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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블완 연속 주행을 마치고 잠시 글쓰기를 쉬려 했는데, 오늘 뜻밖의 소식을 듣고 글을 이어간다.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에 살던 사촌형이 있었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있는 편이라 별로 기억할 만한 일은 없었으나, 고3 시절 우연찮게 동네의 독서실을 같이 다니게 됐다. 형은 신학대학원 시험준비를 위해 이 독서실을 끊은 것이었고, 나는 동네의 다른 독서실에서 있다가 이 독서실로 옮긴 것이었다. 그 다른 독서실에는 동네 친구들과 같이 있었는데, 가끔 한적한 주말 밤에 거기서 술판을 벌이며 나름 수험생의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독서실 주인한테 걸려서 미운털이 박힌 상태였다. 어느 밤 내 자리 주위에서 떠들던 친구들 덕에 주인한테 한 소리를 듣고 나만 쫏겨나다시피  그곳을 나와 다른 독서실을 간 것이었는데, 어차피 가까운 동네다 보니 거기에도 다른 친구들이 있는건 그렇다치고, 그 형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독서실에 다니며 깊은 밤에 휴게실에서 형은 성서 이야기를 자신의 진로와 연관지어 하기도 했다. 성향과 외모로 봐서는 신학생 보다는 군인이 더 어울릴듯 보였는데, 결국 합격하고 신학대 박사까지 밀고 나갔다.

그후 몇 해가 지나서 형이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 나한테 도움을 요청해서 몇 개월간 논문 입력작업을 도왔다. 주제는 성서에 나타난 지옥에 관한 것이었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그 지옥이라는 것이 히브리 용어로 보면,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식으로 화염에 불타는 그런 현장이 아니라, 야곱과 라합의 아들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로 빠져버린 구덩이와 같은 어원이라는 점에서 볼 때 매우 일상적인 의미로 읽혔다.

그 이후로 한 동네에 살면서도 따로 만나서 얘기한 일이 드물었고, 서로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후일만을 기약했다. 촉망받던 신학박사 루터가 생을 달리한 나이대와 비슷하지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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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란 무엇인가

단상 Vorstelltung 2024. 11. 27. 02:3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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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시는 시골과 반대되는 의미로 쓰이나 대도시 사람들은 흔히 대도시와 멀리 동떨어진 소도시를 시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소도시 사람들은 도시 외곽 멀리에서 농경이 주된 경제활동인 지역이 시골이며 자신들은 엄연히 도시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소도시 내에서도, 간혹은 대도시 주변에도 농지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시와 시골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그런 구별이 행정적 단위의 구분 이외에 달리 가능할까? 더군다나 근현대사회는 도시의 팽창과 함께 한다. 김포시도 하나의 도시인데 거대 도시 서울로의 편입 논란은 그런 도시팽창의 기형적 면모이기도 하다.

도시의 팽창은 시골이라 불리던 지역을 더 주변화, 이질화시키고 도시와 도시 간에는 경쟁적 관계도 개입된다. 일자리와 사람이 몰리는 도시에 상업과 주거가 집중된다. 혹은 인위적으로 적막한 시골에 산업단지나 행정기구가 들어서서 새로운 큰 도시를 만들기도 한다. 창원, 울산, 포항, 세종 처럼. 혹은 독일의 마부르크처럼 구교와 신교의 종교적 전통과 봉건 영주의 정치적 영향력의 결합으로 도시가 형성된 경우도 있다. 궁예의 철원, 그리고 한양도 정치적 산물이다.

도시의 팽창이 가져오는 결과는 도시와 도시 사이에 지리적 완충지처럼 펼쳐진 영역을 좁힌다. 서울 외곽의 수도권은 위성도시들로 물샐틈 없이 둘러쌓여 있다. 또한 교통의 발달은 도시로의 예속을 심화시킨다.

사실상 도시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을 영유하기 위한 중요 거점이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모호하더라도 시골과 도시는 상호의존적이다. 더이상 활용가치가 없는 도시의 부지를 엄청난 노력을 들여 비옥한 농토로 바꾸는 도시농부들도 있다. 도시와 시골의 상호침투는 도시와 도시 간에도 이뤄진다. 도시는 분명 행정의 중요 단위이고 이에 근거해 운영되지만 도시의 풍경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각자의 개성으로 그려진다. 도시는 어쩌면 인물사진의 배경처럼 남아있기도 하지만 한 세대와 함께 몰락하기도 한다. 세대와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도시의 외형적 유산의 빈곤은 속도감있는 변화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전쟁과 자연재해와 같은 비극의 그것일 수도 있다.

국가라는 유무형의 장력에 비해 도시의 장력에 사람들은 더 끌린다. 사람이 도시를 거닌다고 하지 국가를 거닌다고 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규모가 작을수록, 보폭으로 둘러볼 만한 규모일 수록 도시는 더 직접적으로 현전하는 반면, 규모가 큰 도시는 행정의 비대와 함께 도시국가로도 불린다.

