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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5.18 유일신교의 호전성과 팔레스타인 문제1
  2. 2024.05.14 노트들3
  3. 2024.04.23 역사의 천사 : 발터 벤야민의 고난의 행군
  4. 2024.04.21 노트들2
  5. 2024.04.18 노트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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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는 민족에게는 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하나의 정당한 명분으로 일어난다. 달리 보면, 이런 억압이 사실상 없더라도 하나의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억압의 가설이 필요하기도 하다. 분명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런 명분론을 벗어난 야만성을 표출하는데, 그 장본인이자 책임자는 이스라엘 정권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명분론을 이 책임 당사자인 이스라엘 정권도 잘 이용한다는 점이고, 사실상 2023년 가을에 있었던 하마스의 도발은 그런 모의에 기폭제이자 확전으로 작용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의 전쟁명분은 말할 것도 없다.

건국한지 80년이 되어가는 한 국가의 실효적 영토 지배를 부정하는 것은, 더군다나 미국을 선두로 서방의 든든한 지원 하에 있는 국가에 대해서 그러기에는 현실성이 없다. 아무리 폭력적인 방식으로 국가나 정부, 정권의 기초가 놓여져 있다고 해도, 일단 세워진 질서를 인정하고 보는 것은 법적 관점에서의 오랜 관성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력적 방식 없이 국가가 세워진 경우는 희소했으며, 이런 이유로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협정과 조약과 같은 법적 제도가 발전되어온 측면도 있다. 물론 이런 법적 포장들은 언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침탈행위로 찢어 질 수 있는 잠정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발터 벤야민은 야만의 흔적, 승리자의 흔적이 없는 문화재란 없다라고 말하지만, 문화의 원천 소재인 삶의 지반이 파괴되고 있는 사건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야만성은 삶의 현장 자체다. 고통은 고통을 겪는 당사자에게 그 아픔의 해소와 치유의 호소가 절실할 뿐, 외부자들에게는 알려진다고 해도 망각되기 쉬운 것은 냉정하고 슬픈 현실이기도 하지만, 무력한 개인들로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각자도생의 원칙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점도 있다. 오히려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이야말로 극단적인 과대망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각자도생이란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개개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제하도록 힘쓴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도움에 전적으로 기대서는 안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도움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가변적일 수 있고 우연적인 외부의 손길에 마냥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립적인 삶이란 불가능할  것이고 타인의 선의에 의해서만 삶이 지탱되는 것은 주체성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팔레스타인과 같은 경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하지 않다. 자립의 기반이 붕괴된 곳에서 각자도생이란 말처럼 매정하고 냉혹한 말도 드물 것이다.  

유럽, 특히 독일에는 아프리카와 근동에서 이주해온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으며, 그들 중에는 시리아인들이나 우크라이나인들처럼 전쟁 때문에 피난해온 이들도 상당수다. 동양인 중에는 베트남인들의 독일 정착이 두드러지는데, 70년대 베트남 전쟁의 결과로 월남민들이 대거 이주한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인구의 정체 속에서 산업인력의 결손을 주로 EU 권역의 밖에서 온 이들이 채워나가면서 유럽공동체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율배반이다. 인도적 관점에서 이주민을 받아들여 이들의 정착을 돕고, 이후 이들이 유럽에서 세수를 감당하고 지역사회에 동화되어 자립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이것은 국가의 필요와 공동체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일이다. 하지만 인도적 수용을 초과하는 이주민들의 유입은 경계할 일로 인식되며 이것은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율로 나타난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문제는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이스라엘의 이익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UN 결의안이 촉구하는 바처럼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인정되어 안정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된다면 당장 난민의 문제로 유럽에 부가될 부담을 사전 차단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80년간 지속되어온 근동의 불안을 원천적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조치이기도 하다. 사실상 중동의 불안한 정세의 근본 발단은 이스라엘의 영토국가 성립에 있으며, 이로부터 비롯된 문제들이 근동의 다양한 정세와 맞물려 오늘날과 같은 파국과 난민을 양산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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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들3

책들 Bücher 2024. 5. 14. 04:5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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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band 1,2 Abhandlungen (Suhrkamp Verlag 1974)

