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학기 고대문화 연속서평
Pre-Capital : 마르크스의 근대 경제사 비판의 원천 탐사
1.스미스의 『국부론』
구일섭
1.도입부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처럼 산 사람의 두뇌를 압박한다.”
(마르크스, 『루이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중)
일본의 탁월한 문예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아사다 아키라와의 대담에서 위에 인용한 책을 언급한다.1) 이미 25년이나 지난 이 대화에서 칸토의 집합론과 소쉬르의 기호학,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구조동일성이라는 형식에서 서로 참조되는데, 중심 없는 구조로서 전능한 자본의 힘은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에 비유된다. 프랑스 대혁명이 보나빠르트로 대표되는 부르조와 혁명으로 퇴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책을 가라타니가 위상수학과 관련지어 논의하는 것이 비약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 사유의 유목민들에게는 새롭고 즐거운 실험이다. 이렇듯 우리가 단지 먼 과거로부터만이 아니라 인접한 시대의 타학문에서도 사유를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양식은 오늘날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문 간의 분과화가 본격화된 20세기 이전, 시대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던 사상가들은 특정 분야에만 자신의 관심을 한정시킬 수 없었다. 혹 관심의 한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총체적 문제를 풀어가는 실마리로서의 열쇠개념에 불과할 따름이다. 니체에게 그것은 힘에의 의지(권력)이었으며, 베버에게는 이념형, 마르크스에게는 자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의도는 마르크스의 이 자본을 종점으로 삼아, 작품으로서의 『자본론』을 쓰도록 마르크스를 ‘압박’한 경제사의 주요 흐름을 검토하는데 있다. 물론 마르크스를 압박한 이 ‘죽은 세대’에는 헤겔, 심지어는 칸트를 포함한 다양하고 두터운 영역의 지적 전통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이들과 정면으로 조우할 것을 기약하면서, 경제사의 굵직한 지적 전통만을 짚어 보는 것으로 한다. 이 전통을 돌아보는 첫 행보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찾아 나선다. 이 책을 직접 읽는 이유는 스미스가 신자유주의의 주도적 이념인 자유방임주의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만큼 그의 주저를 직접 읽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저서가 고전파 이론가인 리카도와 맬서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에게도 끼친 영향을 본다면, 간과할 수 없는 저서임에 분명하다. 『국부론』이라는 방대한 산을 이번에 거칠게라도 일단 오르고 나면 4월에는 고원의 산책로처럼 평이한 길을 택하려고 하는데,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소개로 리카도, 맬서스, 그리고 생협운동의 선구자들을 만나본다(『세속의 철학자들』(이마고, 2006)) 그리고 6월에 또다른 험준한 산맥인 마르크스의 『자본론』 앞에서 우리의 여행은 잠시 멈춰 선다(『공산당선언』,『경제학-철학 수고』). 이들을 만난 이후에 우리가 마주치는 마르크스는 더 이상 과거의 악령에 시달리는 마르크스가 아니라 악령을 고달프게 괴롭히는 마르크스일 것이다.
Pre-Capital이라는 개념은 특정한 학문적 토론이나 결과물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작품으로서의 『자본론』을 극점에 위치시키고, 『자본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근대 경제사의 주요 저작물을 검토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pre라는 접두사가 동일 저자의 작품체계에서 중요 저작을 기점으로 삼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며(가령 칸트의 경우 3대 비판서 이전의 저작물을 약칭하는 Vorkritische Schriften) 특정한 철학사의 인물을 분수령(가령 Pre-Socrates)으로 삼는 데서도 착안한 것으로, 경제사의 주요 노작인 『자본론』 이전의 경제사상을 지시한다. 이는 마르크스라는 동일 저자의 작품 체계 내에서만 정합적으로 마르크스를 재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대 경제사라는 큰 흐름에서 마르크스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다. 원전읽기는 스미스의 『국부론』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경제학 철학 수고』를 읽는데 그치고, 그 사이의 인물들은 주로 하일브로너의 소개서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 연속서평은 책을 평가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독서의 1차 목적인 학습의 충족도 감안한 것이다. 당신이 이 책들을 동시에 읽는다면, 여기에 게재될 이 글을 즐겁게 공략할 지점들이 눈에 띌 것이다. 이 글이 어떤 작품에 대한 불충분한 서평이 되지 않게 하는 길은 동시진행으로 이 책들을 이미 독파한 당신의 질책이다.
