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단상 Vorstelltung 2012. 12. 31. 06:5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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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하면서 전산부의 동갑내기 동료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혈압얘기가 나오자 나와 마찬가지로 이 동료도 고혈압이었다면서 매주 쉬지 않고 산에 올라 정상혈압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내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냐고 했더니 당연하다고 했다. 나는 지난 가을 이후로 산에 갈 엄두도 못내고 있는 처지였다. 어제, 일요일 오후 가족과 점심을 먹고 운길산에 가볼까  했는데 밥을 먹고 나니 주저됐다. 그냥 집에 있으면 퍼질게 분명해서 마음을 다시 고쳐 등산화 외에 별다른 장비 없이 화창하게 눈덮인 겨울산에 올랐다. 2시 30분에 출발한 터라 오르면서도 그냥 산자락 주변만 산책할지 산을 오른다 해도 어디까지 가야할지 마음을 잡지 못했는데, 햇살은 눈부셔도 추위는 곳곳에서 맹위를 떨쳤다. 15cm 정도의 눈이 쌓인 산에는 평소 주말과 다름없이 등산객들로 분주했다. 시간이 아무래도 오후 늦은 터라 올라가는 사람 보다는 내려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올라가며 유심히 내려오는 측의 등산화를 살펴 보니 대부분 아이젠을 달고 있었다. 어느덧 1시간 반 정도를 올라 약수터까지  가서 물을 마신 후 계속 산을 타고 운길산으로 갈지 돌아갈지 판단해야 했다. 오르는 길은 어떻게 간다고 해도 운길산에서 북한강변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아무래도 험해서 아이젠이 없으면 위험할 수 있고, 더군다나 시간도 벌써 4시에 가까워서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 좀더 빨리 올랐으면 분명 운길산까지 갔을 테지만, 아무래도 겨울산에서는, 그것도 혼자 가는 길이라면 최소한의 장비는 갖춰야 한다는 점을 올라온 산길을 그대로 내려가면서 절감했다. 이렇게 동일한 산길을 올라갔다 내려가는 일은 처음이었는데 이것도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올라갈 때는 힘이 들어 주변을 볼 만한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는 관성이 있는데, 내려올 때 보는 동일한 주변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저 멀리 도봉산과 불암산, 수락산 사이로 서울이 흐르고 테크노 파크가 뾰족산처럼 솟아 있는 것도 보인다. 눈 덮인 하산길을 보면서 심신을 괴롭히고 긴장시키는 일상업무의 과중도 한층 가벼워짐을 느낀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몸의 체험에서 벗어난 인식이 과도한 이성주의로 흐름고 있음을 비판한다. 인식은 체험과 뒤섞일 때 생명있는 인식이 된다. 몸을 움직이면서 어떤 멋진 생각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명상과 더불어 산행은 나이가 들 수록 가까이 하면 해로울 게 없는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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