테제 1, 2
역사는 과거를 고찰한다는 점에서, 행복의 근거를 기억 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소생의 작업). 이 작업은 구원의 관념과 공명. 이 관념은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의 은밀한 약속. 현재 세대는 과거 세대에 의해 기다려지고 있던 사람들. 즉 메시아적인 힘이 있는 존재로. Dann ist uns wie jedem Geschlecht, das vor uns war, eine schwache messianische Kraft mitgegeben. S694

테제6
과거에 대한 역사적 표현의 의미는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잡는 것(역사유물론의 과제) Erinnerung bemächtigen, wie sie im Augenblick einer Gefahr aufblitzt. S695
권력민감적 촉수?
이 위험은 전통의 존속 뿐만 아니라 이 전통의 수용자에게도 일어나는 것으로서, 지배계급의 도구(Werkzeug)로 넘어갈 위험.

테제7
이후 역사의 진행에 대한 모든 지식없이 어떤 시대에 대한 추체험이자 감정이입의 방법은 문화재를 통해 가능한데, 이 문화재는 승리자의 전리품. 따라서 승리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 이는 승리자에게, 또한 승리자인 그들의 후예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Die jeweils Herrschenden sind aber die Erben aller, die je gesiegt haben.  S696

테제8
벤야민의 투쟁전략 : 예외상태가 상례인 피억압자의 전통적 삶의 상태에서 과제는 진정한 예외상태를 도래시키는 것(die Herbeiführung des wirklichen Ausnahmeszustandes). 당시의 벤야민이 체험한 일들(파시즘)이 진보된 시대에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진보주의는 유명무실함

테제12
Das Subject historischer Erkenntnis ist die kämpfenden, unterdrückte Klasse selbst. S700


테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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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아르파이어, 역사의 천사  L'angelo Della Storia : 발터 벤야민의 죽음, 그 마지막 여정, 정병선 옮김(오월의 봄, 2017)

우선 소설의 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약간의 허구적 조연으로 동원되었지만 심야의 피레네 산맥에서 난파된 벤야민과 조우할 충분한 개연성 있는, 반프랑코 전선의 젊은 전사이자 실존인물인 라우레아노의  이야기는 다큐에 가깝다. 단지 우울하게만 전개될 수 있는 벤야민 만의 서사에 활기를 주는 장치로만 볼 수 없는 라우레아노의 역사적 행군은 또다른 벤야민의 역사철학과 만난다. 군사적 용어인 행군과 학문적 용어인 철학의 역사적 만남이 얼마나 생소했던지 이 극적인 만남은 오래 가지 못하지만 다 쓰러져가는 불빛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만큼의 큰 힘을 이 유럽의 불온한 지성, 그렇지만 불멸에 가까운 영향력을 남기게 될 벤야민에게 보태준다. 마치 유럽을 탈출하려는 벤야민에게 손을 건네준 수 많은 이들, 아도르노나 숄렘, 호르크하이머, 바타이유, 아렌트 등등의 인물들과 달리 비록 그의 이름도 모르던 사회주의자 라우레아노에게 벤야민은 도움이 절실한 유대 망명객일 뿐이었다.

오래 전부터 나의 관심으로부터 방치되어 있던 이 소설책을 읽게 된 우선적 동기는 신학정치단편과 역사철학테제에 있다. 수박 겉핡기 식으로 십여 년 전 읽은 이 글들을 야콥 타우베스 덕에 다시 읽으면서다. 죽은 이들이 어쩌면 살아가는 이들을 자극하는 일이 독서의 보람인가? 벤야민은 말한다. 행복에의 추구는 반대동력으로 몰락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소설에서 과연 벤야민의 최후는 라우레아노에게 고난의 험행길에서 소생의 길을 열어 줬다. 죽은 이들의 지적 전통은 자양분처럼 삶을 이어나갈 자산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도서관은 부활을 염원하는 피라미드일 것이다.

