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이라야 일본에나, 그것도 일과 관련되어 나가 본 적이 전부였고, 살아볼 작정으로 간 곳이 라이프치히였다. 일단 무비자로 나가는 것이라 입국심사를 생각해 무비자 3개월 간격을 두고 왕복권을 끊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중앙역을 거쳐 라이프치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작센의 전통적 대도시답게 중앙역 규모와 모양새는 프랑크푸르트와 비슷하다.
외국땅에 여행이라면 모를까 살려고 가는 것은 생존을 건 모험이다. 간혹 퇴직 후 외국여행을 좀 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계속 일을 하다가 쉬는 것도 오래 못할 일이다. 더군다나 외국땅에서는 오죽할까. 오자마자 구직활동에 들어갔지만 여의치 않았고, 생각보다 언어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옛 동독 지역이었던 라이프치히에서는 영어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고, 한국회사는 옛 서독 지역에 몰려 있었다.
노는 것도 작정을 해도 질리기 마련이라는데 놀러 간 것도 아닌 외국생활은 하루 하루가 지나갈수록 초조해져 갔다. 외국땅에서 외국인으로 백수로 지낸다는 것은 겉보기에나 그럴듯한 빛좋은 개살구다. 마침 라이프치히에 있을 때 한국에서 프라이부르크와 베를린으로 여행 온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 만날만한 심정이 아니었다.
라이프치히에 온지 한 달도 안되서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귀국 비행기표를 들여다 봤다. 어차피 2개월이나 남은 것 좀더 맘편히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49유로 티켓도 없던 때라 주로 걸어 다녔다. 독일 어느 도시도 그렇겠지만 특히 20세기 초반의 도시 풍모가 그대로 남아있는 라이프치히는 걷기에 좋은 평지다. 돌을 박아놓은 길이 많아 우돌톨하지만 아스팔트길에 비할 바 안된다. 건물들은 소공동의 한국은행처럼 연수가 오래된 것들이 많다. 바흐가 음악감독으로 오래 봉직했던 전통은 음대로 유학생들을 끌어 들인다.
하루는 저녁에 실내 축구장에서 1시간 가량 뛰었다. 무슨 생각에선지 한국에서 올 때 축구화를 챙겨 왔다. 뛰고 나니 걷기 힘들 정도로 발바닥이 아팠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지낸 곳이 마침 축구경기장 근방이었다. 그때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에서 지금과 같은 강팀은 아니었지만 축구가 있는 날의 분위기는 거의 월드컵 본선 경기처럼 고조된다. 원정온 샤크 응원팀은 축구장 길목의 가판주점을 점령한다. 가끔 싸우듯이 양 팬들의 목소리가 거칠게 부딪치고, 경기 종료 후에도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요한 밤길에 낙옆처럼 가로등불이 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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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현장에서는 평택에서와 달리 아침 식사를 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점심은 현장 식당에서, 아침과 저녁은 회사 지정 식당에서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차를 함께 타고 가는 일행들이 아침은 다들 건너 뛰는 편이어서 쓰지 않은 아침 식권 등을 모아 저녁에 술을 곁들어 밥을 먹거나 일용품을 사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나마 점심 식사가 제대로인 편이었고 저녁은 식사 후 역시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 숙소로 가기 때문에 느긋하게 먹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주가 가고 토요일은 현장에서 점심식사없이 1시에 끝나는 경우가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 3시에 끝나는데 OT라는 명명으로 점심시간까지 일하고 2시간 일찍 끝나는 것이다. 평택현장에서는 토요일엔 연장없이 5시에 끝나는 것에 비하면 근로자를 배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관리자들의 편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천에서 토요일 OT가 걸리면 아침, 점심도 못하고 퇴근하는 일이 발생해 기진맥진한 채 현장을 걸어 나온다.
토요일에 일찍 끝나므로 다들 집에 가기 바쁘다. 숙소에 4명이 생활했는데, 8월 초 비가 많이 오는 토요일, 나와 한 동료가 숙소에 남아 있었다. 나보다 4~5년 나이가 더 있지만 첫인상은 퇴직한 중역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이천에 온지 몇주가 된 시점이었다. 저녁에 별 약속이 없으면 밥이나 하자고 해서 숙소 근방의 치킨집으로 갔다. 여기서 마시고 2차로는 한 주 전 쯤에 혼자 가봤던 포차 분위기의 술집에 갔다.
이 분과는 이후 몇년이 지나고 나서도 평택에서 만나고 지냈다. 조선소 일을 꽤 오래 한 경험이 있지만 다시 그곳에 갈 마음이 없다 했는데, 요즘 다른 경기와 달리 조선소만은 활황이다. 트럼프까지 언급할 정도고, 건설구인에도 조선이 부쩍 눈에 띈다.
그렇게 이천에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있었다. 한 곳에 지긋이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습성이 됐지만 못가본 곳이 더 많다. 인연 따라 그 다음에 간 곳은 옥천이었다.
숙소를 벗어난 생활을 하면서 토요일 한주 일과가 끝나면 밥 먹으며 술한잔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 전에 숙소생활을 할 때는 평일에도 숙소 동료들과 술 마실 일이 적지 않았고 일과가 끝나는 토요일에는 숙소를 벗어날 궁리만 했었다. 아무튼 토요일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오고가며 자주 들르던 통복시장 깊숙한 곳에 밥 먹을만한 곳이 꽤 있을 줄 알았는데, 술 한잔 하며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순대국집 3곳, 베트남 식당, 백반집 2곳, 소머리 국밥집, 그리고 떢볶이집이 내가 가봤던 전부였고, 베트남 식당에 제일 많이 갔다. 여기서는 소주 외에 베트남 맥주도 팔았는데, 오징어튀김과 새우튀김 반반에 소주 1병이 적당했고 좀더 마시면 베트남 쌀국수도 좋았다. 혹은 베트남 만두에 소주도 괜찮았는데, 이렇게 적당히 먹으면 만원에 해결됐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초저녁에도 상관없었다.
