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러시아 단편선2

문학 Literatur 2017. 1. 12. 13:57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철로 된 목(미하일 불가꼬프)

외지 분원 초임 의사의 첫 외과수술(기도절제)을 보여주는 장면은 현대 의학 드라마처럼 보일 정도로 생생하고, 부임 이후 과연 어떤 환자가 들이닥칠지 긴장하는 새파란 의사의 긴장된 심리과정도 잘 보여준다.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빈약한 임상경험 때문에 도상 의료서나 참고할 수 있는 궁핍한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수술을 할 수 있을지 당사자는 물론 독자도 장담할 수 없다. 목 절개 후 기도를 찾지 못해 난감해 하다가 핀셋과 메스를 이리 저리 헤집다 발견하는 장면은 외과의사라는 직업이 마치 배관공이나 광부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전한다.  

 

편지(이삭 바벨)

꼬마 병사의 편지를 첨삭없이 옮겨 왔다는 작가의 말이 신빙성있게 보이는 것은,  내란중 일어난 동족상잔을 넘어 가족상잔의 처절한 아픔이 천진난만하게 기술되었다는 점에 있다. 혁명군에 속했던 3남과 구체제에 속했던 아버지의 대립과 같은 일들은 20세 초중반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지만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고 어떤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이것은 단지 이념과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외디프스 콤플렉스같은 심리적 차원의 문제에 가깝다.  

 

시간(나제쥬다 떼피)

레닌도 좋아해서 암묵적인 검열해제도 허락했다는 망명 소설가의 작품. 혁명을 피해 망명한 러시아인들이 프랑스의 뒷골목 까페에서 그야말로 시간을 보내는 일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풍자. 가슴 절이는 사각관계 로맨스의 여주인공이 돈많은 노파로 밝혀지는 대목은 의외의 반전이지만 역자는 이런 반전을 익히 예상했다고 말한다. 익살스럽고 파격적인 서술은 역시 망명객인 <롤리타>의  나보코프를 연상시킨다.

 

동굴(예브게니 자먀찐)

빙하시대의 강추위(가난)와 매머드(폭정)를 피해 동굴(집안)에 숨어 들어간 부부의 슬픈 이야기가 고도의 상징으로 압축된다. 공동체와 개체의 문제를 다루는 이 작가의 장편 소설은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에 근접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이 단편으로도 엿볼 수 있다. 신으로 상징되는 난로는 끊임없이 땔감을 요구한다. 이 작가 역시 파리 망명객이다.  

 

가벼운 숨결(이반 부닌)

역자는 신체의 성장에 비해 더딘 정신의 성숙이라는 아노미 구도로 이 소설을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은 과연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 지는가?

 

일사병(이반 부닌)

러시아 소설에서 흔히 기대할 수 없는 뜨거운 여름날의 열풍이 감지된다. 유유히 흐르는 볼보강의 여객선에서 일어난 불꽃같은 로맨스는 4대강 자전거길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암소(안드레이 쁠라또노프)

철로변에서 땅을 일구며 열차 신호수 역할도 했던 작가의 유년기 모습을 보여준다. 존 스타이벡의 <붉은 망아지>(The Red Pony)를 연상시킨다.

 

 

반응형

근현대 러시아 단편선1

문학 Literatur 2017. 1. 9. 06:31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한 발(알렉산드르 뿌슈낀)

젊은 시절의 모욕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기 몫의 한 발을 간진한 채 결전의 날을 기다리는 일상은 매우 비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복수는 상대의 가슴에 총격을 가하는 것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굴욕을 끌어내는 데 있다.

 

외투(니꼴라이 고골)

필사 전담 9급 공무원의 외투를 둘러싼 의외의 판타지 소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라는 괴이한 이름의 이 공무원은 필사의 업무에 혼신과 열정을 쏟을 정도이지만(바틀비의 무미건조한 필사에 비해) 가족도 없고 가난하기는 바틀비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외투에 대한 욕망에 있어서는 다르다. 이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거대했으면 자신의 청원을 무시한 장관에게 사후에도 달려 들었을까.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상품사회의 단면이다(그의 봉급을 넘어선 외투를 사고자 그가 재단사와 벌인 흥정과 검약). 바틀비의 놀랍고 위험스러운 점은 이런 사회에 대한 거부다.

