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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에 해당되는 글 23건

  1. 2024.11.18 도시 열전 : 안성1 1
  2. 2024.11.17 도시 열전 : 이천1
  3. 2024.11.16 조선왕조 500년
  4. 2024.11.15 증강현실과 무의식(꿈)
  5. 2024.11.14 도시 열전 : 평택1 1

도시 열전 : 안성1

단상 Vorstelltung 2024. 11. 18. 08:2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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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늦가을에서 다음 해 봄까지 70km 거리의 안성에 있는 물류센터로 출퇴근을 하다 안성의 내리라는 동네에 방을 잡았다. 일반도로로 신호를 받으며 운전을 하는 출퇴근길이 그리 피곤한 일은 아니었으나 퇴근 후에는 밥 먹고 뉴스 좀 보다 바로 잠들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생활이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퇴근하는 길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하루 왕복 140km의 운전은 확실히 심신에 부담이 됐다. 신변을 정리하면서 마침 이사도 가야했기에 안성에 몇개월간 살 방을 구한 것이었다.

방을 구하기 전에는, 인적이 드문 산골의 물류센터에서 하루종일 있다가 퇴근하기 바쁜 생활 중 이따금 있던 회식자리와 우체국 볼일로 일터를 벗어나서야 동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상당한 거리로  동 떨어진 시내의 구시가지와 새로 형성된 신시가지가 전혀 다른 도시의 풍모를 풍겼다. 구시가지는 예전 서울의 80년대 변두리처럼 오밀조밀한 골목길도 많고 주차환경이 열악할 정도로 저층 주택단지로 다소 과밀해 보이기도 했는데, 회식 장소로 자주 갔던 공도라는 곳은 신도시처럼 비교적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마침 세월의 흐름이 동네마다 다른 속도감을 내듯이 어떤 동네는 완전히 시골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내리라는 동네는 중앙대 안성 캠퍼스가 있는 곳인데, 문예창작과와 예술대 등이 매우 광활한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학생들 때문에 형성된 원룸 형태의 집합주거시설에는 이제 학생 보다는 근방의 공단 등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외국인들을 겨냥한 식당들도 눈에 띌 정도 였다. 이따금 산책 삼아 그 넓은 대학 캠퍼스를 둘러봐도 학생들은 잘 보이지 않고 나처럼 마실 나온 동네 주민이 더 보일 정도였고, 그 주민도 주로 외국인이었다. 그렇게 멋지게 보이는 학교에 학생들로 넘쳐나던 시절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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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열전 : 이천1

단상 Vorstelltung 2024. 11. 17. 10:1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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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고속도로의 호법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영동고속도로 강릉방향으로 갈 때 하이닉스 반도체의 타워로 대표되는 이천을 수없이 지나쳐 가기만 했었는데, 이곳에서 3개월 정도 살 기회가 있었다. 바로 이 반도체 덕분이었다. 평택의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서 먼저 일하고 있었을 때 이천 하이닉스 현장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는데, 평택보다 수월하고 편하다는 것이었다. 평택은 현장 규모도 워낙 크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다 규율이 심해서 감옥같다는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분위기는 발주처인 두 거대기업의 사내 분위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며, 환실히 이천 현장이 평택 보다 여러모로 편했지만 뭔가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내보니 이천이 참 좋은 동네라는 인상이 들었고, 마침 그때는 경강선 전철이 들어서서 서울로 오고가기 편해진 시점이었다.

사전에 담당 팀장에게 받은 숙소의 주소지로 가기위해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버스도 있었지만 짐이 좀 되서 택시를 잡았다. 아파트 숙소였는데 각 방엔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여 비어 있는 거실에 내 짐을 풀었다. 당장 다음날부터 일하는 것은 아니고, 서류를 쓰는 일정이라 초저녁에 숙소 근방의 국밥집에서 반주를 하며 밥을 먹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까지는 일정에 문제가 생겨 며칠 늦춰졌다. 덕분에 시내로부터 3km 정도 떨어진 숙소와 현장, 그리고 시내를 택시와 버스, 도보로 오고가며 동네를 알아갔다. 자칫 일도 못하고 돌아가야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도 들었지만 정상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임시거주자의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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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단상 Vorstelltung 2024. 11. 16. 06:3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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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500년 이상 존속한 국가인 것은 새삼스럽다할 바 없으나 그 연대가 1392~1910년인 것을 보고 다른 느낌이 든다. 중세시대로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이어져온 왕국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중국은 그 사이 세 번의 왕조 변동이 있었고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쳐 통일 후 에도 막부, 메이지 정권으로 이어졌다. 유럽과 근동은 이에 비할 바 없이 복잡한 변동을 거쳤다. 중국의 왕조 변천과 일본의 전국통일은 조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폭주에 조선은 첫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세계사의 급박한 전개는 500년 동안 유학을 숭상하며 사농공상의 질서로 평온히 흘러가기를 바랬던 조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고려도 500년에 근접할 만큼 오래된 국가였던 점은 삼국시대의 붕괴로 더이상 요동 등지의 북방에 대한 영유권을 사대라는 형식으로 포기하면서 한족 계열의 중국 왕조로부터 침입을 받지 않은 것에 원인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고구려, 발해와 관련이 깊은 여진족을 오랑캐로 멸시하면서  병자호란을 겪어야 했다.

