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황태후의 여관 안나 파블로브나 셰례르의 연회에서 시작된다. 연회에서는 나폴레옹이 뒤흔든 유럽의 전운이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서히 러시아로 몰려오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궁중 귀족들의 일상사, 재산을 둘러싼 암투가 그려진다. 특히 재산에 대한 각축은 예카테리나 대제 시절의 재상 베주호프 백작의 죽음을 앞두고 바실리 공작과 안나 미하일로브나 드루베츠카야 사이에서 긴박해 진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시작이 수도자 조시마 장로의 죽음으로 시작하듯이, 이 소설 역시 베주호프 백작의 임박한 죽음이 서두부터 전개되는 것인데, 전자의 상속재산이, 예상못한 냄새를 제외하면 비물질적인 것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농노를 포함한 엄청난 가산이다. 화사하고 나른한 궁중 사회의 물밑으로 치밀한 작전이 전개되고 이런 사회에 질리거나(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볼콘스키) 나폴레옹의 입지전적 출세를 동경하는 청년 장교들(니콜라이, 보리스)은 참전을 서두른다. 어느덧 베주호프 백작은 운명하고, 서서히 전장을 향해 소설은 진입한다.
Search
'책들 Bücher'에 해당되는 글 169건
- 2017.03.01 전쟁과 평화1
- 2017.02.07 두 권의 책
- 2016.10.26 긴 독서와 긴 거짓말
- 2016.08.29 중동에서 아일랜드로
- 2016.07.04 유라시아 양극의 역사
근래 우연찮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적 배경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을 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겼다. 마치 달의 후면을 볼 수 있는 듯한 관심의 발동이라고 느낀 것은, 러시아 인민의 관점에서 이 전쟁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인데, 전쟁의 역사가 자국의 경우가 아니라면 가해자 중심으로 기술된 것에 익숙한 것도 원인이겠다. 특히 이 전쟁의 양상이 이렇게 잘 알려진 문호의 대작에서 다뤄졌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도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 이 책이 집 어딘가에서 굴러다닐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뒤져 보았으나 허사여서 도서관에서 대출을 했으나 범우사의 구역본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납했다. 할 수 없이 최신 번역본을 구하러 나섰는데 문학동네 판은 4권중 1권만 출판되어 있다. 마치 지난날 토마스 만의 <요셉 이야기>(살림)를 읽던 것 처럼, 독자의 독서와 역자의 번역이 동시진행될 상황이다.
그사이 도스트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열린책들)와 손병홍의 <논리로 보는 패러독스 패러독스로 배우는 논리>(새문사)를 읽고 있다. 40년간의 지하생활에서 시작되는 <수기>의 1부는 예상치 못한 독백의 서술이어서 이것이 소설인지 수필인지 구분을 어렵게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소설은 그렇다치지만, 에세이의 성격의 글이나 논문의 경우는 논리법칙의 구속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수기>의 이중 작가는 가상의 논적을 두면서 글을 진행하는데 이것은 그의 수기의 개연성을 측정하는 장치이다. 손병홍은 저 책에서 세상사에서 진행되는 역설적인 논증의 양상을 극단적으로는 허리케인, 보통의 경우는 바다의 파도에 비유하고 논리규칙을 명확히 추출할 수 있는 퍼즐놀이는 파도타기로 본다. 인간은 어떤 완성이나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 이후의 해체를 염원한다는 지하생활자의 비이성적 욕망론은 논증이라고 보다는 주장이겠지만, 주장의 개연성을 위해서는 논증의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으며, 문학을 논증의 틀로 보려고 하는 것은 패러독스한 현실에 대한 논리의 침투라고도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존재하지 않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곧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엄밀히 말해 패러독스는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패러독스란 참으로 인정된 전제로부터 타당하게 추론된 결론이 일반의 상식과 믿음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거짓인 명제를 말한다.
이에 대해 대표적으로 알려진 패러독스의 예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 대머리의 패러독스다. 대머리의 패러독스를 명제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제)
대머리는 머리카락의 수가 0개인 사람이다.
대머리인 사람에게 머리카락이 1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대머리다.
대머리인 사람에게 머리카락이 2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대머리다.
대머리인 사람에게 머리카락이 n+1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대머리다.
(결론)
머리카락의 수가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그는 대머리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역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참도 거짓도 아닌, 판단불가의 상태인데 반해 논리적으로 패러독스란 거짓 논증인 셈이다.
2013년부터 읽기 시작한 <의사소통행위이론>이 종반부로 향하고 있다. 4년이 걸린 셈이니 이 정도의 속도면 거의 집필 속도와 다를 바 없다. 중간에 원서와 대조해서 읽다가 더욱 느려진 속도와 두 언어를 번갈아 봐야하는 번거로움에 진척이 안될것 같아 일단 파슨스 편 중반에서 다시 번역본만 잡고 결론까지 가고 있다. 하버마스의 문장에는 사유의 정교함과 치밀함이 가득 베어 있는데, 이걸 다시 정리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면서도 기대가 된다.