시종일관 작가가 벤야민을 다루는 방식에는 장난기와 더불어 약간의 조롱도 있다. 마치 학창시절 학교를 아지트로 삼아 날라다니는 청춘이 제 앞가림은 못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지적 역량과 예의를 갖춘 백면서생 급우를 놀리듯이.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를 고도의 관측대에서 관찰하며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기는 하지만 정작 그런 관찰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합리화하면서 신체의 연약함과 우울증에 굴복할 수 밖에 없던 것일까? 작가의 놀림은 그런 아쉬움의 표현이 아닐까? 지식인이란 허울을 벗겨서 보면 이런 벤야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가 말한 세계정치의 과제는 아직도 완료되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이율배반을 넘어서는 것이이말로 살아 남은 자들의 몫이다.

https://youtu.be/diEVtaleyIU?si=f8HxLon2uIsB1Z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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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들2

책들 Bücher 2024. 4. 21. 23:0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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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Freud, Gesammelte Werke band6 Werke aus den Jahren 1932-1939 : Der Mann Moses und Monotheistische Religion, S. Fischer Verlag(1961).

I.Moses ein Ägypter

이름과 관련된 의혹
Man kann diese Ablehnung mit zwei weiteren Gründen unterstützen, erstens, dass es unsinnig ist, einer ägyptischen Prinzessin eine  Ableitung des Namens aus dem Hebräischen zuzuschreiben, und zweiten, dass Wasser, aus dem Kind gezogen wurde, höchstwahrscheinlich nicht das Wasser des Nils war. s.104

이에 대한 반박
J.H.Breasted…"Es ist bemerkenswert, dass sein(dieses Führers) Name, Moses, ägyptische war. Es ist einfach das ägyptische Wort 'mose', das 'Kind' bedeutet, und ist die Abkürzung von volleren Namensformen wie z.B. Amen-mose, das heisst Amon-Kind…Abkürzungen der längeren Sätze sind : Amon(hat geschenkt ein) Kind…s.104-105

태생의 역경을 극복해 가는 비슷한 영웅신화
Die älteste der historischen Personen, an welche dieser Geburtsmythus geknüpft wurde, ist Sargon von Agade, der Gründer von Babylon(um 2800 v. Chr.) s.107

일반적인 영웅신화(비천함에서 영광으로)와 다른 모세 설화의 특이 구조
Während sonst ein Held sich im Laufe seines Lebens über seine niedrigen Anfänge erhebt, begann das Heldenleben des Mannes Moses damit, dass er von seiner Höhe herabstieg, sich herabließ zu den Kindern Israels. s.112

II.Wenn Moses ein Ägypter war…

피억압민족에게 필요한 영웅서사
die Deutung des an Moses geknüpften Aussetzungsmythus zum Schluss nötige, er sei Ägypter gewesen, den das Bedürfnis eines Volkes zum Juden machen wollte. s114

프로이트, 인간 모세와 유일 신교 1~2장

프로이트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모세를 이집트인으로 보려는 해석을 모세라는 이름의 성서적 어원에서 착수한다. 모세라는 이름의 의미가 '물에서 건져 올렸다'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다면, 이집트의 공주가 히브리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어색한 것이다. 오히려 모세라는 명사는 이집트에서 역사적 인물에 따라붙는 호칭으로 관용적으로 사용된 용례가 있다. 이를 근거로 모세가 히브리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라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신교의 온상인 이집트의 왕족이 노예백성인 히브리인에게 동화되어 야훼라는 유일신교를 만들어낸 과정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영생에서 교합점을 찾은 다신교와 유일신교
Kein anderes Volk des Altertums hat soviel getan, um den Tod zu verleugnen, hat so peinlich vorgesorgt, eine Existenz im Jenseits zu ermöglichen…Die altjüdisch Religion hingegen hat auf die Unsterblichkeit voll verzichtet…der Glaube an ein jenseitiges Dasein mit einer monotheistische Religion sehr gut vereinbart werden kann. s117
Es bleibt möglich, dass die Religion, die Moses seinem Judenvolke gab, doch seine eigene war, eine ägyptische Religion…s118
다신교를 밀어내고 유일신교를 도입한 이집트 왕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 Amenhotep IV(b.c.1375~1358) s118

정복활동을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한 이집트의 정치적 상황은 유일신교를 필요로 함
Durch die Waffentaten des großen Eroberers Thotmes III. war Ägypten eine Weltmacht geworden…Dieser Imperialismus spiegelte sich nun in der Religion als Universalismus und Monotheismus. Da die Fürsorge des Pharao jetzt außer Ägypten auch Nubien und Syrien umfasste, musste auch Gottheit ihre nationale Beschränkung aufgeben…s119

