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no Croce & Andrea Salvatore, Carl Schmitt‘s Institutional Theory : The Political Power of Normal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슈미트의 정치론을 해석하는 두가지 방법은 예외와 법학적 독해. 전자에 따르면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세속에 신성의 역할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법을 세속화시키고 정치적 초월성을 세속의 질서 내에서 지속시키려는 것. '초월'이 수반하는 개념은 정치는 걷잡을 수
없는 근본적 혼돈에 제한을 가한다는 것, 홉스를 따라 반사회적인 인간의 본성을 사육하는 것. 하지만 끊임없는 혼돈의 위협으로 어떠한 정치적 합리성도 인간본성의 근본적 비합리성을 제거할 수 없으므로,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기방어권을 양도하는 국가권력의 독점이 확보됨.
상동 10
정치적 공동체의 외형을 형성하는 주권은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간주되는데, 정치신학에서 예외는 질서의 중단으로서 창조적 기능을 수행.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기존 질서는 중단되어야 함. 질서는 무질서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질서는 항상 갱신(emergent)되는 반면 무질서는 근본적인 것으로 남아 있음. '질서는 위기의 해소가 아니라 표현이며 위기는 모든 질서를 넘어 섬'(Galli). 정치신학이 지시하는 것은 근대적 주권이 안정된 토대 위에 근거지어질 수 없다는 것(혼돈을 향한 근대의 깊은 열망, 질서에 대한 합리적 정당화의 포기)
상동 11
정치신학에 대한 법학적 독해는 슈미트를 근대 정치학의 무근거성에 대한 옹호자로 보지 않고, 신학은 법학에 부차적인 것, 곧 '법학의 신학자'(Schmitt, Glossarium, 23)로 봄. 예외는 정치적 질서의 무근거성을 예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학자(특히 슈미트)의 '구원적' 힘을 지시하기 위한 것. 하지만 정치신학은 법적 정상성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실패함. 슈미트 자신도 예외적 결정은 법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다고 결론지음. 1922년에 그는 예외를 '정상화'시키고 이를 법과 국가의 주요한 특징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그 이후 여기서 손을 뗌. 예외는 일상생활에 아무런 안정된 근거를 제공할 수 없는, 부정기적인 극도의 상황임을 인지했던 것. 따라서 그는 예외의 역할과 범위를 수정해야 했는데, 이는 질서와 안정보다는 무질서와 혼돈을 일으키는 잠재적 위험사태를 피하기 위한 것.
상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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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Bücher'에 해당되는 글 168건
- 2025.01.20 칼 슈미트의 법이론
- 2024.12.16 권력
- 2024.10.28 츠빙글리와 로마 카톨릭 1
- 2024.08.18 이슬람의 포교전쟁
- 2024.06.25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1939)4 8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자연이나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나온다면,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이 없는 자에게 양 앞의 늑대다. 즉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신으로부터 나온다면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Homo homini Deus).
Carl Schmitt, Gespräch über die Macht und den Zugang zum Machthaber(Günther Neske Pfullingen, 1954), S.9-10.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인 명제는 권력관계를 내포하며, 이 관계는 복종을 통해 성립된다. 복종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동기화된 것이다. 권력에 대한 동의는 대개는 신뢰 외에 공포, 희망, 절망으로부터 생긴다…동의(Konsens)는 권력을 가동시키지만 권력도 동의를 가동시킨다. 모든 피권력자로부터 충분한 동의로 집행되는 권력은 모는 동의의 총계 이상의 잉여가치를 가진다. 현대의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에 동의를 가동시킬 수 있는 수단을 칼 대제나 프리드리히 1세 보다 더 많이 가진다.
상동 11-12
권력의 고유한 용량 : 무시무시한 권력자라도 인간적 신체의 한계와 이성의 불충분성, 정신의 약함에 결부됨. 홉스의 국가론은 바로 이런 인간의 나약함에서 출발. 나약함은 위험을 낳고, 위험은 공포를, 공포는 안전을 필요로함에 따라 이러저런 기관을 갖춘 보호기구의 등장이 불가피해짐. 하지만 홉스에 의하면, 이런 모든 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각인이 각인을 죽일 수 있음. 나약한 인간도 가장 강력한 인간을 없앨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음
상동 13-14
권력의 피할 수 없는 내적 변증법 : 모든 직접적인 권력은 조언이나 보고처럼 간접적인 영향들에 종속됨. 즉 권력의 밀실이 있음(ein Vorraum, ein Zugang zum Ohr, ein Korridor zur Seele des Machthabers). 어떤 이성적인 장치로도 이 밀실을 완전히 근절할 수 없음.
