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전쟁과 평화6 : 프리메이슨의 충고

책들 Bücher 2017. 5. 13. 07:1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볼콘스키는 오트라드노예에서 마주친 로스토프 가의 발랄한 젊은 처자 나타샤를 황제까지 참석한 무도회에서 만나게 되고, 피예르의 권유로 나타샤와 춤을 추면서,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을 직감한다. 이 신선한 행복감에 사로잡힌 볼콘스키는 스페란스키가 주도하는 폐테르부르크의 정치사회에 등을 돌리고 아버지에게 나타샤와의 결혼을 청하지만 조건부 허락만 받게 된다. 한편 피예르는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아내와 다시 결합하지만, 이 결합은 궁중사회에서 미모와 더불어 이제는 총명함으로 주목받던 옐렌의 도덕적 권위를 격상시키는 효과를 낸 반면 정작 피예르는 오히려 아내의 그림자에 가려진, 시간과 돈이 남아 돌아 프리메이슨이나 추종하는 잉여인간으로 취급된다. 아내와의 결합을 고민하던 중 그는 모스크바에 있던 그의 은인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를 찾아간다. 무서운 수종에 고생하면서도 학문에 몰두하던 그는 다음과 같이 피예르에게 말한다. "프리메이슨의 주요한 의무는 자기완성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온갖 곤란을 물리치기만 하면 곧바로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선생,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속세의 격동 속에서만 이 세 가지 주요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1)자기인식, 인간은 비교를 통해서만 자기를 알 수 있고, 2)자기완성, 이것은 투쟁으로써만 얻을 수 있으며, 3)주요한 덕성, 이것은 죽음에 대한 사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변전만이 우리에게 인생의 허무를 가르쳐주고,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나 새로운 삶의 부활에 대한 사랑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반응형

전쟁과 평화5

책들 Bücher 2017. 4. 21. 04:59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츠라는 프리메이슨의 주요 인물과 대화를 나눈 후 피예르는 정식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석공조합형제단에 다소 괴상한 절차를 거쳐 가입하여 활동한다. 그의 우선적 활동은 기부와 정신적 감흥이지만 형제단에서 요구하는 신비의 보존, 자기정화를 통한 자기완성, 인류교정으로 이어지는 실천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여전히 연회나 총각들의 파티에 드나드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후 군대로 돌아가지 않고 시골 영지에 침잠해 있던 볼콘스키는 당시의 자유사상에서 표출된 농노해방과 같은 개혁적 조치를 실제로 자신의 영지에서 조용히 실현시켜 가면서 입으로만 자유사상을 설파하는 피예르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피예르와의 만남과 오트라드노예로 낙향한 로스토프 백작 저택에서의 하루밤은 그에게 세상사의 전면에 나가도록 자극하고, 당대의 실권자인 스페란스키와 손을 잡는다. 한편 1806년에서 1809년까지의 전장은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어 프로이센으로 전개되는데, 무기력한 프로이센에 군대를 보냈던 러시아는 네만강이 가르는 양국의 국경 앞에서 오히려 프랑스와 우호협정을 체결한다. 나폴레옹으로서는 남부와 북부 유럽의 양극으로 군세를 확장하는데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반혁명국에게 반격의 시간을 벌어주는 허점도 있었다. 이와중에 갈취당한 보급선을 허기에 지친 중대를 위해 같은 방식으로 탈취했다가 군법에 회부된 데니소프 대위를 구하고자 로스토프는 황제에게 청원한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랑스와의 협정을 위해 황제가 머물고 있는 틸지트라는 작은 마을로 갔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사령부에서 줄을 잘 타서 승승장구하던 어린시절의 친구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는 물론 우연히 자신을 알아본 전근무지의 사단장도 법을 앞세우는 황제 앞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반응형

전쟁과 평화4 : 1806년의 모스크바

책들 Bücher 2017. 4. 12. 06:48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패배에 이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강화 이후 러시아의 귀족 장교들은 겨울 장기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간다. 로스토프와 마찬가지로 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데니소프, 돌로호프는 로스토프 백작의 집을 드나들며 아름다운 처녀들(나타샤, 소냐)과의 미래를 꿈꾸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돌로호프는 이중적인 성격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베주호프 백작 부인과의 염문설로 피예르와의 결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로스토프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선고한 소냐에게서 청혼이 거절당한 후 군복귀를 얼마 남겨두지 않는 시기에 로스토프를 영국클럽에 불러내 노름으로 순식간에 적지 않은 손실을 친구에게 넘겨준다(4만3천 루블). 한편 가족들에게는 전사한 것으로 체념되었던 볼콘스키가 리자 부인의 해산일에 극적으로 리시예 고리의 집에 도착하지만, 극적인 생환은 극적인 비극과 조우하게 된다. 프란체 고지에서 군기를 고수하다 쓰러져 나폴레옹에게 호의적 대우를 받기까지 했던 볼콘스키는 화염이 만발한 죽음의 문턱에서 이 영웅을 보면서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느꼈는데,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베주호프 백작이 된 피예르에게도 일어난다. 이 변화는, 아내와 헤어지기로 하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중 역참에서 만난 노년의 프리메이슨 교도가 더욱 자극한다.    