어떤 학자들은 조선은 당연히 일본보다 더 유교적인 국가인 것을 넘어 중극보다 더 그렇다고 보기도 한다. 중국을 사대하는 유교중심의 국가에서 한글이 창제되고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조선왕조가 현시대에 남겨준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은 동산같은 무덤들을 제외하면 한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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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과 무의식(꿈)

단상 Vorstelltung 2024. 11. 15. 07:5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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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램의 소설이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에서는 방사선에 노출된 한 우주정거장에서 정체불명의 방문자들이 연고가 있는 각각의 우주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여준다. 어떤 이에겐 옛날 작고한 부인이, 어떤 이에겐 난쟁이 등등이 나타나는데, 이 방문자들과 전혀 관련없는 우주인들에게도 그들은 보이며 들리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인간의 꿈에서도 나타나는데, 의식 중에서는 생각치도, 기억치도 못했던 사람이 꿈에 등장하는 경우다. 파스칼은 의식중에 일어나는 환상을 일시적인 꿈의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솔라리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특정한 조건에서 집단적 무의식의 발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마약이 일시적으로 가져다준다는 환각효과는 의지적인 무의식 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을 벗어나 있는 상태, 의지로 통제할 수 없거나 자발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태, 바울에게서부터 단테를 거쳐 프로이트에게서 비로서 무의식으로 통칭된 이러한 의식 심연에 있는 무기력의 전모를 밝히는 일은 뇌과학과 심리학, 정보공학이 합심해 달려들 주제다. 이것이 밝혀진다면 인간에게서 더이상 신비가 숨어들어갈 거처가 사라지고 종교도 더이상 설 지반이 없어질까?

인간 개별 개별의 무의식이 설명가능한 현상으로 밝혀 진다면 인간 행동은 완벽히 예측가능한 일로 확정될 것이다. 마치 양떼를 키우는 목동이 완벽히 그의 양떼를 통제하듯이 인간이 기술체계에 완전히 통제될 수 있다.   인갼이 양을 자신보다 못한 하등의 존재로 간주하듯이 AI가 인간을 열등한 지능의 존재로 볼 날이 오지 않을까?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들에 쉽게 답을 할 수 있다면 또다른 생각을 할 필요는 차단될 것이다. 쉬운 해답, 단 하나의 유일한 정답을 넘어서는 것이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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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열전 : 평택1

창작 Produktion 2024. 11. 14. 07:3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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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를 오고간지는 꽤 오래됐지만 살아봤다고 할 정도로 익숙해진 계기는 S사의 반도체공장 건설일 때문이었다. 조성준비중인 훵하고 광활한 건설부지를 보면서 이곳에서 일할 날이 올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었는데, 몇몇 년 후 어느 추운 겨울, 2기 건설현장에 뛰어 들었다. 직장을 퇴사하고 잠시 외국에 있다 돌아온 후 임시직으로 찾은 일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기간은 늘어나서 3년 가까이 평택에서 살았다. 이른바 숙노라고 불리는 숙식제공 건설팀을 이 기간동안 숱하게 옮겨 다녔다. 한 팀에 6개월 이상 있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이동하다 보니 평택 곳곳에서 생활했는데 세교동, 동삭동, 원천동, 비전동, 고덕동 등 이었고, 세교동과 동삭동에서 비교적 오래 있었다.

확실히 어느 지역을 알아간다는 것은 스쳐가듯 지나치거나 여행삼아 며칠 있어보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안다는 것은 그곳에서 온갖 기억과 느낌을 안고 온다는 것인데, 거리 곳곳에는 상념들과 함께 이런저런사람들과의 말들이 스며들어 있고 발길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짙은 중력이 작용하는 반면에 여행자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물론 여행자는 여행지의 주민에 비해 강력한 시차로 주민에게 주민이 보아도 보이지 않던 관찰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자는 그곳을 떠나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주민이나 임시거주자는 언제 그곳을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반도의 애매한 경계에 있는 이 도시는 반시골이나 다름없던 소도시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거대한 해일같은 세계적 기업의 공장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풍모가 일신됐다. 70~80년대 주택가 풍경 너머로 현대적인 고층건물들이 큰 파도를 이뤄 다가오던 기세는 요즘 이 기업의 실적부진으로 주춤하고 있다. 6기까지 간다던 공장건설은 4기에서 멈취섰다. 임시거주자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시에 반드시 다시 활기가 찾아올 것을 염원하듯 크레인은 팔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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