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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와 맑스의 비교연구중 고전에 해당하는 저서다. 부록에는 20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베버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주는 더글라스 켈너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칼 뢰비트는 베버의 합리화 개념과 맑스의 사물화 개념을 중심으로 두 거대 이론가의 공통점과 차이를 충실히 보여 주려 한다. 베버에게 경제적 합리성의 증대와 관리체계의 효율화는 세계사의 진보에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맑스에게 이러한 경향은 사물화로 나아가는 타락의 과정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 즉 맑스진영으로부터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베버적 합리화에 대한 오역을 저자는 충실히 교정하려 한다. 베버에게 맑스주의는 자본주의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전복을 실천하려는 변혁적 세계관으로 인정받지만 과학으로 인정되진 않는다. 과학의 요건을 충족시키기에는 유물론적 사관 자체가 하나의 학문적 독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베버는 결코 사회학 방법론을 개척한 과학자 내지 방법론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 또한 맑스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베버의 의도와 결과물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용한 것은 하버마스에 이르러서 가능했다.

베버의 총체적 관심사는 하나의 이념형으로 특정사회를 이해하려는 방법으로 나타나는데, 그 결과물의 하나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저서를 통해서 베버가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공생관계를 주요 인식 동기로 가지고 있었다는 오역이 나오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근대 초기에 한정된 독일 제국의 자본주의의 형성에 끼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만을 베버가 인정한 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연구는 어디까지나 금욕주의라는 청교도적 정신이 경제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서술한 경험주의적 문화과학의 첫 결실로서 의의가 있다.

고전에 해당하는 비교서인만큼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지도 13년이 된 책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생생히 현대적임에 틀림없다.
 

(200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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