2.국부론 : 근대적 인간의 탄생, 호모 에코노미쿠스
“이승과 저승의 두 순간 사이의 전생애에 있어서 누구든지 자기의 지위에 철두철미 만족해서 어떠한 종류의 변경이나 개선도 요구하지 않는 경우는 아마 한순간도 없을 것이다. 재산의 증식이야말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생각해내며 희망하는 수단이다. 이것이 가장 통속적이고 가장 명백한 수단이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증식하는 가장 유망한 방법은 그들이 획득한 것의 대부분을 매년 규칙적으로, 또는 어떤 특별한 기회에 저축하고 저축하는 것이다.”2)(2편 3장 ‘자본의 축적에 대하여’)
15세기 말에서 18세기 중엽까지 지속된 중상주의와 18세기 말의 중농주의의 영향하에 있던 아담 스미스(1723~1790)는 리카도, 맬서스, 세이, 밀에 이르는 고전파 경제학의 선봉 주자였다. 주지하다시피, 스미스가 등장하기 이전에 분과학으로서 경제학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스미스도 엄밀하게 본격적인 경제학을 도입했다기 보다는,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사회과학의 여명을 제시했다고 보는게 적절하다. 이런 시도는 현재 접할 수 있는 ‘경제학’ 교과서와 매우 상이하다. 스미스의 이 책이 주장과 설명, 방대한 사례가 뒤엉켜 있는 점은 분명 사회과학서로서는 다소 모호한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체계적인 서술로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경제정책수립에서도 참조될 정도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점점 더 현란하게 수식과 그래프로 도배되어가는 현대의 경제서와 『국부론』을 비교한다면 어떨까? 『국부론』도 그리 읽는 재미를 주는 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학적 기초 없이는 보기 힘든 현대의 경제서보다는 볼 만한 책임에 분명하다. 적어도 리카도가 그런 경우다. 27세까지 주식투자로 큰 재미를 보던 리카도는 휴양지에서 우연히 『국부론』을 읽고 경제학자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의 무엇이 그를 경제학에 끌어들일 정도로 작용한 것일까? 이 무모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위의 인용문이 보여준다.
어느 시대고 평화와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스미스가 살던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런던의 대화재(1666년), 페스트의 대유행(1665년), 대홀란드 전쟁(1665년~1667년, 1672년~1674년), 명예혁명(1688년), 대아일랜드 전쟁(1690년), 4차례의 대프랑스 전쟁(1688년, 1702년, 1742년, 1756년), 스튜어트 왕조파의 반란(171년, 1745년).3) 스미스에 따르면 이러한 분쟁과 재난은 정상적인 자본의 축적을 파괴하는 사회적 낭비다. 전란을 일으키는 국왕과 재상, 그리고 이들을 위해 전장에 나서는 군대는 사회의 최대 낭비자이므로,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착실하게 부를 축적하려는 개인들을 좀먹는 부류이다. 그렇지만 결코 이런 낭비가 모든 개인들의 정상적 축적을 방해할 수 없다고 본 점에서 스미스는 낙관론자다.
“정부의 모든 가렴주구가 한창일 때도 이 자본은 개개인의 사적 절약과 훌륭한 행동에 의해서, 즉 그들이 그들 자신의 생활상태를 개선하려하는 보편적이고 계속적이며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 남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축적되어왔던 것이다.”4)
이런 면에서 독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리스트(1789~1846)는 스미스가 국가와 국민을 부정하고 개인만을 인정함으로써 국민적 토양을 해체시키는 세계주의자라고 비판했지만, 『국부론』 4편과 5편에 가면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전혀 다른 서술이 보인다. 4편은 국가 내지 공동체가 인민에게 풍족한 부를 제공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고, 5편은 국가 내지 공동체가 공공의 사업을 수행하는데 충분한 수입을 제공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5편에서 스미스는 국방과 사법 및 공공토목사업과 청소년 교육을 인민에게 맡겨서는 않되는 국가적 사업으로 본다. 관건은 이런 거대한 국가적 사업에 드는 막대한 비용이, 스미스가 강조한 자연적 경제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조달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5) 그렇다면 이 자연적 경제법칙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앞서 우선 『국부론』의 집필배경을 보자. 스미스가 살던 당시는 이제 막 산업혁명이 도약하는 시대였지만6) 스미스는 2년 9개월 간의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중농주의자인 케네의 영향을 받았다. 의사였던 케네가 경제를 인민의 몸체로 보고 기계적 방식으로 서술한 『경제표』에 영향을 받아 스미스는 여행도중에『국부론』을 쓰기 시작했으므로7), 농업의 생산력을 부의 본원으로 강조하게 된다.
문제는 이 생산력을 어떻게 증진시키냐인데, 여기서 비로서 개인의 경제적 욕구를 발동기관으로 삼는 시민사회라는 근대적 기관차가 제조된다. 즉 이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서 개인들의 경제적 욕구가 단지 무작위적으로 방임만 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성격 자체가 시민사회의 추동력인 시장, 즉 생산량 뿐만 아니라 임금, 지대, 이자를 적정선에서 자연적으로 조율하는 몰인격적 시장에 편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카시마 젠야는 스미스를 근대화의 투사라고 말한다. 이제 앞서 물었던 자연적 경제법칙의 윤곽이 드러난다.