이 베트남 식당은 밖의 매대에서 포장판매를 하고 홀 장사도 하는데, 홀은 분식집처럼 작은 평수고 의자와 테이블도 작은 편이었는데, 바둑판 정도 크기의 제일 작은 테이블은 혼자 먹기 좋은 자리였다. 붐비는 시간대에 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서 좀더 일찍 가는 편이 좋았다.
한번은 여기서 튀김과 소주를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평택현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한 청년이 쌀국수를 먹고 있었다.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올라 왔다는 그는 근래 현장에서 인원감축 소문이 돈다고 꽤 걱정하는 중이었다. 그의 염려는 거의 1년이 지난 시점에 현실화됐고 또 한 해가 지난 후 기정사실화됐다. 그도 이 식당의 단골이라고 했는데 이날 처음 보고 이후 또 볼 일은 없었다.
다시 독일에 온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처음 온 것도 아니고, 비록 도착 후 가는 도시는 매번 달랐어도 여전히 관문은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중앙역이다.
한 달 전, 급작스럽지만 그래도 싼 비행기표를 구한다는게 경유편인 폴란드 항공이었다. 원래는 한번 이용해 본 적이 있던 역시 경유편인 네덜란드 항공을 예약했다가 무료수하물 제공이 없어서 취소하고 잡은 것이 폴란드 항공이었는데, 막상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시각이 밤 10시 40분이었다. 공항에서 70여 km 떨어진 도시를 뭐 어떻게든 가는 것은 되겠지만, 열차가 그 시간대에 없다면 문제였다.
폴란드 항공의 일반석 무료 수하물은 위탁이 1개 23kg, 기내는 8kg 이내였다. 출국 며칠 전 갑자기 가져갈 무거운 짐이 생겨서 위탁수하물로 가져갈 짐을 줄여서 23kg로 맞추긴 했지만 기내로 가져갈 짐은 도저히 8kg 내로 줄일 수 없었다. 출국일 당일 인천공항의 폴란드 항공 부스에서 발권을 할 때 아무래도 기내로 가져갈 짐의 부피가 눈에 띄여서 직원이 중량을 재보자고 했고 8kg가 추가되어 적지않은 추가 운임을 내야 했다.
짐을 붙이고 잠깐 대기하다 탑승했다. 이륙 후 안정궤도에 진입하자 음료와 식사가 제공되었고 이후 바로 기내는 소등되었다. 무려 10시간 가량이나. 식사 후 잠깐 잠들긴 했으나 어두운 기내에서 10시간 이상을 몽롱한 상태에서 버텨야 했다.
비행기는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격전지를 비켜가는 경로를 취함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보였다. 유럽에 진입하자 점등이 되고 음료와 식사가 나왔다. 인천에서 12시 30분에 출발해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현지 시각 18시에 도착했다. 13시간 30분의 긴 비행이었다.
공항 부지는 매우 광할하지만 시설은 다소 노후해 보이는 바르샤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입국심사를 받았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성 심사관은 앞선 사람들에 비해 짧게 내 여권을 살펴본 후 질문도 없이 도장을 쾅 찍어줬다. 그리고 기내 수하물과 소지품 통관 심사가 이어졌는데, 특이하게도 폴란드 경찰이 가방을 직접 뒤지기까지 했다. 면세 담배 한 보루는 허용이 안되는지 뭐라 지적을 했지만 별다른 제재는 없었다. 경유편 출국 대기실 한 가운데 흡연장이 넉넉히 있는 점이 편리했지만 갈아탈 비행기가 소형이라서 그런지 승객들을 가득 실은 버스편으로 비행기까지 이동해야 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국적으로 보이는 60대 여성이 통로에 앉고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20시 40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22시 40분까지 2시간 비행중 내가 한번 화장실을 가려고 하자 이 여성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투덜댔다. 이후 공항에 도착해 위탁수하물을 찾으러 갈 때, 이 비행편이 유럽내의 짧은 경유이고 승객들도 대부분 독일인이나 폴란드인으로 위탁 수하물을 찾으러 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만원 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어느 구석지고 음산해 보이는 입국장 입구에서 버스는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계단을 올라 입국장에 들어서는데 살짝 놀랐다. 입국심사대가 없이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니까 바르샤바의 입국심사로 독일입국심사는 완료된 것이다.
여권을 들춰보니 2년전 네덜란드항공 경유편으로 귀국할 때도 출국도장은 암스테르담에서 한번만 찍혔다. EU의 실체는 마트 뿐만 아니라 이런 데에서도 직감할 수 있는 셈이다.
우선 나가기 전에 위탁수하물을 찾아야 하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1층의 배기지 컨베이어는 대부분 멈춰 있는 것으로 보여 지하로 내려갔다. 여기서 내 옆에 앉았던 그 러시아계 여성을 볼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온 것으로 보였다.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수하물이 나왔고 출구에서 살짝 헤매는 나에게 한 20대 초반의 건장한 소녀같은 직원이 친절히 출구를 안내해 줬다.
공항을 빠져 나가는 5유로 상당의 전철표를 끊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내려 근방의 예약한 숙소로 갔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방에 짐을 풀고 맥주나 한잔 하러 근처의 아이리쉬 펍에 가려다 앉을 자리도 없이 사람이 많아서 근처 매점에서 맥주 2병을 사들고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