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의 오류

단상 Vorstelltung 2009. 5. 21. 23:1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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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김광수 경제연구소 부소장의 강연 중 합성의 오류라는 얘기가 나왔다. 운동장 관람석의 오류라고도 불리는데, 관람석의 앞줄에 있는 사람이 경기를 더 잘 보기 위해 일어서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차례로 순차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결국 경기장의 모든 관객들이 일어서서 불편하게 경기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부동산 버블을 빗대기 위한 비유인데, 비단 이 오류는 이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교육에도 그대로 들어 맞는다. 성년이 될 때까지(물론 성년 이후라고 더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좋은 학벌을 갖추기 위해 대부분의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사교육시장에 뺑뺑이 돌리는 현상도 어떻게 하면 좀더 힘들게 경기를 볼 수 있을지 골몰한 결과이다. 내집 마련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루기 위해 누적된 가계부채가 내수시장을 짓눌리는 정도가 수도권에서 극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으로 재미를 봤던 과거의 재미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해 그래도 부동산에 기대를 거는 심산이나, 아이들의 심성이나 자질, 기대를 외면하고 오로지 입시를 겨냥한 살벌한 사교육 열풍으로 몰아치는 심산에는 일종의 도박심리가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정말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는 사람이 있을 거고, 명문 대학에 들어가 인생의 전반에 꽃을 피우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안되는 희소한 '성공'을 위해 대다수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뭔가 잘못, 아니 웃기는 일이다. 집이 없어도 여유롭게 살 수 있고,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구조는 그리 고고한 이상도 아니다. 다수가 편하게 앉아서 경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앞에서 기를 쓰고 서서 보려는 소수를 앉히면 그만이며, 이런 요구는 최소한 유권자로서 제기할 수 있는 권리다.   

용산참사의 경우가 보여주는 바처럼, 메이저 건설사와 결탁된 도심 재개발공사가 도시 서민의 삶의 기반을 옥죄는 것이 흡사, 19세기 초반 미국 독립 이후 백인들이 동부에 산재해 있던 인디언들을 서부로 몰아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얼마 안되는 보조금을 주고 인디언을 미시시피강 너머 서부의 허허벌판으로 쫓아내지만, 얼마 안되어서 새로운 이 정착지도 착복되고 만다. 그럴싸한 협정을 만들어 인디언을 보호하는 시늉을 하지만, 겉치사일 뿐, 속내는 인디언이 이주를 거부하면 무력도 불사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경계에 놓인 도시의 인디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좀더 근본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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