이집트에서 태양신과 관련된 유일신교의 부상은 아멘호텝4세의 정치적 반목상태에서 주목해야 함..그의 유일신교에 적대적인 기존 사제들과의 관계에서
für die Würdigung der neuen Lehre die Kenntnis ihres positiven Inhalts allein nicht genügt ; beinahe ebenso wichtig ist ihre negative Seite, die Kenntnis dessen, was sie verwirft. Es wäre auch irrtümlich anzunehmen, daß die neue Religion mit einem Schlage fertig und voll gerüstet ins Leben gerufen wurde wie Athene aus dem Haupt des Zeus. Vielmehr spricht alles dafür, daß sie während der Regierung Amenhoteps allmählich erstarkte zu immer größerer Klarheit, Konsequenz, Schroffheit und Unduldsamkeit. Wahrscheinlich vollzug sich diese Entwicklung unter dem Einfluss der heftigen Gegnerschaft, die / sich unter den Priestern des Amon gegen  die Reform des Königs erhob.  S120-121

왕은 신전을 폐쇄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으로 아몬교를 탄압 s121

왕의 사후 혼란이 지속되고 18세대 까지 이어진 왕조가 망하고 식민지(누비아와 아시아)도 잃으면서 신흥 종교인 아톤교를 누르고 전통적인 아몬교가 부활 s121-122

아톤교의 부정적 특징 : alles Mythische, Magische und Zauberische von ihr(Atonreligion) ausgeschlossen ist. S122

프로이트의 과감한 결론
wenn Moses ein Ägypter war und wenn er den Juden seine eigene Religion übermittelte, so war es die des Ikhnaton(Amenhotep), die Atonreligion.  S123
이에 대한 히브리 신앙고백서의 어원적 근거(아톤교를아몬교가 사멸시켜 근거자료는 그 이후 800년이 지난 바빌론 유수기 유대 랍비에게서 볼 수 있음)
Schema Jisroel Adonai Elohenu Adonai Echod 번역 Höre Israel, unser Gott Aton(Adonai) ist einziger Gott. 즉 이집트어 Aton과 히브리어 Adonai 그리고 시리아의 신의 이름인 Adonis 의 유사성 s123

유대 민족 종교는 태양숭배에서 벗어났으나 아톤교는 이에 의지하는 차이가 있으나 죽음에 대해 유대교가 알려고 하지 않는 거부현상은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와 싸워야 했던 아톤교에게 연원. s124

모세가 새로운 종교와 함께 유대민족에게 준 할례 의례는 이집트에 연원.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할례는 오랜기간 비밀리에 행해져 왔는데(무덤 벽화) 이는 다른 근동 민족들에게서 볼 수 없는 현상이었음. s124-125

모세가 이집트인이라고 했을 때 비밀이 풀린다고 보는 프로이트의 가설 : 모세는 새로운 유일신교를 세우려는 파라오(아멘호텝)를 지지하는 실권자였으나 왕의 사후 반대세력에 밀리자 그 탈출구로 이들에게 버림받은 새로운 종교로 새로운 민족과 함께 새로운 왕국을 세우려고 했던 것. s126-127
이 가설에 따르면 출애굽은 1358~1350년 사이이며 이는 아멘호텝이 죽고 Haremhab의 전제정이 등장하기 전의 시기 s127-128
또한 가나안 땅은 당시 이집트와 Arammäern의 전쟁으로 약탈되고 버려진 곳이었음. s128

유대인에게 전해지는 성경외전은 어린 시절 모세의 야심을 보여줌. 성경에서도 보이는 모세의 불같은 성격은 영웅찬가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할 수 있음. 이런 모세의 성격은 질투심 강하고 무자비한 야훼에 대한 묘사와 부합. Man kann auch die Möglichkeit nicht abweisen, dass manche Charakterzüge, die die Juden in die l frühe Vorstellung ihres Gottes eintrugen, indem sie ihn eifervoll, streng und unerbittlich hießen, im Grunde von der Erinnerung an Moses hergenommenen waren, denn in Wirklichkeit hatte nicht ein unsichtbarer Gott, hatte der Mann Moses sie aus Ägypten herausgeführt. S131–132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 왕국의 분열은 출애굽 후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에서 이곳의 이민족과 융화된 것에서 비
롯될 수 있음. s137
Die einstigen Ägypter waren wahrscheinlich in ihrer Volkszahl geringer als die anderen, aber sie erwiesen sich als die kulturelle Stärkeren ; sie übten einen mächtigeren Einfluss auf die weitere Entwicklung des Volkes, weil sie eine Tradition mitbringen, die den anderen fehlte. S138

