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성탄

단상 Vorstelltung 2023. 12. 25. 05:1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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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가 태어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짧게 언급되어 있다. 정적 안토니우스를 누르고 황제권을 확립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 아래 모든 로마 식민지에 호적이 강제됨에 따라 이스라엘에서도 타향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호적등재를 위해 고향으로 회귀해야 했다. 나사렛에 있던 요셉은 만삭의 아내 마리아와 함께 150 km 떨어진 조상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했고, 결국 어렵게 도착한 그곳의 어느 사관에서 마리아는 아이를 출산했다. 베들레헴은 현재 팔레스타인의 도시로서 2만명 이상이 숨진 가지지구에서 70km 거리에 있다. 이 지역에서 비참과 혼돈의 강도가 2023년 전 보다 현재가 더 세지만 아무튼 예수는 혼돈의 시대, 혼돈의 장소에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 성극에서 '빈방 있습니다' 라는 토로로 유명한 여관 주인역을 맡은 한 아이의 상반된, 하지만 진실한 대사는 비참과 혼돈의 시대에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크리스마스 이브 사설에서 종교가 폭력적인 세계사에 기여하는 것에 관해 비관적으로 말한다. https://m.faz.net/aktuell/politik/inland/kommentar-zur-weihnacht-gott-mit-uns-19403899.html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살상이 벌어지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쾰른 대성당에는 이슬람테러 주의경보로 경찰의 통제 하에 신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저마다 자신의 신들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탄압하는 것은 종교의 구시대성과 야만성을 보여주지만, 사실 종교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권력에 책임이 있다. 하마스 지도부와 네탄야후 처럼 말이다. 물론 종교가 이런 권력에 부역하는 일은 나치에 동원된 카톨릭처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종교로부터 세속화된 세계에서 어떤 주장이나 명제를 종교를 근거로 정당화하는 것은 더이상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물론 상식적인 윤리를 종교로부터 뒷받침 받는 것에 관해서는 굳이 비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그 윤리라는 것은 종교로부터 계속적인 정당성을 끌어낼 수는 없다. 윤리의 기원이 종교일지는 모르지만, 종교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태양계로부터 벗어난 보이저호의 유영과 유사한 숙명이다. 왜? 영구불변한 진리라는 것은 그 말 자체가 허구적인 것이고, 그런 말 자체는 특정시대와 특정장소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알프스 산맥을 넘지 못한다.

세속화를 넘어 정교분리가 상식적인 헌법질서인 사회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야만을 넘어 불법이기도 하다. 종교의 이름으로, 혹은 유사종굥의 이름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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