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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열전 : 안국동1, 춘천1

단상 Vorstelltung 2024. 11. 26. 03:3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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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생활을 할 때 안국동의 한 오래된 집에서 방을 잡고 다녔다.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의 옆골목을 빙 돌아 깊숙한 또다른 골목 끝자락에 있던 집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통해 잡은 방이었는데, 알고보니 이 부동산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 가족이 쓰는 본채 옆에 사랑방처럼 딸린 방에 월세를 주고 있던 곳이었다. 도서관이 가까워서 잡은 방이었는데, 막상 도서관 앞에 사니 잘 가지 않게 됐다. 백수시절에 자주 다니던 도서관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휴일날에도 발길이 잘 가지 않았다.

안채 너머에도 세를 놓은 방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있던 사랑채에는 방이 두 개 더 있었는데, 각 방에는 나보다 나이가 좀더 있는 남자 2명이 살고 있었다. 한 명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사였고, 또 한 명은 집이 있는데도 나와 살고 있는 아저씨였다. 형님으로 부르곤 했던 이 아저씨와 몇번 저녁을 같이 먹고 일요일날 근처의 목욕탕에도 함께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역시 출퇴근하기 바쁜  직장생활에 쫓겨 잠만 자러 들어갔던 것 외에 별달리 기억할 만한 일들은 없었다.

오래된 목조가옥이라 화재예방을 위해 방에서 취사를 할 수 없었고 여름날엔 모기향도 전기모기향을 써야했고,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해야했다. 아무튼 이런 곳에서 3개월 가량 지냈는데도, 이 당시 직장생활 3개월의 기억에 비해 이 집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거기서 끼니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심지어 화장실은 어떠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가 한번 와서 자고 갔던 일이 있었고 후배를 정독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데려왔던 일은 기억한다.

한번은 어느 가을날, 월욜까지 휴가를 내고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춘천에서 있던 행사에 참가했다. 일요일에 돌아와야 했는데 휴가로 맘이 놓여선지, 일요일 오후 술집에서 술을 너무 마셔서 그대로 거기서 잠들고 말았다. 매정하게도 함께 있던 일행들은 나를 놔두고 모두 가버렸다. 다음날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몸을 끌고 돌아왔고, 방에 들어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자러 들어가는 일 말고는 외면하고 싶던 방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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