인식의 발전단계에서 발견되는 사유하는 자아로 모든 회의를 극복하는 단초를 삼아, 의식을 보편화하는 시도에 그친 데카르트에 비해 칸트는 의식을 제 현상을 규정하는 내적 사유 체계로 확장시키지만, 이런 확장은 의식 내에로의 확장이지 결코 대상 너머의 물 자체에 도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칸트가 여전히 의식 철학의 한계 내에 묶여 있다고 비판하지만, 오히려 칸트의 선험적 입장이 물자체로서의 타자를 지향하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주1). 또한 칸트의 의식 철학은 사유와 연장이라는 실체의 두 존재방식을 통합시키려고 했던 데카르트의 의식 철학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있는데, 이것은 칸트가 이성에서 심리주의를 철저히 배격시켰다는 것이다. 경험적 현상에 대한 반복된 습성의 축적으로 오성의 법칙을 경험화시키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 칸트는 이성의 자족성과 자율성을 정립시키고자 했다.  다시 말해 이성을 경험에 종속된 심리적 기능으로 격하시키려는 흄의 회의주의에 대한 반격이 순수이성비판을 기획한 칸트의 주요 동기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칸트의 이성주의가 흄의 경험주의에 대한 한낱 반사적 대응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순수이성비판』 곳곳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가 흄으로서, 칸트가 자신의 철학의 주적으로 간주하다시피 논박하는 철학자이지만, 칸트의 기획은 근대 철학사에서 인식론에 기반해 전개된 제 사유체계에 대한 종합으로서 근대 인식론의 완성이라는 포괄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예를 들어  이런 종합의 하나로서, 선험적 논리학의 전개를 볼 수 있다. 즉 일반논리학은 이미 주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오성의 형식을 다루는 학이지만, 선험적 논리학은 경험 밖에서 이런 경험의 기원을 묻는다. 즉 선험적 논리학은 인식의 기원과 범위, 그리고 그 객관적 타당성을 다루는 학이다(B82).(주2)       

철학사적 배경

칸트 이전의 근대철학의 주요 흐름은 영국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으로 양분된다. 비록 영국에서 홉스의 유물주의에 반대했던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처럼 이 구분을 무력화시키는 사유의 움직임이 있지만, 일반적 흐름은 이러한 구분을 중심으로 설명될 수 있다(주3).  르네상스의 인문 부흥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유럽의 곳곳에서 다양한 사유를 펼치는 철학자들이 대두되는데, 당대에 주요한 작업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고 후대에도 그 작업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철학자들을 코플스톤의 논의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잉글랜드,웨일즈,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경우 홉스와 로크, 버클리, 그리고 흄이며, 서유럽 대륙의 경우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프가 있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 이전에 교회 중심의 봉건체제를 비판하며 새로운 혁명적 사회상을 제시한 계몽사가로 볼테르가 있으며, 그를 필두로 프랑스 혁명의 이론적 지침 역할을 한 루소와  백과사전적 지식의 학풍을 일으킨 디드로가 칸트의 동시대인으로서 등장한다.

데카르트는 회의주의를 극복하는 발견적 사유의 과정을 보여주며,  수학에 기반한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데카르트 철학의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지만, 데카르트는 제 1의 학문적 방법론으로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도덕도 확고한 기초 위에 세우려고 했으므로,  비록 칸트와 문제설정은 다르더라도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다. 홉즈는 유물론에 기반한 근대 사회계약이론의 선구자이므로 칸트의 정치철학에 있어 원초적 계약이론의 전거를 제공한 철학자이며(주4), 로크 역시 계약이론의 계승자이자 칸트의 정교한 인식론에 대해 단초를 제공했다. 『 순수이성비판』의 전반부(특히 감성론)의 근본적 틀은 뉴톤에 의존해 있으며, 전반적으로 칸트가 뉴톤적 체계를 순수오성이 작동하는 인과적 세계와 이성에 의한 도덕적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틀거리로 원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흄은 모든 인식의 기원과 그 원리를  경험으로 끌어 내려  비판하는 가장 예리한 경험주의자로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촉발시킨 주요 동인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너머 실체로서의 신 또는 자연 중심의 일원론을 내세운 철학자로,  형이상학과 윤리학을 통합하는 사유의 체계화로 칸트의 업적에 견줄만한 평가를 받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단자를 중심으로 한 일원론적 설명으로 스피노자와 유사하지만, 예정조화설로 근대 합리론을 극점으로 끌어 올렸으며, 볼프는 라이프니츠의 제자이자 칸트의 스승으로서  칸트의 법철학에 가장 근접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의 계몽사가들은 칸트와의 연관보다는 헤겔과 관련지어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주지하다시피, 헤겔에 비해 칸트는, 비록 그가 인식의 주관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닐지라도, 그를 둘러싼 독일 제후국과 유럽의 정세라는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의 사유체계를 완성해 나가는데 주력했으므로, 사회변혁의 이상을 제시하던 계몽사가나 청년 헤겔에 비해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현실과의 거리가 아직도 칸트의 철학이 가라타니 고진을 비롯한 현대의 사상가들한테 각광을 받는 한 요인일 수 있다. 또한 칸트는 고대에서부터 근대에 까지 철학자가 응당 다루어야 하는 과제로 인식된 과학과 도덕, 미의 문제에 관해, 그 분명한 구분을 제시함으로써 제학문의 분화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각주

1)가라타니 고진, 송태욱 역 『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한길사, 2006), p.93-96.

2)순수이성비판』의 텍스트는 최재희의 번역본(박영사, 1997)에 의존해 있으며, 부분적으로 Weischedel판 Kant Werke 중 Band 3,4 를 참고했다.

3)근대 철학사에 관해서는 F. 코플스톤, 김성호 역 『합리론』(서광사, 2004)을 참조했다.

4)원초적 계약은 정언명법의 형식을 빌린 보편적 정의의 법칙(“너의 선택 의지의 자유로운 사용이 보편 법칙에 따라서 모든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도록 외적으로 행위하라” 『도덕형이상학』Weischedel판 8권 중 S.338.)으로서, 국가에 의한 합법적 제한으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이런 보장에 의해 국가의 성립이 정당화된다. 달리 말해, 원초적 계약의 이념에 따라 정당화되는 공동체는 외적 법률 하에 자유가 상호보장되는 시민적 정치체제이며, 여기서 정당화되는 국가의 책무는 공동체의 안정적 유지에만 한정된다. 맹주만, “원초적 계약과 정의의 원리” 『칸트와 정치철학』(철학과 현실사, 2002) p.88-89, 95,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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