 

무도회가 끝난 뒤(레프 톨스토이)

화려한 무대회가 끝난 뒤 벌어지는 일상의 잔악함. 연대장이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늦은 새벽까지 무도회장에 머물지 않았던 이유라는 것이 화려한 무도회장의 분위기와 극렬히 대조된다. 일상의 천상과 지옥을 동시에 보려고 했던 대문호 말년의 관심사가 엿보인다.    

 

슬픔(안톤 체호프)

눈내리는 밤, 마수걸이도 못한채 눈에 파묻혀 가는 마부와 마차. 이 밤에 그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이는 승객도, 동료도 아니었다.

 

입맞춤(안톤 체호프)

퇴역 장성의 대저택 서재에서 있었던 신비한 접촉은 어리숙한 랴보비치 중위를 끝없는 허상의 로맨스에 빠뜨리지만,  대자연의 숨결에서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계시 보다는 무위를 느끼는 바와 마찬가지로 그의 공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스물여섯과 하나(막심 고리끼)

지하의 크렌젤리나 비스켓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일해야 하며, 주인에게는 물론 위층의 수예여공들에게도 천대를 받는 26명의 알탕 제빵사들은 숭배의 대상이 필요했지만 이 대상에 대한 검증도 요구한다. 숭배만이 아니라 진실을 원하는 점에서 그들은 더이상 노예가 아니다.

반응형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2

문학 Literatur 2017. 1. 3. 06:00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가을

느릿하고 애잔한 일상의 연애감정을 다루는 서술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적 분위기를 풍긴다. 아쿠타가와가 다양한 분야의 소설 장르를 다룰 수 있음을 예시해 준다.

 

묘한 이야기

빨간 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본이 1차 대전 때 지중해까지 함대를 보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군국주의적 에너지가 팽창하던 시대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유럽에 출전할 정도이니 조선 정도는 강건너 속국 정도로 간단히 처리된다. 항로의 발견이 가져온 결과는 20세기 초반까지는 대규모 인적 수송 및 물류, 군수의 운송에 이르며 현재의 시점에서도 해운 물류의 중요성은 엄존한다. 해상운송의 이 황금기에 빨간 모자는 어쩌면 항만과 철도역을 오고가는 괴상한 기질의 배달꾼인지도 모른다.

 

버려진 아이

이 작품은 깊은 인간적 울림을 일으키는 점에서 이청준의 단편을 연상시킨다.  종잡을 수 없는 작품세계의 구사다. 참고로 버려진 아이의 이름은 작가와 유사한 유노스케. 아사쿠사의 신행사 주지의 설법을 설교로 번역한 것이 특이하다.  

 

남경의 그리스도

남경의 효녀에게만 혼혈 외국인이 그리스도였을까? 일본인 여행객에게는 매독에 걸린 그리스도일 뿐이었다.

 

덤불 속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의 주요 이야기 그대로다. 글을 읽고 있는지 영화를 보고 있는지 혼동될 만큼 영화는 그대로 이 원작을 베껴오는데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독창성은 아쿠타가와의 두 단편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그 틈새에 새로운 이야기를 끼워 넣은데 있는데, 가만 보면 이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도, 비록 내용은 다르지만 역시 아쿠타가와의 <버려진 아이>를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도미의 정조

메이지 유신 원년, 구체제의 막부세력에 대한 신정부의 우에노 총공세 전, 저격범 정도의 역할로 참여한건지, 아니면 구체제 세력의 하나로 권총자살을 하기 위해 민가로 숨어들간건지  불분명한 거지 행색의 무사 귀족 신공의 하루밤 이야기. 결국 무라카미 신자부로 미나모토 시게미쓰라고 자신을 밝힌 이 자는 체제를 갈아타는데 성공.

 

인사

우연한 만남에 한번 인사를 하고 또 다시 하지 않은 서운한 심정을 그린다.

 

흙 한 덩어리

고부간의 갈등은 땅을 놓고 펼쳐진다. 재혼을 거부하며 유산이면서도 구속인 땅에 메여 사는 과부 며느리는 결국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일하는게 싫어졌으면 죽는 수 밖에 없어요"라고 말한다. 편하게 살다 죽기를 바라지 말라는 며느리의 호통에 시어미는 아연실색. 땅을 붙여 먹고 사는 농경문화의 극단화된 사례일텐데,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 수 있을까 궁리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시어머니가 대변한다.