상동 15-16
직접적인 권력이 그의 개인적인 인맥에 집중될 수록 권력자는 더욱 고립된다. 회랑은 지면으로부터 그를 분리시켜 성층권까지 그를 부양시킨다. 여기서 그는 그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자들에게 도달하지만 자신의 권력의 행사 대상인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더이상 도달하지 못하고 이들 역시 그에게 더이상 도달하지 못한다. 불가피한 권력기구에 의한 권력자의 격리.
상동 17
실제적 사례 : 1. 1890년 3월 제 1 제국의 창시자이자 제국 총리인 비스마르크와 31세의 젊은 황제 빌헬름 2세 사이에 있었던, 각료의 보고 방식에 관한 갈등 2. 쉴러의 서사시 돈 카를로스
상동 18-19
권력의 선악에 관해 : 내가 권력을 갖고 있으면 권력은 선이지만 나의 적이 갖고 있다면 악이다. 권력에 대한 자의적 해석…권력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며 권력을 행사하는 의지의 선악이 문제? 대성자 그레고르는 권력을 신으로부터 비롯된 신성하고 선한 것으로 봐서 악마가 권력을 사용하더라도 권력 자체는 항상 선하고 신성하지만 악마의 의지가 악하다고 봄. 이에 반해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권력 자체가 악하다고 말함. 중세시대 이후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권력에 대한 본질적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고 봐야 함. '신은 죽었다'와 '권력은 악이다'라는 주장은 동일한 시대상황에서 나온 동일한 것.
상동 20-23
권력관계 : O. 스펭글러가 인간은 맹수라고 본 것과 다른 차원에서 홉스는 인간의 권력관계를 간파했는데, 1650 년 당시에도 이미 발전된 인간의 무기가 맹수를 능가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인간의 유약함을 극복하는 기술적 수단의 증대는 권력자와 비권력자 사이의 힘의 격차(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적대적인)를 더욱 벌리는 위험을 초래. ㅣ현대적인 전멸도구를 가진 권력이 개별인간의 힘(근육과 뇌)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선하거나 악한 인간적 의지는 더이상 이 초음속의 성층권에 부합할 수 없음. 이렇듯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 기계에 관련된 문제는 더이상 인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풀려난 연쇄반응으로서 인간들 사이에 있던 기존의 권력관계를 초월함.
상동 24-25
권력이 선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 없고 다만 중립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권력은 권력자에게도 하나의 독자적인 현실이며 권력자를 권력의 변증법으로 끌어들인다. 권력은 모든 권력에의 의지 보다, 모든 인긴적 선함과 악함 보다 더 강력하다.
상동 27
결론 : Doch Mensch zu sein, bleibt trotzdem ein Entschluß
상동 29
어제 츠빙글리에 관한 영화를 보고 어떻게 기독교가 교황을 필두로 위계적 조직체계로 되었는지 궁금해 역사책과 교회사 관련 책을 뒤적이는 중 반유대주의의 태동이 기독교의 로마수용과 관련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정식 종교로 승인된 것을 넘어 국교로 수용된 후 자리를 잡아가던 5세기 초의 로마 카톨릭은 정통 유대교를 따르는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을 묵인한다. 1500 년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전조처럼. 예수를 박해한 정통 유대교인들에 대한 반감은 공관복음에도 뚜렷히 보인다. 그렇다면 반유대주의 기원은 신약성서인 셈인데, 통합성서의 탄생이 로마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 이루어 진 것으로 볼 때 납득할만 하다. 기독교의 발전은 로마, 그중 서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하며, 특히 이 지역에서 정교분리, 카톨릭과 제국의 분리가 집중된다. 정치에 대립되고 독립적인 교회조직이 만들어진 것을 넘어 제국도 지배하려는 추세로 카톨릭이 나간 점에서 또다른 정교통합의 시대가 천 년간 이어진 것이고, 이것을 깨뜨린 선구자들이 얀 후스, 마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등 이다. 루터에 비해 츠빙글리는 쮜리히에서 성공적인 종교개혁에 도달하지 못하고 전장에서 숨진다. 이런 실패는 장 칼뱅이 제노바에서 주도한 무시무시한 종교개혁과도 대비된다.
