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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Bücher'에 해당되는 글 169건

  1. 2007.06.14 폐허 위의 궁전
  2. 2007.06.12 연애소설 읽는 노인
  3. 2007.05.15 바틀비 이야기
  4. 2007.05.14 석유의 위기, 일상의 위기

폐허 위의 궁전

책들 Bücher 2007. 6. 14. 15:2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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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솔로몬의 노래』, 김선형 옮김

이 책은 노벨 문학상을 탄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라는 빛바랜 찬사에 부족함이 없는 서사적 감동을 제시하는 면에서 오에 겐자부로를 연상시킨다. 짧지만은 않은 긴 호흡을 요구하는 분량의 소설이지만 감각적인 문장들이 정신을 번쩍들게 하는 묘한 마력도 있다. 그러나 시적 감수성과 감각적 표현력의 배후에서는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안겨준 고통의 흔적들이 역사가 되어 모리슨의 작품에 장중히 흘러오고 있다. 그것은 고통의 기억을 떠안은 흑인들의 삶을 끌어안으면서 이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현하고 절규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밀크맨은 솔로몬의 증손이다. 솔로몬의 아들인 메이컨 데드1세는 해방노예로서  땅을 임대해서 놀랄만한 노력과 재능으로 자기 땅을 사고 농지를 확장해 갔지만 백인들에게 린치를 당해 죽는다. 그들 앞에서 흑인 주제에 제 농장을 경영한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이 살인에 대한 재판이란 것도 없었고 시체는 강물로 그대로 유기된다. 그의 아들인 메이컨 데드 2세와 산고의 고통으로 죽어버린 어머니의 자궁을 헤치고 나온 여동생 파일러트는 백인들의 폭력을 피해 떠나 버린다. 세월이 흘러 메이컨 데드는 부동산 임대업자로 자수성가하고 파일러트는 미 전역을 떠돌다가 당시로선 금지된 사설 밀주업을 하며 오빠와 같은 버지니아의 한 동네에서 정착하게 되지만 원수처럼 서로 적대시한다. 이들이 사는 도시의 낫닥터 스트리트란 곳에서 유일한 흑인의사의 딸로 태어나 메이컨 데드와 결혼한 루스는 아이 둘을 낳은 이후  남편과 쌓인 오해로 오랜 세월동안 독수공방하다가 파일러트의 계략으로 밀크맨을 임신하게 된다. 이렇게 뭔가 정상적일 수 없는, 그러면서도 흑인으로서는 부족할 바 없는 환경에서 성장한 밀크맨은 이와같이 비틀린 성난 격정에 휩싸인 현재의 가족을 있게 한 과거로 추적해 들어간다. 그곳에는 가족이 뿌리채 뽑혀질 정도로 재난을 당한 가족사가 있으며 그 너머에는 이미 신대륙에서 벌어진 원초적 살육에 희생된 인디언의 전설이 있었다. 밀크맨이 할아버지가 살던 땅을 밟아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가을빛 풍경들은 핏빛 역사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건,,북아메리카의 지명뒤에는 수많은 인디언 전사들의 죽음이 묻혀 있는 것이다.

글자를 모르는 증조부에게 연방군의 술주정이 양키가 생각없이 끄적거린 메이컨 데드란 황당한 이름을 데드(dead) 일가가 지키며 그들의 삶을 개척해 가는 모습은 핍박받는 비탄의 삶을 기이하면서도 숭고하게 승화시키는 의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이들의 고통은 노래되면서 망각의 안온함을 조용히 흔들어 깨울 것이다.

200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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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책들 Bücher 2007. 6. 12. 10:1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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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정창 옮김

이소설은 놀라운 흡입력으로 짧은 시간에 독자를 끌어 들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읽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리는게 아쉬워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종반부를 며칠 동안 보지 않고 내버려 두게 한다. 암삵쾡이와의 사활을 걸고 벌이는 대결은 마치『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킨다. 괴범한 크기의 참치를 놓고 상어떼와 일전을 벌이는 노인에게 이 물고기들은 잔뼈굵은 바다 사람인 노인의 빈곤한 상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광막한 바다라는 또다른 생존조건에서 건져올린 먹이를 지켜내기 위한 노인의 처절한 의지만이 보일 뿐이다. 그러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저 바다 노인 보다는 섬세하게 동물을 본다. 인간 못지 않게 영리하면서도 영묘하다는 투사를 동물에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연애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가 보다.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서도 원시사회를 상이하게 보는 시각 하나가 있다. 프로이트, 레비 스트로스로부터 연원하는 원시인에 대한 주도적 시각은 원시사회가 결핍사회라는 것이다. 결핍의 내용은  문명사회의 근간으로 이해되는 생산 잉여와 국가기구이다. 이 지점을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다르게 읽는다. 그것은 마치 원시인들이 생산 잉여를 내기위한 축적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로인해 권력이 생길 수 없으며, 권력 자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생존 이상을 넘어서는 비균등 생산활동을 기피했다는 것이다. 과연 원시인들에게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 그중에서도 서구인에게로 전유된 사유체계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클라스트르는 원시인에게 과도한 투사를 덧씌운 것인가?

