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된 목(미하일 불가꼬프)
외지 분원 초임 의사의 첫 외과수술(기도절제)을 보여주는 장면은 현대 의학 드라마처럼 보일 정도로 생생하고, 부임 이후 과연 어떤 환자가 들이닥칠지 긴장하는 새파란 의사의 긴장된 심리과정도 잘 보여준다.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빈약한 임상경험 때문에 도상 의료서나 참고할 수 있는 궁핍한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수술을 할 수 있을지 당사자는 물론 독자도 장담할 수 없다. 목 절개 후 기도를 찾지 못해 난감해 하다가 핀셋과 메스를 이리 저리 헤집다 발견하는 장면은 외과의사라는 직업이 마치 배관공이나 광부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전한다.
편지(이삭 바벨)
꼬마 병사의 편지를 첨삭없이 옮겨 왔다는 작가의 말이 신빙성있게 보이는 것은, 내란중 일어난 동족상잔을 넘어 가족상잔의 처절한 아픔이 천진난만하게 기술되었다는 점에 있다. 혁명군에 속했던 3남과 구체제에 속했던 아버지의 대립과 같은 일들은 20세 초중반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지만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고 어떤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이것은 단지 이념과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외디프스 콤플렉스같은 심리적 차원의 문제에 가깝다.
시간(나제쥬다 떼피)
레닌도 좋아해서 암묵적인 검열해제도 허락했다는 망명 소설가의 작품. 혁명을 피해 망명한 러시아인들이 프랑스의 뒷골목 까페에서 그야말로 시간을 보내는 일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풍자. 가슴 절이는 사각관계 로맨스의 여주인공이 돈많은 노파로 밝혀지는 대목은 의외의 반전이지만 역자는 이런 반전을 익히 예상했다고 말한다. 익살스럽고 파격적인 서술은 역시 망명객인 <롤리타>의 나보코프를 연상시킨다.
동굴(예브게니 자먀찐)
빙하시대의 강추위(가난)와 매머드(폭정)를 피해 동굴(집안)에 숨어 들어간 부부의 슬픈 이야기가 고도의 상징으로 압축된다. 공동체와 개체의 문제를 다루는 이 작가의 장편 소설은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에 근접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이 단편으로도 엿볼 수 있다. 신으로 상징되는 난로는 끊임없이 땔감을 요구한다. 이 작가 역시 파리 망명객이다.
가벼운 숨결(이반 부닌)
역자는 신체의 성장에 비해 더딘 정신의 성숙이라는 아노미 구도로 이 소설을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은 과연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 지는가?
일사병(이반 부닌)
러시아 소설에서 흔히 기대할 수 없는 뜨거운 여름날의 열풍이 감지된다. 유유히 흐르는 볼보강의 여객선에서 일어난 불꽃같은 로맨스는 4대강 자전거길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암소(안드레이 쁠라또노프)
철로변에서 땅을 일구며 열차 신호수 역할도 했던 작가의 유년기 모습을 보여준다. 존 스타이벡의 <붉은 망아지>(The Red Pony)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