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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이 소설은 작가의 큰삼촌에 대한 작가 어머니의 구술에 바탕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태어난 세대에게 이런 기억들은 한반도의 보편적 가족사라 할 정도로, 전쟁의 검은 그림자는 짙게 퍼져 있다. 혼란의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주변강국에 의한 짧은 해방기, 강대국 간의 힘의 균형으로 그어진 삼팔선, 한국전쟁이라는 시대를 겪은 세대와 이 세대의 품에서 자란 세대는 그야말로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가족사에 각인해야 했다. 나의 기억으로 더듬어 보면, 소설상 이런 가족사를 형상화시킨 작품으로 최인훈의 '광장'과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떠오른다. 최인훈은 김일성 체제가 성립되어 가는 전쟁전 북한의 생활에 대한 직접적 체험이 있었으며, 이문열은 월북한 아버지에 대한 회한에 묻힌 필적을 남겼다. 특히 '광장'의 '이명준'은 '한씨연대기'의  '한영덕'을 연상시킨다. 그어진 삼팔선 양편에 성립한 광기어린 체제는 평범하게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살려는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북은 강력한 수령 지도체제가 마을단위까지 확장된 집단 정치의 장으로 장악되었고, 남은 북에 대한 반공과 일제의 잔재로 뭉친 지배층과 인민의 갈등이 속출하는 사회적 혼란과 부패의 장이었다. 2차대전 후 약소국들이 겪는 혼란의 전형을 한반도가 보여준 것이고, 이런 혼란은 지금도 이라크와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에서 진행중이다.
 
미국과 소련(이제는 중국) 사이의 힘의 완충을 위해 한반도에 인위적으로 그어진 삼팔선으로 인해 갈등은 고조되었고 전쟁으로까지 치달었다. 강대국의 몇몇 정책 브레인에게서 나온 생각들이 '한민족'이라 불리는 인민의 가족사를 갈갈히 찢어 놓았다. 이러한 상실과 이산의 아픔을 눌러앉은 채 한쪽에서는 형식상 민주적 지배체제가 형성되었고, 다른 한쪽엔 기형적 지배체제가 지속하고 있다. 한쪽은 아예 공화국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왕정이라고 이해하는게 합당하다. 이 왕정이 일당지배체제를 버리는 정치실험을 하는 날이 온다면, 입헌 민주정이 될 것이다. 변화가 어떻게 되든, 통일에 대한 생각은 잊혀져 가는 가족사를 들출 때마다 되새겨지는 주제다.    
 
*MB정권에서 아무래도 한반도 대운하를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움직임이다. 팔당상수원을 없애고(땅값 오르겠다), 낙동강의 지하수로 서울의 상수원을 삼겠단다(대운하의 물은 물류선박의 운행으로 상수원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초등생도 웃을 대학교수의 계획이다). 그런 몰상식적인 토목공사를 그렇게도 하고 싶다면, 차라리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 북한에 인프라를 닦는 사업을 하는게 타당하다.
 
*소설에 대한 간략한 요약
 
한영덕은 일제시기 평양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주변머리가 없어 기술이 없이는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평양의전과 교토의대를 나와 대학병원의 의사가 된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선동집회에 불참하는 등, 체제 선전에 비타협적 자세로 일관하자 당으로부터 불온분자로 몰려 전쟁중 군의관으로 전선에 나가는 명단에서 제외되 평양의 인민병원에서 전란의 상처를 입은 환자들을 돌본다. 전쟁초기부터 시작된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평양에서 어렵게 환자를 돌보던 한영덕은, 미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뒤바뀌자 평양을 벗어나자는 친구의 권유를 물리치고 꿋꿋히 환자를 보았지만, 후퇴를 결정한 당이 부적격 사상범으로 한영덕을 비롯한 불순분자들을 집단 처형시킨다. 기적적으로 처형장에서 살아남은 한영덕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다시 북에게 유리해 지자,  대동강변에서 모친과 아내, 딸아이를 남겨두고 아들과 함께 월남한다. 남에서 동생을 만난 한영덕은 시간의사를 전전하며 어렵게 지내다 평양출신 치과의사의 소개로 무면허 의료사업을 하는 두 사업자를 만나 병원을 공동으로 운영하는데, 이들과의 만남으로 한영덕은 부당하게 간첩으로 몰려 처절한 고문까지 받는 불운한 시절을 보낸다. 소설은  남한에서 체제가 안겨준 고초를 겪고 난 후, 남한에서 새롭게 이룬 가정을 등지고 배회하다 말년의 안식을 위해 적산 가옥의 다락방에서 한 노인이 살림을 풀어 헤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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