스미스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추가 자본이 있어야 생산량의 확대가 가능하고8), 생산량의 확대만이 사회적 부를 증진시킨다고 본다. 즉, 생산량의 확대에 따라 자연적으로 책정된 생산물의 가격은 경제의 세 주체에게 임금과 지대, 자본의 이윤이 균등히 분할되도록 정해진 금액이다. 생산량의 확대는 임금과 지대, 이자를 동반상승시키므로 경제발전의 최종 심급인 셈이다(물론 이 상승에는 시장에 의해 자생적으로 조율되는 한계가 있다). 이런 자연가격에 가려는 자연적 경향을 위해서 경쟁이 필요한 것이지, 독점을 위해서 경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스미스는 1편에서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정책으로, 자유로운 신규 인원의 직업진입을 방해하고 수습기간과 공장수를 신규인원에게 불리하게 작동시키는 길드의 배타적 특권을 거론한다.9) 이러한 잘못된 정책이야말로 정당한 경쟁을 저해시키는 사회악이다. 따라서 스미스는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의 선구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적 복지국가 모형의 선구자로 보는게 적절하다. 다음의 구절은 스미스가 상식적 차원에서 국가의 부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떠한 사회라도 그 구성원의 대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10)
3.새로운 에토스 : 스미스의 제안과 후대의 확대해석
간략히 말해 에토스란 그리스말은 로고스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한 시대를 규정짓는 인민의 생활태도를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로고스는 논리를, 에토스는 윤리를 뜻한다. 스미스의 『국부론』은 근대사회의 이러한 에토스와 로고스를 집약시킨 작품이다.11)서술 자체가 일종의 귀납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방대한 저술을 놓고 근대시민사회의 에토스를 뽑으려는 다카시마 젠야의 시도는 하나의 해석일 뿐이지만, 『국부론』이 단지 경제학서적으로 한정할 수 없는 고전임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투사도 무리라고 볼 수는 없다. 단, 이런 시각에서 스미스를 보려면 좀더 넓은 차원에서 그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근대 유럽을 근대적 정치체제의 형성기라는 시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영국은 다른 유럽의 강국보다 가장 빠르게 정치적 안정을 달성했다. 명예혁명(1688년)은 이런 안정의 내국적 완성이었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합병(1707년)으로 영국은 대외적으로 강국으로 발돋음했다(아일랜드와의 합병은 1800년에 이루어진다). 이렇듯 정치의 안정화와 내부통합만이 영국이 선취한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이 이러한 정치적 안정의 기반 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정치적 진보와 산업적 진보의 여파가 미국의 독립전쟁(1773년 보스톤차사건)을 촉발했다. 이러한 시기동안 프랑스는 봉건체제의 악습에 대항해 계몽사상가들이 까페에 집결하는 유럽의 지식 혁명의 발원지였지만, 그 사회상태는 아직 농업국가에 불과했다. 19세기 말 비스마르크에 가서야 통일을 이룰 독일제후국은 분열 상태에 있었고, 다른 유럽강대국에 비해 선취한 부문은 관념철학의 완성일 뿐, 프랑스에 비해서도 산업이 낙후한 봉건체제였다.