'도시란 무엇인가?' 라는 무모한 질문은 도시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표를 계속 남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어쩌면 거기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한 도시는 우리에게 말을 걸도록 무언의 속삭임을 건다. 이것에 대답하는 것이 도시에 사는 사람의 의무일 수도, 취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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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열전 : 안국동1, 춘천1

단상 Vorstelltung 2024. 11. 26. 03:3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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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생활을 할 때 안국동의 한 오래된 집에서 방을 잡고 다녔다.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의 옆골목을 빙 돌아 깊숙한 또다른 골목 끝자락에 있던 집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통해 잡은 방이었는데, 알고보니 이 부동산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 가족이 쓰는 본채 옆에 사랑방처럼 딸린 방에 월세를 주고 있던 곳이었다. 도서관이 가까워서 잡은 방이었는데, 막상 도서관 앞에 사니 잘 가지 않게 됐다. 백수시절에 자주 다니던 도서관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휴일날에도 발길이 잘 가지 않았다.

안채 너머에도 세를 놓은 방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있던 사랑채에는 방이 두 개 더 있었는데, 각 방에는 나보다 나이가 좀더 있는 남자 2명이 살고 있었다. 한 명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사였고, 또 한 명은 집이 있는데도 나와 살고 있는 아저씨였다. 형님으로 부르곤 했던 이 아저씨와 몇번 저녁을 같이 먹고 일요일날 근처의 목욕탕에도 함께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역시 출퇴근하기 바쁜  직장생활에 쫓겨 잠만 자러 들어갔던 것 외에 별달리 기억할 만한 일들은 없었다.

오래된 목조가옥이라 화재예방을 위해 방에서 취사를 할 수 없었고 여름날엔 모기향도 전기모기향을 써야했고,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해야했다. 아무튼 이런 곳에서 3개월 가량 지냈는데도, 이 당시 직장생활 3개월의 기억에 비해 이 집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거기서 끼니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심지어 화장실은 어떠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가 한번 와서 자고 갔던 일이 있었고 후배를 정독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데려왔던 일은 기억한다.

한번은 어느 가을날, 월욜까지 휴가를 내고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춘천에서 있던 행사에 참가했다. 일요일에 돌아와야 했는데 휴가로 맘이 놓여선지, 일요일 오후 술집에서 술을 너무 마셔서 그대로 거기서 잠들고 말았다. 매정하게도 함께 있던 일행들은 나를 놔두고 모두 가버렸다. 다음날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몸을 끌고 돌아왔고, 방에 들어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자러 들어가는 일 말고는 외면하고 싶던 방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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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열전 : 에어푸르트1, 정릉2

단상 Vorstelltung 2024. 11. 25. 07:2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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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푸르트는 튜링겐주의 주도이며 옛 동독지역이다. 독일의 정 중앙에 위치한  고도시로 이곳의 광장은 튜링겐주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면 배경화면으로 줄곧 등장한다. 2차 대전 말기 미군의 폭격을 비교적 덜 받아 중세시대 때 세워진 광장의 성전과 같은 고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폭격으로 뼈대만 남아 지붕도 없는 교회가 그대로 있기도 하다.

비자문제가 잘 풀리지않아 답답한 심정에 길거리로 나가 광장을 돌고 돌아오는 길은 문제를 잊게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에어푸르트의 고시가지도 무덤덤히 자리를 잡고 있는 돌들처럼 언제 다시 와도 그대로인 풍경으로 남아있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정릉은 어떤가? 정릉시장의 아릇한 야경은 먼 도시의 전통시장에나 남아있다. 과거세대와 미래세대가 공유할 일상의 장소가 사라져가는 변화의 시대에도 이  시기가 되면 언제나 그렇듯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옛날 산촌의 판자집 같은 목재 구조물이 추억의 불빛을 밝힌다.

앞선 세대가 후속 세대에게 물려줄 것은 무엇이어야 하나? 높은 차액을 실현한 집값의 고공행진으로 하늘 높이 올라가려는 아파트로? 에어푸르트 광장 성당의 첨탑도 하늘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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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열전 : 정릉1

단상 Vorstelltung 2024. 11. 24. 00:3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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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몽골 출신 부인의 무덤은 원래 현재의 정동에 있었는데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 도성 밖의 현재 정릉으로 옮겼다고 한다. 정릉은 미아로에서 도봉로로 이어지는 중간 지점 서편의 북악산 자락에 있는데, 내부순환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정릉에는 어린 시절 큰 댁이 있어서 가봤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덕배기에 있는 고택이었는데,  여느 변두리의 산동네같은 느낌이었고, 북적북적한 시장은 산 아래에 있었다. 그후 종암로에서 정릉으로 꺽어져 올라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에 업무상 많이 갔었는데, 어린 시절 봤던 동네는 사라지고 대나무숲같은 아파트 군락이 형성됐다. 그나마 내부순환로 북쪽의 정릉일대가 덜 개발되어 있었는데, 미아리로 넘어가는 솔샘로에서 밀고 내려오는 아파트 군단에 점령되어 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내부순환로 밑의 정릉로는 북악터널을 거쳐 평창동으로 이어진다. 터널을 사이로 두고 전통적 부촌과 서민촌으로 나눠지고 아파트군의 공격은 터널을 넘어서기 어렵다. 변두리 산촌에 형성됐던 서민의 보금자리는 아파트에 밀려 외곽으로 밀려 나는데, 이제는 외곽에서도 아파트가 밀려온다. 아파트의 협공이고 아파트의 연속이며 아파트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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