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단상 Vorstelltung 2023. 12. 11. 06:1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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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가기 전 겨울방학의 어느 추운 밤, 미닫이 식의 창호 문이 달린 허름한 자취방에서 글을 쓰며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 밤에 이곳에서 담배만 있다면 어느 누구와 함께 있지 않더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몇 년이 지나고 이런 생각을 동기생에게 얘기했는데 그의 답변이 기억나지 않지만, 별로 수긍하지 않는 편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는 생활 속에서 그런 자아도취적 고독감이 파고 들어갈 여지는 없다. 아니 여유가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포화 속에서 생명이 순간 순간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무의미하겠지만, 삶의 종점은 미뤄든 숙제처럼 저 편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잘 차려진 밥상에서 미식을 즐기며 죽음의 철학을 설파했다는 쇼펜하우어 못지 않게 사회의 결정적 구조는 개별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연동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험산업은 병로와 죽음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다. 한국전쟁 후반기 지리한 휴전협상 속에서도 많은 인명을  앗아간 중부전선의 치열한 교전은 스탈린의 죽음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몰락 이후에나 끝날지 모른다. 개별체들의 죽음은 또 다른 세상을 여는 삶의 출구인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면은 죽음 직전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하나의 연습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더 나아가 나와 너,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될지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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