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오래 전에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이 한창 회자되는 시절, 이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직장후배가 나에게 삼성이 망하면 한국도 망하지 않냐는 식의 질문을 내게 했다. 그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대답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근거는 없어도 확신 있는 답변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구리고 저질인 기업은 망해도 싸다는 분노감 이외의  감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내 재계 1위이며 세계적인 이 기업은 이미 경제력에서 국가를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캠퍼스라고 명명한 반도체 공장들이 들어선 도시들은 삼성의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다. 수원, 화성, 평택, 그리고 천안까지 코로나 위기와 겹쳐 산업의 원천 소재로 급상승한 반도체 수요 때문에도 이런 공장들은 국가 기간 산업 시설로 모셔지고 있는 상태이며 삼성전자의 주식은 국민주가 됐다. 

반도체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 뭐라 할 말은 없다. 불가피한 산업의 방향이고 되돌릴 수 없는 기술의 길이다. 하지만 서울의 삼성동이 복제하듯 아래 도시들로 퍼져나가는 현상은 뭔가 이상하다. 이것이 불만이면 삼성의 반도체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 어쩔 것이냐는 엄포가 벌써 들려온다. 글로벌한 기업이 글로벌하게 나가는 것이 맞다면, 그 기업의 운영방식도 글로벌하게 되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재용을 사면하라는 구호들은 전혀 글로벌하지 않다. 첨단의 산업으로 무장한 세계적 기업이지만 그 핵심 가치이자 이익관심은 북조선 정권과 마찬가지로 세습의 정통성이다.

일자리를 찾아 삼성의 도시들로 몰리는 사람들, 세수의 활로를 열어주는 삼성의 입성을 환영하는 지자체들에게 삼성은 구세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돈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듯이, 돈이라는 가치 외에 다른 것이 없는 이 기업을 개인들도 지자체들도 일단 이용하고 보자는 현실적인 욕구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어쩌면 삼성공화국이 만들어내는 도시들의 모습은 기술적으로 획일화된 미래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상은 왕국인 이 새로운 계급질서 속에서 복종을 내재화시키는 신(新)고전주의적 통제사회의 전형으로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