야훼에 대한 여러가지 또다른 이름은 다신교의 흔적일 수 있음 Die verschiedenen Namen sind das deutliche Kennzeichen ursprünglich verschiedener Götter(Gressmann 재인용) s140

모세의 측근들(레위족)은 새로운 신인 야훼의 권능을 보이기 위해 출애굽 과정에 높은 가치를 두고 미화 die schreckhaft Großartigkeit des Vulkangottes 예를 들어 구름기둥과 불기둥, 홍해의 기적. der Auszug und die Religionsstiftung nahe aneinanerrückt…auch die Gesetzgebung vollzug sich nicht in Qades, sondern am Fuß des Gottesberges unter den Anzeichen eines vulkanischen Ausbruches. s140
그러나 이런 서술은 화산신이 아니라 자신이 애굽에서 백성들을 해방시킨 것으로.보려는 모세에게 못마땅 했음 s140-141

모세의 고압적이며 급노하는 성정과 온화하면서 인내심 강한 성정이라는 성격의 모순성은 출애굽의 모세와 시나이 산이나 Quades의 미디안 제사장 모세가 전혀 다른 인물이면서 합체된 인물이라는 점을 시사 s141

선택된 백성이란 모세가 선택한 백성이란 것
man hört wohl manchmal davon, daß ein Volk einen anderen Gott annimmt, aber nie, daß ein Gott sich ein anderes Volk aussucht…Moses hatte sich zu den Juden herabgelassen, sie zu seinem Volk gemacht ; sie waren sein „auserwähltes Volk““.  S146

Ikhnaton과 마찬가지로 전제적인 성격의 군주가 맞이하는 운명 : 모세가 강제한, 정신적으로 지극히 고고한 새 종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백성들. 온순한 이집트인들은 모세의 죽음을 기다렸으나 반항적인 셈족은 스스로 모세를 척결시키려 함 s148-149

광야에서의 방랑과 우상숭배는 모반에 기반 Der Bericht über die „Wüstenwanderung“-die für die Zeit der Herrschaft Moses‘ stehen mag-schildert eine Kette von ernsthaften Empörung gegen seine Autorität, die auch-nach Jahves Gebot-durch blutige Züchtigung unterdrückt werden.  S149

출애굽 당시 이집트는 무정부의 궐위상태로 파라오가 부재중일 수 있음 Es gab keinen Pharao des Auszugs, da dieser in ein Interregnum fiel. S150

III. Moses, sein Volk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1938년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카톨릭의 보호를 받고 있던 유대인 프로이트는 이 저서의 출판으로인해 교계로부터 보호를 박탈당할 것을 염려하는 중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자 흔들리는 갈대같던 카톨릭을 넘어 영국으로 망명해 눈부신 환대와 기대를 받음. 특히 그리스도교의 길과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해. s159-160

종교현상이 신경강박증이라는 명제를 모세의 유일신교를 통해 밝히기 s160

태양신이란 유일신교를 창시한 파라오와 가까운 이집트의 실권자(아마도 유대민족이 주로 살고 있던 지방의 태수)로 추정되는 모세가 왕의 사후 혼란기에 자신이 선택한 민족과 출애굽 후 가나안 까지의 여정에 대한 두가지 역사적 가정 1(E. Sellin). 완고하고 반항적인 유대인들이 그들의 입법자이자 지도자인 모세에게 항거하고 그를 죽임으로써 이전의 이집트인들처럼 그들에게 강제된 새로운 종교를 배척 2(Ed. Meyer). 이집트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에 사이에 살고 있던 동족과 결합해 아라비아의 Midianiter 하류의 수량이 풍부한 Qades에서 화산신 야훼를 섬기는 새로운 종교를 만듬 s163

