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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으로 서부 시베리아 움스끄에서 4년의 징역형과 6년의 병역을 겪었던 작가의 체험에 기반해 수용소의 생활과 이곳의 군상들을 다룬 것으로, 수기일 수도 있고 소설일 수도 있는 장르이다. 작품 속 수기의 필자를 작가는 미지의 귀족 유형수로 설정하고 서론에 또다른 편집자가 이 수기를 발견해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치 지하생활자를 다른 인물로 배치하듯이 작가는 또다른 가상의 필자 둘을 설정한 것이다.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이 오히려 사회에 대한 불만만 높아지는 유형수를 보면서 받은 작가의 충격은 <죄와 벌>의 모티브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유형수들의 이 끔찍한 양심의 결여에 관한 시각을 이후 수정한다.

수용소에 관한 여러 기록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연극공연이다. 당시 러시아의 양대 수도 외에 시베리아와 같은 벽촌에서 연극공연이란 것이 얼마나 생소했는지 감옥 밖의 마을 사람들인까지 죄수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감옥으로 밀어닥칠 정도였다. 변기가 샘물이 될 수 있듯이 감옥도 극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점은 교정시설의 개혁에 관한 하나의 시사점이 될 수 있다.

백 여대 에서 수 천대에 이르는 태형과 석방될 때 까지, 심지어 목욕탕에서도 발을 묶어두는 족쇄를 제외하고는 시베리아의 감옥은 당시로서는 오히려 구호소의 역할도 해서, 농장주에게 온갖 혹사를 당하고 제대로 먹을거리로 챙기지 못한 농노들이 일부러 범죄를 저질러 들어올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속에서 10년의 유형을 살다 풀려난 필자인 귀족 유형수가 감옥 안에서 그리던 자유를 실제 자유로운 감옥 밖에서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대심문관이 민중에겐 자유가 사치스러운 족쇄일 뿐이라는 설정에 이어진다. 어쩌면 자유는 억압의 현장에서 피어 오르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허구인 것일까?

톨스토이가 <예술론>에서 이 소설을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흘러나온 승화된 기독교적 예술의 하나라고 말한 것은 이 소설을 협소한 관점에 묶어두는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도스트예프스키는 아직 문제적 작가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죄수들이 크리스마스와 부활제와 같은 축제일이 다가올수록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부푼다는 점이다. 군대에서도 이런 기간에 병사들의 심리가 고조되는 점과 비슷하지만, 노역 외에 외출이 불가한 이들이 이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모아 하루에 마음껏 취해버리는 것 뿐이다. 이에 비해 연극공연을 한다는 것은 보다 축제를 새롭게 즐기는 행위이고, 이것은 악귀처럼 비쳐지는 이들이 최소한 공연 시간 동안 만이라도 관심과 존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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