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잠시 건설 일을 하면서 독일의 건설현장 일도 알아봤는데, 나는 여기서 한국과는 다른 점을 발견했다. 독일 대부분의 건설현장 사업체들은 일할 사람들을 정규 직원으로 직접 뽑는 반면에 한국의 건설현장의 채용구조는 겉으로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날림의 채용구조라는 것이다. 내가 일했던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을 예로 들면, 이 현장의 수주를 받은 대기업 건설사가 원청인데, 이 원청에서 공사 현장의 각 부문별로 하청을 주게 되는데, 이런 대형 현장의 경우 부문별로도 동일업종의 하청기업이 산재해 있다. 예를 들어 전기만 하더라도 동일한 건설현장에 동종의 경쟁업체들이 5~6개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건설노동자는 이 하청회사에서 계약직 형태로 고용되어 있는데, 서류상의 고용일 뿐, 실제적으로 그 중간에 팀장들을 둬서 하청회사는 간접 관리를 할 뿐, 직접적인 업무지시는 팀장이 하는데, 이 팀장들도 계약직이다. 즉 하청회사의 밑에는 팀들이 있어서, 이 팀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일을 하는 실질 단위인데도, 이 팀은 하청회사에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그야말로 임의 기구에 불과하지만, 바로 이 팀을 통해 구인, 구직이 일어난다. 그래도 요즘에는 하청회사 중에는 이런 팀에게 사업자 등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사업자 등록을 하더라도 서류상의 사업체일 뿐, 여전히 임의적인으로 굴러가는 것이 바로 건설현장의 팀들이다.
나는 이번 가을에 다시 독일로 오기 전에, 두 곳의 반도체 건설현장과 세 곳의 팀에서 일을 했고, 두 팀은 전기공사를 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강물처럼 왔다가 흘러가는 사람들 중에서 그냥 흘러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다시 또 만나자는 여운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다시 독일에 두 번째 노크를 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격려도 분명 한 몫을 했다.
올해 설 명절 후 내가 원래 하려고 생각했던 전기공사 팀으로 나는 어떤 일 때문에 급하게 업변을 하게 됐다. 업변이란 동일 공사현장에서 업체를 바꾼다는 것인데, 나 같은 경우는 수장업체에서 전기업체로 바꾼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건설현장은 입사 시 혈압이 안정권이라야 일을 할 수 있는데, 혈압이 정상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병원의 소견서만 제출하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이때가 코로나 초기로 한창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는데, 원청에서는 혹시라도 병원에 갔다가 코로나로 감염된 신규자가 입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견서 제출을 인정하지 않았다. 함께 입사한 네 사람 중에 나와 한 친구가 혈압에서 떨어져 이틀 후 재입사 시도를 하기로 했다. 재입사에서 다시 혈압에 떨어지면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나와 함께 아침의 혈압 측정에서 떨어진 친구는 건설현장 경력도 꽤 되고 최근에는 택배를 하다 온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일을 당장 못하게 되어 이틀을 공치게 되니 시간이 막막한 우리는 어차피 남는 시간 건설현장에서 숙소까지 약 5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이러저런 대화를 나눴다. 국내, 아니 세계의 제일의 반도체 시설이 들어선 이 도시의 곳곳에는 한창 아파트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지반기초 공사로 다져놓은 굴곡진 빈터를 지날 때는 마치 우리가 사막의 패잔병같이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숙소 근방에 와서 혈압약을 처방하기 위해 팀장이 알려준 병원으로 갔는데, 여기서 둘 다 혈압은 정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숙소로 와서 쉬었는데, 숙소는 다세대 주택의 맨 위층이었고 복층 구조였다. 이층은 비록 천장이 경사가 져서 키작은 아이들한테는 적합할 지라도 어른이 쓰기엔 불편한 점이 있지만 일단 30평 이상 될 정도로 넓고 바로 옆에 옥상으로 나갈 수 있어서 나는 이층을 쓰기로 했고, 여기서만 5명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혈압에 탈락한 친구는 내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 친구의 자리 오른 편으로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있어서 흡연을 하기엔 편한 점이 있었다. 아무튼 이틀간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이 친구와 나는 다시 아침에 건설현장의 교육장에 가서 혈압측정을 했다. 사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번에도 떨어지면 일단 이 팀을 떠나는 것은 둘째 치고, 이 도시도 그만 떠날 것 까지 생각할 정도로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고 혈압 측정 전에 담배도 피웠다. 하지만 함께 한 친구는 나보다 더 긴장을 하고 있었고, 잘 안될 것 같다는 불안심리를 표출했다.
