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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동네로 이사온 선배와 만나서 『달과 6펜스』에 대해 얘기하다가 술을 진탕 마셨다. 다음 구절은 스트릭랜드가 깊은 병에 들었던 자신을 집으로 데려와 간호하도록 해준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 때문에 생긴 문제와 관련해 하는 말이다.  

"난 사랑 같은 건 원치 않아. 그럴 시간이 없소. 그건 약점이지. 나도 남자니까 때론 여자가 필요해요. 하지만 욕구가 해소되면 곧 딴 일이 많아. 난 그 욕망을 이겨내지는 못하지만 그걸 좋아하진 않아요. 그게 내 정신을 구속하니까 말야. 나는 언젠ㅣ가 모든 욕정에서 벗어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내 일에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때가 있었으면 하오. 여자들이란 사랑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사랑을 터무니없이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야. 그래서 우리더러 그게 인생의 전부인 양 믿게 하고 싶어해요. 하지만 그건 하찮은 부분이야. 나도 관능은 알지. 그건 정상적이고 건강해요. 하지만 사랑은 병이야. 내게 여자들이란 쾌락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아. 나는 여자들이 인생의 내조자니, 동반자니, 반려자니 하는 식으로 우기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소."

『달과 6펜스』, 202~203.

이 소설에는 중간 중간에 남성 중심적인 원시적 여성관과 아울러 철학적 훈계나 설교 분위기의 서술이 나타난다. 작품을 작가의 정신이 반영된 산물로 보는 전통적 작품론은, 『롤리타』나 『제 49호 품목의 경매』의 경우처럼 작품을 작가로부터 독립해 자율적으로 전개시키는 현대소설의 조류와 비교해 볼 때, 다소 보수적인 것이다. 동일률적인 철학과 달리 차이를 시초부터 설정하는 들뢰즈에게 작품은 리좀으로 이루어진 연결망이다. 고원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어서 『천 개의 고원』이 된다.  자신에서(an sich)부터 나와서(für sich)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anundfür sich)은 오디세이의 귀환, 자신 안에서의 여행, 내재성일 뿐이다. 반면에 다른 곳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가며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유목이며 외재성이다. 

"작품은 사람을 드러내는 법이다. 사람이란 사교적인 교제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면을 너무 철저히 쓰고 다니다가 정말 그 가면과 같은 인격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은 진짜 모습을 꼼짝없이 드러내고 만다. 겉만 그럴싸한 것은 곧 속이 텅 비어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욋가지를 쇳조각처럼 칠한다 해도 쇳조각처럼 보일 리는 없다. 아무리 특이하게 꾸민다 해도 평범한 정신을 감출 수는 없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에서도 날카로운 관찰자는 영혼의 깊은 비밀을 읽어내고 만다."

『달과 6펜스』,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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