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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2.03.27 토지와 인생(화, 아직 남은 겨울의 한기)
  2. 2012.03.20 민족 불운의 시절
  3. 2012.03.13 잔인한 작가
  4. 2012.03.09 음모의 발각
  5. 2012.03.02 주변부 문학의 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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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2부의 첫 권인 5권을 읽고 독서가 멈췄다. 미납도서 때문에 3~4일간 대출중지에 걸린 것인데, 이 정도 시간이면 1권을 볼 수 있는 시간인데, 마치 장곡의 고전음악 사이에 있는 인터미션 처럼 잠시 휴식시간이 생긴 셈이다. 2부의 이야기는 평사리의 최참판댁 서희와 이 댁과 관련될 수 밖에 없는 주변 인물들이 윤보의 주도로 간도로 넘어가 살아가는 생활을 보여준다. 고향 땅을 등진 이들이, 회령에서 하룻길 걸리는 용정이란 청국 땅에서 삶을 이어가는 억척스러움이 새삼 아주 먼 시절의 얘기로만은 보이지 않는다. 그 시절 농사꾼은 어디에 던져 놓아도, 붙일 땅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었다. 두 아낙을 거느린 용이는 다시 간도에서 국밥집을 내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월선에 기댈 수 없는, 가장의 책임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랬다면 그는 다시 권태로운 삶을 이어갈 폐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붙여 먹을 땅, 이것은 농사꾼의 최후 생존 조건인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핵안보 정상회의를 빌미로 어제 또 터키와 FTA를 체결했단다. 당장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수출 효과를 들먹거리지만, 농사꾼의 생존조건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현실은 모르쇠다. 이러다가 농사꾼은 해외로 나가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저 서희 일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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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불운의 시절

책들 Bücher 2012. 3. 20. 22:0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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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4권 후반부를 읽고 있다. 조씨 일가가 종손으로는 서희만 남은 최참판댁을 접수한 이후, 시대가 을사조약과 겹쳐지면서 소설 전개의 에너지가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 든다. 임이네와 엮어진 용이의 운명이 기이한 반면 전반적으로 세대 갈이(이런 말이 성립할까마는)가 이루어진 이후의 삶들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동학전쟁과 임오군란에 참여했던, 이 소설에서 은근히 작가의 귀추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 총각 대목장 곰보 윤보가 뭔가 해볼려고 한다.  

윗마을, 아랫마을 장정들과 합심해 조대감댁을 치는데 삼수가 다리역할을 하지만, 이런 자의 본성상 위기를 자신의 이익으로 삼으려는 저의(조대감의 꼬봉 역할을 지서방한테서 회수하려는 목적)는 조대감이라는 또다른 악에 통할리 없었다. 평사리 거사 전 윤보를 찾아가 같은 편역에 설 것을 다짐하던 삼수가 거사날 밤 긴급히 사당 마루 바닥 밑에 숨어 들어갔던 조대감과 홍씨를 거사대에게 발설하지 않은 것은 욕심이었던 것이다. 아래 인용문은 꼭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다.

악의 생리 :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

박경리, 『토지』4권(나남, 2011, 25쇄), 34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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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작가

책들 Bücher 2012. 3. 13. 00:5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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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3권의 후반부를 달리고 있다. 역병과 흉년 편에서 작가는 괴정(콜레라)으로 많은 인물들을 '정리'해 버린다. 최참판 댁의 기둥인 김서방을 시작으로 강청댁, 문의원, 김진사댁 두 청상, 칠성의 소산인 임이네의 두 아들, 봉순네, 그리고 윤씨부인. 용이와 봉순, 길상, 그리고 서희는 가까스로 구명된다. 평산과 귀녀가 음모해 저지른 사건을 단박에 해결시킨 단호함으로 작가는 서희를 둘러싼 배경의 기둥들을 붕괴시킨다. 운명의 힘 앞에 어쩔 수 없는 인간세계의 초라함을 작가는 담담히, 그러나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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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의 발각

책들 Bücher 2012. 3. 9. 09: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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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과 귀녀의 모의, 그리고 칠성이 동사로 동원되고, 결과적으로 강포수의 연정으로 완성된 귀녀의 임신으로 속도가 나던 음모가 실행되고, 봉순네의 심증을 전해 받은  윤씨부인에 의해 드라마틱하게 이 사건의 전모가 발각되는 『토지』2권의 후반부를,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로 책장을 넘겼다. 귀녀가 최씨 문중의 씨를 받았다며 죽여달라고 하는 울부짖음에서 윤씨부인이 귀녀의 혐의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윤씨부인이 치수의 병력을 독자보다 소상히 문의원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간간히 문의원이 최치수의 병력을 드러내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나의 추리력이 부족했던 걸까. 생각보다 쉽게 이런 근거로 음모가 발각되는 것이 너무 급박한 감도 있지만, 아직 이 소설이 나가야 할 길은 멀기에 이 정도로 맺음을 하는 것도 작가의 대범하고 탁월한 전술같다. 요즘의 방송 작가라면 이 정도의 소재만으로도 이야기를 질질 끌어 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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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 문학의 위대성

문학 Literatur 2012. 3. 2. 18: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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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1권을 절반쯤 읽었는데, 경남 하동 악양 평사리 일대의 어휘와 사투리가 무척 생소하다. 구한말 산간벽촌의 토속성이 강하게 풍기는데, 흥미로우면서도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그 당시로서는, 시대개벽이라고 할 만한 일들-갑오농민전쟁과 외세의 침탈-이 지리산 주변 깡촌 구석까지 두들길 정도의 격렬한 시대 변화의 폭풍 속에서 왕조 말기 토착 백성들의 애환과 우환, 욕망이 생동감있게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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