 

세 개의 창

전쟁문학의 맹아같은 세 개의 장면이 펼쳐진다. 러일전쟁에서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기도 했지만 고통스러운 패전도 겪었던 2만톤급 일등전함 XX는 조선의 진해만을 기지처럼 이용하며 조선기사의 정비를 받기도 한다. 이후 쥐문제를 겪었던 요코스카 군항의 도크에서 운명한다. 역사적 소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를 빗겨가는 소설전개 방식은 <오도미의 정조>와 동일.

 

 

반응형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1

문학 Literatur 2016. 12. 30. 06:34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라쇼몽

동명의 유명한 영화는 오직 교토의 저 무너져가는 성문만을 옮겨 왔을 뿐이다.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하기 보다는 먼저 폐허를 벗어나고 볼 일이다.

 

6치가 넘어 안면에서 덜렁거리는 코 보다는 이 코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더 불편한 선지내공 스님.

 

두 통의 편지

도플갱어 현상과 애처증의 결합 망상 내지 경합 망상.

 

지옥변

이토록 처절한 예술혼이 또 어디 있을까. 작가는 호리카와 대신이 요시히데의 딸을 왜 불타는 마차에 태워야 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터널에서부터 어렵게 차창을 열고 배웅하는 동생들에게 귤을 던져준 후 차표를 손에 꼭 붙들고 상경하는 소녀에게, 세상사 권태에 빠진 작가는 작은 희망을 본다.

 

늪지

무명화가의 꿈은 결국 이루어진다. 다만 그 실현을 보지 못할 뿐.

 

의혹

실천윤리학을 강의하는 학자가 똑같은 상황에 닥친다면 어떻게 했을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트예프스키는 인간의 마음을 군대에 비유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유가의 이상은 얼마나 이상한가.

 

미생의 믿음

부질없는 기다림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을까.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유대교의 전통을 언급하며 오랜 기다림이 가져오는 형질변화에 주목한다. 그들에게 파시즘은 기다림의 결핍이었다.

 

반응형

멜빌 단편에 대한 짧은 인상

문학 Literatur 2016. 12. 15. 12:2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바틀비

한번 읽은 것이지만 다시 봐도 신비롭다. 멜빌의 단편에서 흔히 보이는 결말의 반전 구도 중 가장 경이로우면서도 슬픈 반전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타노의 노래

이 작품 역시 기묘한 반전이 있다. 스타우트를 거하게 마시고 쓴듯한 흥분스러운 문장이 계속된다. 병자를 흥분시키는 수탉은 결국 저승사자인 셈?

 

베니토 세레노 

멜빌의 전공은 역시 해양소설이다. 시종일관 스페인 화물선 선장 베니토를 정신이상자 내지 범죄인물로 몰다가 역시 급작스러운 반전으로 뜻밖의 결말이 난다. 이 스페인 선장은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미국 선장 덕분에 반란의 수괴인 바보노예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지만,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

잘 정비되고 쾌적한 법률 단지에 모인 총각 법률가들의 여유로운 만찬과 자연의 불길함이 눈보라가 되어 몰아치는 산골 골짜기 제지 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처녀들. 작가는 왜 이토록 이질적인 이 두 장면을 대비시켰을까. 제지공장에서 일하는 처녀들과 법률문서를 베끼는 일만 하는 바틀비는 가까워 보인다. 창의적이고 주도적이며 웅변적인 성격이라는 점이 법률가에 적합하다면 무미건조하고 기계적 작업의 성격은 제지공장의 처녀들과 바틀비에 적합하다. 어쩌면 멜빌은 단순반복적인 업무로 규정된 포드주의에 대한 경계를 드러내면서, 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주장은 지금의 시점에서도 맞다. 관행은 결국 퇴행이 되고 만다. 의사도 판사도 예외일 수 없다. 알파고의 시대에선 더욱 더.

 

피뢰침 판매인

인간의 몸이 강력한 전도체일 수 있다는 피뢰침 판매인의 주장이 꼭 상술로만 보이지 않는다. 뇌우가 퍼붓는 평야 한가운데 사람이 있다면 더욱 더.  

 

사과나무 탁자 혹은 진기한 유령 출몰 현상

베어진 지 90년이 되고 탁자로 만들어진지도 그 정도의 세월을 겪은 나무 속의 곤충알로부터 성체가 나오는 일은 설명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신비로운 일이기도 하다. 문학은 설명가능한 현상을 애써 회피하려 하진 않지만 여기에만 갇혀 있지는 않다. 새로운 해석을 위해서 다시 문장의 각질 속으로 파고들어가 광맥을 찾는 일이 의미가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