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10 : 전란 초기의 혼돈

책들 Bücher 2017. 7. 26. 07:4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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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모스크바로 진격해 오는 80만의 프랑스군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상황은 어쩌면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대응을 연상시킨다.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침략군을 막아내지 못한 채 후퇴만 하는 점에서 그렇다. 톨스토이는 결코 러시아의 지연전술로 나폴레옹이 수렁에 빠져 들었다고 보지 않는다. 드레스덴까지 와있던 프랑스군이 가을로 접어든 시기에 월동준비도 안된 채 러시아로 쳐 들어간 것 자체가 위험부담을 안고 간 것이지, 러시아가 고도의 퇴각 전술을 펼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러시아의 혼란한 군지휘체계가 무기력한 대응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전선에 자리잡아 명목상의 군통수권을 행사하던 알렉산드르 황제와 그의 참모들은  결국 민병 독려라는 구실로 후방으로 돌아가고, 외국출신 지휘관을 포함한 군지휘관들 내부에서는 상호간의 반목이 일관된 명령체계의 작동을 방해했다. 군대를 총괄적으로 지휘할 능력은 되지 않더라도 조국의 치명적 위기 앞에 전선과 도시를 오고 가며 분주히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러시아 황제의 행위는 도망치기에만 바빴던 조선의 왕과는 대비된다.  막강한 힘을 갖추었지만 혼란한 지휘체계로 궁지에 몰리는  정규군 대신 조직화된 의용군이 준비되며, 여기서 볼콘스키 노공작의 투혼이 발휘된다.  이렇듯 자신의 소신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 있는  반면, 위대함으로 떠 받쳐지는 황제라는 권위에 기대서 자신의 입지를 보장받으려는 인간들은 시공을 초월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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