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를 오고간지는 꽤 오래됐지만 살아봤다고 할 정도로 익숙해진 계기는 S사의 반도체공장 건설일 때문이었다. 조성준비중인 훵하고 광활한 건설부지를 보면서 이곳에서 일할 날이 올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었는데, 몇몇 년 후 어느 추운 겨울, 2기 건설현장에 뛰어 들었다. 직장을 퇴사하고 잠시 외국에 있다 돌아온 후 임시직으로 찾은 일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기간은 늘어나서 3년 가까이 평택에서 살았다. 이른바 숙노라고 불리는 숙식제공 건설팀을 이 기간동안 숱하게 옮겨 다녔다. 한 팀에 6개월 이상 있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이동하다 보니 평택 곳곳에서 생활했는데 세교동, 동삭동, 원천동, 비전동, 고덕동 등 이었고, 세교동과 동삭동에서 비교적 오래 있었다.
확실히 어느 지역을 알아간다는 것은 스쳐가듯 지나치거나 여행삼아 며칠 있어보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안다는 것은 그곳에서 온갖 기억과 느낌을 안고 온다는 것인데, 거리 곳곳에는 상념들과 함께 이런저런사람들과의 말들이 스며들어 있고 발길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짙은 중력이 작용하는 반면에 여행자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물론 여행자는 여행지의 주민에 비해 강력한 시차로 주민에게 주민이 보아도 보이지 않던 관찰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자는 그곳을 떠나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주민이나 임시거주자는 언제 그곳을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반도의 애매한 경계에 있는 이 도시는 반시골이나 다름없던 소도시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거대한 해일같은 세계적 기업의 공장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풍모가 일신됐다. 70~80년대 주택가 풍경 너머로 현대적인 고층건물들이 큰 파도를 이뤄 다가오던 기세는 요즘 이 기업의 실적부진으로 주춤하고 있다. 6기까지 간다던 공장건설은 4기에서 멈취섰다. 임시거주자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시에 반드시 다시 활기가 찾아올 것을 염원하듯 크레인은 팔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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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Produktion'에 해당되는 글 13건
- 2024.11.14 도시 열전 : 평택1 1
- 2021.02.12 전쟁과 평화
- 2020.11.14 연재소설
- 2013.02.01 지난 12월 대선 전
- 2012.08.12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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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되어버린 강
구일섭
강화도 최북단 너머
두 개의 강이 바다가 되어 흐르고 있다
널찍한 연백평야가 펼쳐져 있는
매서운 겨울의 들판에는 인적이 없고
들판을 둘러싼 산야에는 나무가 없다
송악산이 보이고 개성으로 가는 길도 보이건만
그 옛날 활발한 물자의 교통로였다는 강물은
속으로 깊이 깊이 얼어 있다
강의 차안에서 부르면
강의 피안에서 응답이 올 수 있으련만
차안과 피안은 연옥과 지옥의 거리만큼 멀다
음산한 독재자를 수행해 강 저편을 바라보며
피부색이 다른 동족을 섬멸하려는 조소로 새겨진
봉우리의 이름 뒤로
악귀의 면상을 띤 전차가 피를 갈구한다
간조가 되면 헤엄 쳐서 오갈 수도 있던 양안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해가 반세기 넘게 흐르고 있다
강을 삼켜버린 바다의 거친 맥박이
양안 가득
소리 없이 울린다
이른바 '제적봉'에서 바라 본 북조선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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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안주에 즐겨 오르는 고기들
술없이는 고기를 먹는데 익숙치 않은 문화
주식이 고기인 사회와 다르다.
고기를 먹을 수 밖에 없던 족속은 유라시아의 유목민
목초 외에 농작물이란걸 기대할 수 없던 그들에게
소고기는 주식
10년을 넘게 살 소들이
안전한 위생 소비를 위해 2년 내로 도축되는 현실
일제강점기 간도에서
러시아로 식육을 위해 팔려가는 소떼를 보며
알 수 없는 울분에 침묵하던 김환
전래상
종차(種差)가 좁은 동물의 식육은
희생제의
그래서 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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