반응형

전쟁과 평화3 : 아우스터리츠 전투

책들 Bücher 2017. 3. 29. 06:40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베주호프 백작이 된 피예르를 자신의 딸 옐렌과 결혼시키는데 성공한 쿠라긴 공작의 야심은 망나니 차남 아나톨을 부유한 귀족 볼콘스키 노공작의 딸 마리야와 결혼시키려는 실행으로 뻗친다. 소설 시작부에서 자신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 황태후의 여관 안나 파블로브나 셰례르와 젊은 볼콘스키 공작의 부인 리자의 지원을 받으며 아들과 함께 볼콘스키의 대저택을 공격해 들어간 바실리의 공작의 야욕은 아쉽게도 아나톨의 난봉기질 덕분에 무산되고 만다. 한편 전장은 서서히 오스트리아에서의 최후 격전지인 아우스터리츠의 평원으로 옮겨간다. 1805년 12월 2일, 연합국인 두 나라의 황제까지 직접 참가한 이 전투를 위해 러시아에서 추가로 증파된 군대를 포함한 연합군 8만명, 프랑스군 8만명이 들어갈 대회전을 앞두고 프랑스군의 퇴각을 예상한 오스트리아 장군들의 복잡한 공격계획이 러시아 장군들의 반대 속에서도 관철되고, 유리한 프라첸 고지를 뒤에 두고 연합군은 안개를 헤치며 저지대의 공격로에 진입하지만 프랑스군의 배후 기습공격과 프라첸 고지의 재점령으로 결정적 패배를 당하고 만다. 이 고지는 나폴레옹이 온갖 방향으로 포격이 가능한 자신의 권총같은 포병대를 올려놓기 위한 덫이었다. 자신의 나라에서 이 전쟁을 끝맺고 상황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고 싶은 프란츠 황제의 바램과 연합군의 맹주로서 체면을 세우고 싶었던 알렉산드르 1세 황제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질 것을 뻔히 예측한 쿠투조프 총사령관은 난해한 지리학 강의 같은 바이로터의 대프랑스 공격계획에 졸음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황제들의 의지를 꺽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낡은 황제들은 젊은 황제 앞에서 굴욕을 면치 못하게 되고, 결국 이 젊은 황제 나폴레옹을 제압하는 것은 쿠투조프같은 영감들의 몫이 되어 버리며, 황제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던 러시아의 젊은 귀족 장교들(안드레이 볼콘스키, 니콜라이 로스토프)의 애국심과 명예욕은 이제 의심의 대상이 된다.      

반응형

전쟁과 평화2

책들 Bücher 2017. 3. 21. 05:29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소설의 전장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오스트리아의 브라우나우에서 시작된다. 30 베르스타의 행군으로 막 이곳에 도착한 러시아 보병연대의 사열 에피소드는 군생활을 해본 사람들에게 흐뭇한 추억을 새기게 해줄 장면이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투조프는 브라우나우에서 반 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대기중인 이 보병연대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음을 오스트리아 장군에게 보여줌으로써 고전중인  오스트리아군의 지원을 위해 당장 이 부대를 투입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피폐한 행장 그대로의 사열을 의도했지만, 전령의 명령서에는 이런 의도가 드러나 있지 않았다. 행군에 지친 장병을 밤새 다그쳐 행색과 무기를 손질하게 함으로써 충분한 인사를 하려했던 연대장은 뒤늦게 사령관의 의도를 전달받고, 사열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다급한 시간에 다시 원래의 비참한 상태로 군대를 되돌려 놓아야 했다. 우스꽝스러운 이런 군대의 상황은 이후 프랑스군에 쫓겨 퇴각을 거듭해야 하는 러시아군의 사태를 예시한다. 톨스토이는 퇴각을 하더라도 싸우면서 퇴로를 확보하는 러시아군의 용맹성을 드러내지만 협상과 외교적 실패가 불러오는 암담함이 전투의 패배 보다 더욱 참담함을 보여준다(프로이센의 중립). 불리한 형세에서 전투 보다는 협상에 응했던 오스트리아 장군들(마크 장군과 아우어슈페르크 공작) 덕분에 이미 빈을 버리고 브륀으로 도망쳤던 궁정은 다시 북동쪽 보헤미아의 올뮈츠로 이동해야 했고, 러시아군 역시 도나우강과 그 지류를 사이에 두고 프랑스군과 대치한 채 북동쪽으로 퇴각을 이어간다. 협상이나 강화는 임진왜란 때 조선침공의 1군 사령관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처럼 전세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항복일 뿐이었다. 단, 쿠투조프는 바그라티온 공작이 결사대로 전위에 선 쇠그라벤 전투에서 프랑스의 이런 가스코뉴식 우회전략을 역이용하여 성공하기도 했다.

 

외교는 전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교계에서도 관건이다. 베주호프 백작의 막중한 유산을 상속받은 피예르는 단숨에 사교계의 최고 인기 인물로 급부상하며, 본능적으로 처세에 기민하게 선제대응하는 바실리 공작은 자신의 미모의 딸 옐렌을 피예르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을 치밀하고 단호하게 실행시킨다. 전쟁이 전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평화가 사교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