혈압 측정은 당일 세 번 할 수 있는데, 첫 번째에서 나는 간신히 통과했지만 이 친구는 또 떨어지고 말았다. 실망의 표정은 더욱 짙어졌고, 두 번째, 세 번째에서도 통과하지 못했다. 혈압에 통과되면 바로 현장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고, 일당은 이날부터 계산된다. 그래도 이틀간 같이 시간을 보낸 그가 안쓰러워서 나는 가다가 근처에서 아침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예전 팀에서 받았던 외부 식당의 식권을 주었다. 이날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그의 짐은 비워져 있었고, 내 침상 자리에는 내가 그에게 주었던 식권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자리로 잠자리를 옮겼고, 얼마 후 두 명이 새로 왔는데, 이들도 2층으로 올라와서 2층에는 5명으로 채워지게 됐다. 1층에는 작은 방에 한 명, 화장실 딸린 방에 한 명, 거실에 2명이 써서 총 9명이 생활했는데, 팀장은 내심 1명을 더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기본적으로 건설현장의 팀원은 10명 이상이 되어야 팀장의 수지가 맞는다는 얘기가 있다. 대개 팀장이 숙소비와 저녁식대(연장근무가 없을 때) 및 회식과 같은 기타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팀원들의 수가 받쳐 주어야 팀장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팀장 중에는 기술공에게 일을 맡기고 지시만 내릴 뿐 하루 종일 놀면서 시간을 보내며 하청업체의 관리자들과 좋은 영업관계를 유지하는데 골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장을 두루 살피며 쉼 없이 움직이는 팀장도 있다. 팀장도 관리자인데 일을 너무 챙기는 것은 사실 팀원들로서는 피곤한 일이지만, 영업과 정치에 주력하는 팀장은 사실 오래 가기 힘든 것이 변화된 이곳의 현실 같다.
숙소에는 사람 하나가 나오고 다른 사람 하나가 들어와도 분위기가 아주 달라진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은 이런 숙소생활에서 절감하게 된다. 내가 이 숙소에 처음 와서 잡았던 잠자리에 새로 온 두 명중 연배가 많은 한 분이 자리를 잡았다. 이 두 사람은 다른 현장에서 이미 서로 알고 지내다가 이곳에 같이 온 경우였다. 한 명은 나보다 한 살이 어렸고, 내 옆에 자리 잡은 한 명은 나보다 네 살이 많아 팀장과 동갑이었는데, 건설현장 경력이 상당히 오래된 분이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젊은 시절 사업을 하다 잘 안되서 지금까지 공사현장에서 뛰고 있는데, 전기실무는 물론 이론도 잘 알고 있어서 나는 이것저것 물어 볼 수 있었는데,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공사현장의 전기실의 디지털 계량기에 표시된 순간 전략량이 아무래도 맞지 않다는 얘기를 나는 이 분께 꺼낸 적이 있었다. 분명 전력(P)은 전압(V)과 전류(I)를 곱한 것인데 계량기에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치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냥 무심결에 본 걸 말한 건데, 이 분은 자기도 이상하다면서 퇴근 후 숙소에 들어와서도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탐색을 하다 다음날 그 이유를 알게 됐다면서 내게 설명을 해 주고 고맙다고 했다. 나 덕분에 하나 배웠다고. 그런 분이었다.
1층의 화장실 딸린 방에는 팀장과 동갑인, 그래서 내 옆의 분과 동갑인 형님이 생활했는데, 이 형이 사실상 이 팀에서 가장 일을 잘 하는 분이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자 신기한 점은 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주를 2~3병 씩 마셨지만 건강은 전혀 지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도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이때 당시에는 팀장도 매일 어마어마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반면 내 옆의 분은 술을 하지 못하셨다. 흥미로운 팀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 팀원들과 팀장 외에,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일단 생략한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에서 팀은 한동안 아주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남성들 사이에서 하나의 코뮤니티 같은 단체감이 생겼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몇 개월 가지 못했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이 바닥의 정서였다. 비록 이런 생활을 내가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느낀 점은, 이런 불안정한 현장에서는 원청도, 그 하청회사도, 팀장도 믿을 게 못되지만 인연을 맺은 사람들 하나 하나와의 관계가 귀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함께 일을 하고 먹고 자면서 사람을 그나마 온전히 본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