버트란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중 중세 카톨릭 철학 부문에 짧게 이슬람에 관한 글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오늘날 아라비아 반도에서 페르시아, 북부 아프리카, 스페인 남부, 인도 동북부에 이르는 무슬림 세력권은 8세기 마호멧트 사후 100 여 년간 이뤄진 이슬람의 정복전쟁으로 형성됐다. 마호멧트는 종교천재일 뿐만 아니라 이슬람세계를 창출해낸 선지자였던 것인데, 가진 건 황량한 모래사막 뿐이었던 그들에게 내려진 과업은 종교적 포교였으나, 인두세의 도입으로 이민족의 종교의 자유와 자치를 보장해 주면서도 실리를 챙겨 갈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서고트인에게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이슬람의 스페인 정복 덕분에 그들의 전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슬람에게 세금을 내면서. 타우베스는 이슬람교를 기독교의 후예로 보지만, 어쩌면 더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기독교, 아니 유일신교일 것이다.
논제 : 모세의 유일신교의 정착과정에 대한 반복과 변주
출애굽 당시의 모세의 신과 가나안 정복기의 신(화산신)은 다를 수 있다는 가정. 이 가정에는 출애굽의 모세와 가나안 정복기 직전의 모세가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강성 모세와 온화 모세. 전자는 이집트의 실권자, 후자는 시나이 산 혹은 Quades의 미디안 제사장. 한편 아멘호텝기에 가나안땅은 이집트와 아르메니아의 전쟁으로 버려진 곳이었음). 즉 이집트에서 유래한 단일신교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기를 통해 유일신교화 된 것. 여기서 중요한 역할은 선지자가 담당. 이들은 의례에 집중하던 성직계급과 모세의 계율에 저항하던 백성들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는데, 광야에서의 고난과 은총을 상기하며, 제사와 의례 대신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삶을 강조한 것(바울의 징후).
유일신교의 정착에 대한 또다른 가정 : 이 새로운 이념의 확정에는 모세 외에도 그 추종자들과 계승자들, 유대 예언가들 등 시대를 달리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있었을 것. 그 확정시기는 바빌론 유수기로 보임. 즉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바빌론에 의해 붕괴되고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시기(기원전 597년부터 60년간). 이 시기에 최고도에 달한 불행의 역사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모세의 경고와 요구가 전설적인 두루마리 발견이라는 형식으로 회귀되고, 선민관을 뚜렷하게 각인하는 유일신교의 확정이 이루어졌을 것(왜곡을 통한 강화)
이스라엘의 역사는 유일신교사 : 기)이집트에서 유래한 모세의 유일신교는 승)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기에 유일신교의 초기형태로 다듬어 졌다가, 전)야훼에 대해 여전히 순종과 반항의 역사(유대왕국기)를 거친 후 결)아시리아와 특히 바빌론, 페르시아에 이스라엘이 시달리는 과정에서 선민관과 함께 절대화됐을 것.
모세의 종교에서 선민관보다 의미심한 규정 :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과 볼 수 없는 하나의 신을 숭배하라는 강제. 이는 감각에 대한 정신의 승리, 충동의 포기/유예(Triebverzicht). 티투스 황제에 의해 예루살렘 파괴 후 허락된 엄격한 토라교육, 욕망의 강렬함이 거대이념으로, 내적 근거로 대체충족된 것. 이런 대체충족의 쾌감기제가 Stolz로 작용(타민족에 대한 우월의식).
그리고 이런 정신의 승리는 바울에 의해 최고조에 도달. 원죄와 그 해소로서의 구원으로.
문제점 : 부친살해 후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설명 부족. 어차피 권력은 아들들에게 분산되고 족외혼이 어떻게 모계권을 강화시키는가? 이후 모계사회로부터 부계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억압의 회귀로 설명됨.
https://youtu.be/TDMVtmI34-I?si=556j13bj3IvjSBi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