세풀베다가 그려내는 노인은 적어도 근거없어 동물에게 인간의 감정을 덧씌운 것으로 읽혀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라는 이름의 이 노인이 이름만 한 30자가 넘는  그의 아내를 잃어 버리고 아마존 밀림에서 수렵생활을 하는 수아족과 함께 사는 동안 느낀 것은, 사람은 밀림이라는 이 먹이구조에서 제일 정상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이다. 개미에게 아직 살아있는 살덩어리를 내어던지며 죽음을 맞이 하는 독특한 의식은 이 자각의 한 실례일 뿐이다.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공생할 줄 아는 아마존 원주민과 헤어지고 마을로 내려운 노인이 나머지 여생의 은밀하면서도 진중한 위안거리로 삼은 것이 바로 연애소설 읽기이다. 직업의 굴레에 묶여 웬종일 노동하며 지내는 생활을 조롱하면서 자원을 모으진 않아도 자연과 더불어 풍족하게 살아갈 줄 아는 원주민에게 배운 생활습관대로 노인이 하루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따로 틀에 박힌 일은 필요없다. 징그러울 정도로 비가 그치지 않는 우기에도 물이 세지 않도록 지은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배가 고프면 강에 나가 새우를 잡아와 튀기거나 삶아 먹고, 필요한 소금이나 술은 밀림에서 잡은 원숭이나 앵무새로 맞교환하면 된다. 밀림은 생계의 터전이자 극도로 여유로운 게으름의 근원이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연애소설을 읽는 '특권'(?)이 생긴다. 그러나 문제는 일어난다. 노인도 그런 경우였지만, 밀림을 개간해 농지로 전환하도록 촉구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밀려오는 이주민과 함께 밀림의 희귀물을 긁어 모으려고 오는 노다지꾼들,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도록 중앙에서 파견된 행정관이 밀림을 갉아 먹으면서 노인의 연애소설 읽기는 곤경에 처한다.

참고 문헌 : 장 프랑수와 스키립차크,『오늘을 위한 프랑스 사상가들』, 이상률 옮김


200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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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 이야기

책들 Bücher 2007. 5. 15. 17:3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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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으로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의 단편이다. 절판된 책인데 논술고사의 여파로 재출간되었다고 한다. 역시 입시의 힘은 무섭다. 금주차 한겨례 21에도 논술예상문제가 부록으로 수록될 정도이니. 

오래전에 보았던 '좀머씨 이야기'와 흡사한 면이 있는 이야기다. 도대체 저 멀대같은 인간은 왜 밤이나 낮이나 온종일 걷기만 하며, 역시 멀대같은 창백한 한 인간은 필경만을 하고 다른 업무지시에 대해선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거부만을 하는 것일까. 보통 사람으로서는 보기 힘든 괴이한 면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두 명 다 죽음을 선택한다. 선택당하지 않고.

보통과 다름을 사람들은 좀처럼 받아들기 힘들어 한다. 형평법원장으로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섬세한 배려는 기대하기 힘들다. 어느 고용주가 자신의 업무지시를 아무런 근거없이 단지 '그러고 싶지 않다'라는 말로 거부하는 직원을 견딜 수 있을까. 당장 소리를 버락 지르며 짐싸고 나가라고 할 것이다. 바로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한 늙은 변호사가 기괴한 대상으로 몰리는 한 인간에 보이는  반응이다. 나중에 풍문으로 들은 바틀비에 대한 신상, 그러니까 그가 미수령우편물처리담당자였다는 이력만으로 바틀비에 관해 변호사는, 아니 멜빌은 답을 알려 주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이질감으로 삶의 수위는 깊어지는 것일까.  

200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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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위기, 일상의 위기

책들 Bücher 2007. 5. 14. 17:3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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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조속히 처리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 평소보다 일찍 왔다. 산을 넘어 오면서  예전에 연수를 받던 중 한 시민단체 간사가 자신은 늙어서 부시와 함께 무덤에 가고 싶다는 말이 떠올랐다. 짬짬히 김재명의 '석유, 욕망의 샘'(프로네시스, 2007)을 보면서,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축이 석유를 기점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20세기 초반까지 본래 국경 구분이 모호했던 중동에 석유를 둘러싼 이권분쟁으로 강대국들이 경계를 긋시 시작한 이래, 석유 때문에 내국민 간에는 물론 국제적 분쟁의 원인이 된다는 별 새로울게 없는 사실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흔들릴 수 없는 상식으로 굳어진 면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 벌이고 있는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침공, 그리고 고조되는 이란의 위기 등 국지적 분쟁의 원인이 너무나도 우리에게 필요한 석유라는 편의적 자원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일상적 진실에 부딪치게 한다. 아프카니스탄은 아직 발굴되지 않는 미래 석유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1차 석유파동을 초래한 1973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후 , 산유국간의 가격 담합체인 OPEC의 주요 구성원인 이란의 팔레비 왕은  석유값을 코카콜라 값으로 올릴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코카 콜라 1 배럴은 900원 대  환율로 200달러다. 산유국간의 담합이든, 강대국의 석유 주권 개입이든, 가능한 대체 자원의 확보이든, 석유의 위기는 일상생활의 위기로 몰려오는데 주말만 되면 차를 타고 깨끗한 자연의 품으로 가고 싶어하는 바램들을 바이오 디젤이 얼마나 채워줄지 기대된다. 일을 처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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