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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 됐다고 할 수도 없는 사건을 다룬 정지용 감독의 놀라운 영화이다. 당시 이 사건을 보고 사법부가 뭔가 구리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사법부의 법의 사유화, 법적 독재를 영화는 통쾌하게 폭로한다.

Der Film des Direktors Zieyoung Jung wo eine nicht alter Kriminalsache gesehen wird, ist bunderbar. Damals wurde  die Sache so zweifel ausgesehen, befriedigend der Film ausdeckt den Privatgebrauch der gerichtliche Organisation, die Diktatur des Rechts.

 

2007.1.16.

법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이 질문을 좀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변경해야 한다. 법적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왜냐하면, 정당한 법에 대해서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은 최소한 상식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아마도 칸트를 따른다면, 도덕의 인식근거인 법을 따르려는 준칙의지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이 준칙의지의 토대는 자유인데, 자유는 도덕의 존재근거이다. 이 준칙의지는 자신의 취향이나 경향의 편협성에 제압당하지 않는 보편화 가능성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나의 준칙은 나의 욕구에 희생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확대가능한 원칙이어야 한다.

법철학사에서 자연법 이론가로 분류되는 칸트의 정언명령으로 법을 이해하는 것은, 법실증주의가 만연된 현대사회에서 이상적인 법치주의, 혹은 법과 윤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도덕적 법치주의의 공상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욕구에 매몰되는 법은 아무리 법실증주의가 법의 효력과 명목성만에 주목한다고 하더라도, 법적 정당성의 실종을 암암리에 묵인하는 것이며, 이는 법 외의 권위를 요구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영화 '대부'의 첫장면에서 정당하지 못한 사법부의 판결에 불복해 시실리안 갱단에게 해결을 부탁하는 경우나, 아직 해직의 사유가 불분명한 한 해직 교수의 고법 부장 판사 석궁 피습이 그런 현상의 일례를 보여준다. 후자의 경우,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중대 범죄이며, 이런 결과의 만행이 궁극적으로 동기 자체도 불순하게 볼 근거가 되지만, 전반적으로 확산된 사법부에 대한 골깊은 불신을 이번 사건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현직 대법원장의 변호사 시절 수임료 탈세 혐의를 비롯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전관예우, 즉 변호사로 개업해 법원내부에 개입하는 전직 판사들의 부적절한 처사 등으로 신뢰가 추락하는 법원으로서는 이 사건이 국면전화의 계기로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이것이 절차가 생략된 처형으로 후세인에게 일고 있는 일말의 숭고함을 사법부에게도 돌려야 한다며 분개한다면 착잡한 일이다.

석궁 공격의 가해자 김명호 전교수의 재임용탈락에 대한 95년~97년 사이의 민사소송 일지를 보면, 3개 법원(지법, 고법, 대법)은 학교 정관에 근거해 재임용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즉 김교수가 본고사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사실(95/01/16)과 이에 대해 학교측이 보복을 하기 위해 재임용에 탈락시켰다(96/02/29)는 주장 사이에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고 보고, 학교측이 전횡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내 수학계는 물론이고 국제수학, 과학계에도 반향을 일으킨 수학문제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냉정하게 사랍학교법의 틀내에서 사안을 본 것이다. 그러나 2003년 헌재의 구사랍학교법 53조 2의 3항(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당해 학교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임면할 수 있다)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정은 부당한 재임용 거부에 대한 구제절차가 사립학교법에 전무함을 보여준다. 이 판결 이후 재임용에 탈락된 교수가 최초로 구제되고(04/4/22) 재임용시 재심기회를 부여하는 사립학교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04/12/29). 보수적인 법의 특성상 법이 사회의 변화에 대한 열망에 더디게 반응한 것이다. 이렇게 법체계는 김명호 전 교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됐지만, 2005년 김전교수가 다시 제기한 서울지방법원의 교수지위확인 소송이 또 기각되면서 극단적 방법으로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송을 맡은 재판부의 판결문은 학자로서의 자질과 양심은 인정되나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문제삼을 수 있는 김명호 전교수의 기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법이 과연 인격적 자질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두고 논란중인 재임용 절차에 대한 시비를 판단할 수 있는가? 만약 김명호 전교수의 교수시절 언행과 행적이 대학 구성원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비정상적이었음이 사실이라고 해도, 법의 판단 기준이 사립학교법 개정 이전에는 구사랍학교법 틀내에서 작동하고 있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개정 이후 인격적 자질 운운은 문제의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재판의 결과는 부당한 것인가? 이 부당한 결과에 대해서 저항하지 않는 것은 용기없는 행동인가? 비록 재판의 결과가 원고에게 부당하게 인식될지라도, 또한 법조문의 내용상 드러나는 사태파악에 문제점이 발견될지라도, 판단을 위임한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하는 않는 실력행사는 그 자체가 위법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미 결정된 판결은 다시 심의하지 않는 것이 법의 특성이라 해도, 부당한 판결에 대해선 번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원고가 할 일이 아니라 다시 법원에서 할 일이다. 그렇다고 소송과 관련된 모든 검토사항을 법원의 심리에만 맡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법적 심리 과정의 투명성과 근거성이 빈약하여 법적 신뢰 지수가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위임된 판단은 점차로 본분에 맞는 권력을 상실할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조직, 조직과 조직이 인격적 관계에 기대할 여지가 없을 때 이들의 관계는 법적 관계로 돌변한다. 이러한 법적 관계는 인격관계의 붕괴에 직면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법이 이런 역할에 실패한다면 법의 존재는 유명무실해 진다. 물론 법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처방일 수는 벗으나 법이 제 역할을 못할 때 일어나는 법 외의 처방은 위험한 현상이다. 법의 권위가 법원 밖에서 흔들리는 이 상황은 법이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결과로 볼 수 없는 현상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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