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문학 Literatur 2017. 2. 13. 05:1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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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1863)로도 번역된 이 작품의 말미는 <죄와 벌>의 라스꼴리노프와 소냐의 변화된 관계를 암시한다. 도스트예프스키가 낭만적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을 퍼붓는 이 작품에 대해 10년 후, <수기>에서 제시된 세계관은 극복되었으며 더욱 낙관적인 성향의 글을 쓸 수 있다고 언급한 점에서 볼 때도 그렇다.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지식인의 파괴적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79)이 나올 수 있었을까. 지하생활자는 라스꼴리노프로, 이반으로 여전히 역할을 옮겨가지만, 작가는 비관적 세계관의 주인공들을 더욱 대상화시킨다. <수기>에서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논적은 소냐로, 알료샤로 형상화되며, 따라서 더이상 단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없는 설정이 된다. 나 아닌 타인의 관점을 온전히 취하는 작품세계의 극단적인 사례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9)다. 유럽에 속한 페테르부르크라는 계획도시의 그늘진 골목과 러시아 남부의 광활한 영지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거인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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