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의 주말

단상 Vorstelltung 2012. 11. 19. 20:3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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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11월 말이다. 지난 주말엔 올해 들어 3번째로 필름이 끊기는 취로를 걸었다. 이렇게 한번 기억의 끝장이 날라가 버리면 머리 속의 세밀한 기관에 나사가 빠져버린 듯한 의식이 며칠간 이어진다. 촌사람이 시내에 나갈 때는 귀로를 주의해야 한다.

 

지난주에 이병주의 『지리산』7권을 모두 읽었다. 박경리의 『토지』에 이어 시대적 연속성을 좇아 읽은 것인데, 이야기의 구성이 다소 조잡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 개인의 자적전 요소와 기록적 요소, 실존한 작중 인물들의 가공, 수기의 형태( 6권의 절반과 7권)가 뒤섞여 있다. 권창혁으로 대변되는 공산주의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공격의 이면에는 파르티잔의 최후를 마감한 박태영을 비롯한 당대의 처참한 희생자들에 대한 공분의식이 있다. 남로당에 이용당하고, 결국 이 남로당의 주축인 박헌영, 이승엽 등이 전후 김일성으로부터 숙청을 당하자, 당과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빨치산들은 정처 없는 신세로 몰락, 토벌군에 포위되고 만다. 자신의 선택,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되려했던 자신의 헛된 야심에 스스로를 복수하고자 최후의 파르티잔이 될 결심을 한 박태영에게서 역사는 다시 시작될 수는 없었던가?

 

안철수나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으면 새누리와 다를 바 없는 수구꼴통으로 몰아가는 세태 속에서, 또다른 박태영을 찾고자 최인훈의 『광장』을 다시 읽어 볼까 생각중이다.

 

*『지리산』에서는 임철우의 단편 <아버지의 땅>의 모티브가 될 만한 지점을 찾기 힘들다. 남녘의 버려진 빨치산들이 허망한 구원을 찾아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을 넘는 월북의 루트를 이태의 수기에 기반한 6,7권에서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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