이 책의 독서 시기가 이 엄청난 GH정권의 생명선과 겹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4년동안 거짓말만 해온 정권의 끝이 보인다.
계절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 저지되던 중동의 역사서 이후 아일랜드의 역사를 다룬 박지향의 <슬픈 아일랜드>를 읽는다. 2002년(새물결)에 나온 이 책은 개별국의 역사서로는 국내에서 이례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아무래도 영화 <원스>(2006년)의 영향력이 아닌가 싶다. 아일랜드에 관한 역사서가 드문 실정에서 저자는 출판사를 바꿔 개정판(기파랑, 2008년)까지 냈다. 11세기 이후 잉글랜드의 침탈을 받아 700년간의 식민지배를 받은 후, 아직까지 잉글랜드의 간섭을 받고 있는 아일랜드를 저자는 한반도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다. 한반도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민족적 자긍심이 강하다는 근거로. 하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형태의 식민사관이 아닌가? 700년의 식민지배와 36년의 식민지배가 동일한가? 영토와 분단상황도 매우 이질적이다. 양국간 힘의 우열이라는 관점에서 아일랜드와 한반도 대 잉글랜드와 일본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할지라도 주변국을 둘러싼 구조적 상황은 이질적이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보이는 분립양상은 또한 동북아시아와는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나온 것이다. 정서적 유사성이, 압박받는 민족의 울분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것이라도 해도, 그 압박의 내용과 깊이는 다른 것이다. 이런 인식을 걷어서 보면, 서양사에 정통한 학자가 그리는 아일랜드행 차창 밖 풍경은 무시할 만한 것이 못된다. 확대팽창하는 미국 정보국의 개인정보해킹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영국 정보부의 해킹 수준이 가히 비견할 바 없이 공격적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2차대전 당시 대서양을 장악한 독일함대의 암호를 풀어낸 수학자 튜링은 영국 출신이다. 이런 영국(잉글랜드)을 5세기 때 게르만인이 초토화시켰다는 사실은 다양한 생각꺼리를 던진다. 게르만의 분출력(이주민)은 로마의 경계를 온사방에서 뒤흔들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게르만은 어느 민족일까? 전례적인 인구팽창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중동(이슬람)이 유력하다. 인구는 분명 생산력과 패러다임 전환(혁신)에 양적으로 유리한 기반을 제공하지만, 인구의 증가가 이민을 통해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민 사회가 새롭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음을 구대륙, 특히 미국이 잘 보여준다. 유럽인은 이주민이라는 몸체에 정신을 이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단선적인 독서의 흐름이 역사에 닻을 내리고 있다. 서양사에 대한 깊이있는 개론서를 찾다가 서양사 수업에 교재로 구입했던 책을 펼쳤는데 아직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역사책도 분명 오래될수록 고고학적 발견에 밀려 퇴물로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유행에 쉽게 흔들리는 분야는 아니다. 90년대 초반 유럽 13개국의 상이한 저자들이 공동편찬한 교과서는 융합과 대립의 소용돌이로 흘러온 유럽사 저술에 매우 적합한 방식이다. 한중일 공동의 교과서 저술은 지리상 거리보다도 깊은, 이질적인 이들의 역사적 공통개념의 부재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아직은 EEC(유럽경제공동체)에 머물러 있던 시점에서 저술된 유럽사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병행해 읽는다.
왕조 중심의 단조로운 통사로 진행되는 정사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순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임금의 재위기간 중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때로는 간략하게 때로는 상세하게 기술하는데, 정사에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일들도 가끔 보이고(용의 출현이라든지), 농경중심에 접어든 사회답게 일기에 대한 기록이 자주 나오며, 특히 지진에 대한 기록은 매우 자주 나타난다. 사실상 방폐장 논란이 있던 경주는 역사적으로도 활성단층임 점이 누누히 지적된 것이다.
비교적 안정된 농경문명을 이룩한 신라는 북으로는 말갈, 서로는 백제, 남으로는 왜의 침입에 시달렸다. 특히 왜의 침입이 매우 빈번히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이점이 일본 세력이 이미 남쪽 해안지대에 자신들의 지배영토을 구축했다는 임나일본설의 빌미가 된다. 그렇게도 자주 그들이 바다 건너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조선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거나 어느 정도 이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거점 교통로가 확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들게 한다. 왜병의 침입이 너무 빈번해서 14대 유례 이사금은 백제와 협력해 일시에 바다 건너 일본을 공략해서 다시는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했지만 음흉한 백제를 신뢰할 수 없으며 당시 신라의 조선술이 해상 침략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신하의 지적을 받고 왕은 단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