이렇듯 정치와 경제에서 선두를 달린 영국에서 철학과 정치이론의 기반은 홉스와 로크가 마련했으며, 이 기반 위에 스미스가 등장했으므로, 그가 해야할 작업의 성격이 어떠할 것인지 윤곽이 잡힌다. 더 이상 망명생활을 각오할 정도로 급진적인 정치이론을 펼 명분도 없고12) 더 이상 심오한 철학을 파고 들어갈 이유도 없는13) 영국에서 한때 도덕 철학자였던 스미스는 새로운 시대의 과제를 통속적인 경제적 문제를 중심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시대의 과제는 무엇인가? 근대는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논리로 돌아가는 세계를 준비하는 시기다. 영국에서 국왕의 절대권력은 의회가 제지했으며 국교회의 독주는 비국교도가 저지했으므로 정치와 종교의 과잉이 억제됐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가 더 이상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주체는 누구인가? 종교가 성령이고, 정치가 성부라면, 이제는 시민이 성자가 되어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시민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성자의 근본적 욕구는 정치와 종교의 현란한 명분에 비해 노골적으로 세속적이서 그들에게 필요한 성소는 궁전이나 교회가 아니라 바로 시장이었다. 그러나 시장을 매개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려는 이 세속적 욕구의 충족없이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이룩될 수 없다. 이른바 비생산적 산물은 생산적 산물이 충족된 곳에서 꽃피우는 것은, 스미스가 드는 비유처럼 귀금속이 생산력이 발달한 사회에서 가치가 상승하는 바와 마찬가지 원리다. 따라서 스미스는 이 시민적 상황에서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14)
그러나 스미스가 갖고 있던 생각이 단지 영국의 국내상황에만 적합한 것이라면, 그에 대해 오늘날과 같은 정중한 평가가 나올 수 없다. 또한 단지 정부의 규제없이 개인들이 자유롭게 거래를 하도록 맡겨두면 사회는 저절로 잘 작동한다는 생각만이 스미스의 근본적 문제의식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하는 후대의 자유방임주의자들에게 스미스는 분명 전거를 제공한 학자임에 분명하나15), 그것은 스미스가 시대의 한계 속에서 반사적으로 제시한 아이디어일 뿐이다. 즉 당시까지도 만연된 특권적 길드와 월권적 정부기구의 방만과 나태에 대한 방안으로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이라는 기질을 내세운 것이지만, 이것이 반복적이고 체계적으로 『국부론』에 제시되지는 않는다. 즉 인간 심성의 고귀한 측면이 아니라 이기적 본능이 사회전체의 이익에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공익사업을 벌려 타인의 공리를 조사해 혜택을 주는 방안보다 유리하다는 생각은16), 하이에크처럼 자유방임주의를 극단으로 밀고 가 사회체제의 자율적 작동 체계로 정립시키려는 작업에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스미스의 강조점은 이런 이기심보다는 부의 축적과 자연적 배분에 관한 소박한 긍정에 있었다. 개인적 이익의 발견은 이 긍정에서 나온 부산물인데, 개인적 이익만 강조하는 것은 스미스의 일부만을 확대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걷어내서 스미스를 보면, 그는 자연법의 전통에서 농업을 중시한 키케로의 윤리학을 세속화시킨 면모를 보여준다. 따라서 스미스는 한편에서는 자유방임주의의 길을 예비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천상의 윤리학을 현실에 정착시키려는 윤리적 경제학도 마련한다. 하일브로너가 『세속의 철학자들』에서 보여주는 스미스에게는 이런 면모가 드러난다. 다음달에 그의 소개로 이 경제학의 아버지를 애증의 관계로 몰고가는 그 후예들을 만나보자.
1) 아사다 아키라, 문아영 역『도주론』 중 “마르크스, 화폐, 언어”(민음사, 1999).
2) 스미스, 〮 최호진⁃정해동 역『국부론』상권(범우사, 2000), 423면.
3) 스미스, 앞의책, 427면.
4) 스미스, 앞의책, 428면.
5) 다카시마 젠야(高島善哉), 김동환 역『아담 스미스 :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시각에서』(소화, 2004), 130~134면. 이 책은 일본에서 1968년에 출판됐다.
6) 스미스는 당시 글래스고 대학의 수리공장에서 일하던 제이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도록 도움을 준 지원자했다.
7) 그러나 『국부론』은 이후 10년이 걸려서야 출판됐다.
8) 헨리 조지가『진보와 빈곤』에서 자본이 임노동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임노동이 자본을 창출한다는 명제를 끌어내기 위해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고전파의 선두주자는 스미스다. 그러나 인구라는 변수로 인해 생산력이 결코 인구증대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맬서스의 비관적 전망에 대해 애시당초 스미스는 이에 대한 별 고민이 없을 정도로 낙관주의자였고, 헨리 조지는 맬서스를 격렬히 비판한 점에서 양자의 공통점이 있다.
9) 스미스, 앞의책, 159-160면.
10) 스미스, 앞의책, 110면.
11) 다카시마 젠야, 앞의책, 52면.
12) 홉스도 그렇지만, 특히 로크는 전생애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표명 때문에 망명생활을 전전해야 했다.
13) 영국경험론 철학의 예각을 다듬은 흄은 스미스의 친구이기도 했으며, 스미스 자신도 본래 자신의 학자생활을 문예비평으로 시작했다. 영국에서 철학은 흄을 고비로 더 이상 고양되지 않을 정도로, 깊이 들어가는 양상이 아니었으나, 역설적으로 흄의 영향은 독일에 수출되어, 칸트가 비판철학을 완성하는데 중요한 자극을 준다.
14) 헤겔도 근대 시민사회를 구성할 사회체제를 고안하면서 스미스의 생각을 참조한다.
15) 다카시마 젠야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표현은『국부론』에 단 1차례 언급된다.
16) 토드 부크홀츠, 이승환 역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김영사, 1994), 46,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