출애굽 당시 모세의 신과 가나안 정복기의 야훼는 다른 신일 가능성 Für ein Volk, das sich zur gewaltsamen Besitzergreifung neuer Wohnsitze anschickte, war Jahve sicherlich besser geeignet. Und alles, wss an mosaischen Gott verehrungswürdig war, entzog sich überhaupt dem Verständnis der primitiven Masse.  S166

선택된 민족이라는 우월적 감정과 불행한 운명의 경험은 합체되기 어려워 보일 수 있으나 이런 의심의 죄책감은 아시리아와 바빌론, 페르시아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이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극복…이런 와중에 이질적이 두 신(오래된 모세의 신과 후기의 유대민족의 신)은 하나로 일체화 되는 과정(유일신교로의 정착)은 의례에 집중하던 제사장 계급과 모세의 가르침에 저항한 백성들의 아우성이라는 적대적 관계를 선지자들이 해소하면서 가능했는데, 이는 신은 제사와 의례를 거부하고 오직 진리와 정의의 삶을 요구한다는 것. 광야생활의 단순성과 신성의 칭송은 모세적 이상의 영향에 있는 것 s167

의례집의 제도화는 모세로부터 권위를 세우려 했던 제사장직 계급의 산물 Institutionen wie Ritualvorschriften, die unverkennbar späteren Zeiten angehören, werden als mosaische Gebote ausgegeben, in der deutlichen Absicht, Autorität für sie zu gewinnen. S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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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들1

헤겔 Hegel 2024. 4. 18. 19:5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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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F.,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 Begriff der Religion, Erst Band, heraus.v. Georg Lasson, Verlag von Felix Meiner Hamburg(n.1966 der I. Auflage v. 1925)

Die Religion ist unser Gegenstand, sie hat zum Inhalt ihrer selbst diesen einen Gegenstand : Gott. Sie ist das Bewusstsein der Beziehung auf Gott, und ihr Gegenstand ist der schlechthin unbedingte…der absolute Anfang und Endzweck an und für sich. s.7

Sie[Natürliche Theologie,die Wolffische Metaphysik] betrachtet nur Gott, und zwar auf abstrakte, verständige Weise…Wir nun betrachten Gott als Geist…Denn als Geist ist er nicht nur ein abstraktes, sich auf sich beziehendes Wesen, sondern als Geist hat er die Bestimmung, sich selbst als Gegenbild eine wissende Gemeinde zu setzen, in der er erst als Geist zu leben vermag. s.8

Terry Pinkard, Hegel : A Biography, Cambridge  University Press(2000)
5.The Phenomenology of Spirit : Hegel finds his voice
칸트의 맹목적 이성주의를 공격하는 야코비에 대한 헤겔의 응답은 비로서 그가 자신의 철학을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것은 이성의 자기전개 과정을 마치 데카르트처럼 회의의 방식을 차용해 급진화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부정의 방식, 곧 변증법이다. 의식이 단지 주어진 감각자료를 수용하고 판정하는 것은 단순하고 일면적이지 않다. 의식 내에서는 이 자료를 파악하기 위한 의식 내 인자들[범주들?]의 각축이 벌어지며, 이 싸움은 이들에게 목숨까지 건 인정투쟁의 양상을 띈다. 인정(Anerkennung)은 결코 온전한 화해에 이를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인정은 주인으로부터 노예에게 강제된 것이기에 주인에게나 노예에게나 언제나 뒤집힐 수 있는 불안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혁명의 근대사를 인간 의식 내부로 침투시킨 것인데, 이것은 야코비의 공박에 대한 해명이라기 보다는 극단의 국면전환에 가깝다. 이성을 절대이성으로 역사속에서 구현시킴으로써 오히려 이성의 활개를 제한시키려는 칸트 보다 더 나간 것이다.

정신의 자기전개과정이 서양의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것을 헤겔은 단지 유비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통해 드러나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보편적 인륜의 부재는 외재적 강제로 유지되던 로마로 이어지고, 기독교를 거쳐 혁명의 시대로 가서야 정신의 자기실현에 다가가는데 여기서 헤겔은 극도의 비약을 감행한다. 나폴레옹을 절대이성의 화신으로 보는 것을 넘어, 역사적 혁명은 철학에 계승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독일철학이며 그 선구자는 칸트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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