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803건

  1. 2020.12.23 카셀의 역사(Geschichte Kassels)2
  2. 2020.12.23 카셀의 역사(Geschichte Kassels)1
  3. 2020.12.22 에어푸르트 Erfurt
  4. 2020.12.20 카셀에서의 생활
  5. 2020.12.09 두 도시 이야기

카셀의 역사(Geschichte Kassels)2

번역 Übersetzung 2020. 12. 23. 18:3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Gegen Ende des 15. Jahrhunderts wurde die Umwehrung der Burg erneuert.

15세기 말에 성의 요새화가 새로워 졌다.

Von 1523 an ließ Landgraf Philipp I. Kassel in eine neuzeitliche Festung mit Bastionen umbauen.

1523년부터 제후 필립 1세는 카셀을 보루가 있는 새로운 성채로 개조했다.

Auch die mehrfach um- und ausgebaute Burg ließ Philipp schließlich abreißen und ab 1556 ein Landgrafenschloss im Renaissancestil errichten, das weit gehend unverändert bis zum Jahre 1811 dem hessischen Fürstenhaus als Residenz diente.

또한 필립은 여러번 재건되고 확장된 성을 마침내 파괴하고 1556년부터는 르네상스 스타일로 제후의 성을 지었는데, 이것은 1811년까지 거의 변경 없이 헤센 제후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In der Nacht von Sonnabend auf Sonntag, den 24. November 1811, schlugen plötzlich Flammen aus dem Schloss.

1811 11 24,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갑자기 성에서 불꽃이 터졌다.

Napoleons Bruder, Jérôme, residierte zu dieser Zeit als König von Westfalen im Landgrafenschloss.

나폴레옹의 형제인 제롬은 이 당시에 베스트팔렌의 왕으로서 제후의 성에서 살고 있었다.

Jérômes Hofbaumeister, der Ingenieur Grandjean de Montigny, hatte im Schloss eine Art Zentralheizung einbauen lassen, kupferne Röhren waren unter dem Fussboden verlegt worden.

제롬의 궁정집사이자 엔지니어인 그랑잔 드 몽티니는 성에 일종의 중앙난방장치를 설치했는데, 동관이 바닥 아래에 깔려 있었다.

Man hatte in dieser Nacht so eingeheizt, dass die Heizröhren glühten.

이날 밤에 난방관이 불꽃이 튈 정도로 정도로 가열되었다.

Diese setzten die Holzböden in Brand, zuerst im an der Fulda gelegenen Schlossflügel.

이것은 처음에는 풀다 방향으로 있는 성채 별관의 나무바닥에 불을 지폈다.

Nur notdürftig bekleidet habe sich Jélôme von seinem Schlafgemach über die schon brennenden Flure in Sicherheit gebracht, so heißt es.

제롬은 그의 침실에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이미 불에 탄 복도를 빠져나와 구조되었다고 한다.

Die Temperatur lag bei minus 20 Grad, so dass sich die Löscharbeiten sehr schwierig gestalteten, da die Spritzen einfroren.

온도는 영하 20까지 머물러서 소화작업은 매우 힘들었는데, 소화기가 얼었기 때문이었다.

Am Morgen war ein Drittel des Schloss total zerstört.

아침에 성의 1/3이 완전 전소되었다.

Ein Opfer der Flammen wurde unter anderem ein von Lucas Cranach gemaltes Bild Philipps des Großmütigen.

화염의 한 희생물은 다른 무엇보다도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필립 대공의 그림이었다.




반응형

카셀의 역사(Geschichte Kassels)1

번역 Übersetzung 2020. 12. 23. 02:58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Landgrafenschloss Kassel-Blickpunkt Wehlheiden, ausgabe 86

제후의 성 카셀

 

Ob am hohen Ufer der Fulda tatsächlich der ehemalige fränkische Königshof aus dem Jahr 913 stand, ist nicht verbürgt.

913년 이래 옛 프랑스 왕가가 실제로 풀다의 높은 저수지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Historiker vermuten, dass der Hof neben der frühen Marktsiedlung Chassalla genau an jener Stelle gelegen war, wo heute das Kassler Regierungspräsidium steht.

초기 시장 정착촌인 샤슬라 옆의 정원이 정확히 오늘날 카셀의 청사가 있는 곳에 있었다고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Doch Belege dafür wurden bei Ausgrabungen bisher nicht gefunden.

하지만 그 장소는 발굴작업으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Fundamente und Kellergewölbe der alten Landgrafenburg aus dem 14. und 15. Jahrhundert wurden aber schon 1935 freigelegt.

그러나 14세기와 15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제후 성곽의 터와 지하실이 1935년에 가서야 드러났다.

“Die wichtigste historische bauliche Stätte in Kassel ist dort, wo sich heute der Regierungs- und Justizpalast befindet”, so die Kasseler Neuesten Nachrichten im September 1935 über die Ausgrabungen.

카셀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축 터가 오늘날 청사와 법원이 있는 곳에서 발견되었다193510월 카셀의 최신 소식통은 전했다.

In historischen Quellen finden sich Hinweise, dass seit 1277 hoch über der Fulda die Residenz der hessischen Fürsten stand

역사적 근거로 보면, 1277년 이래 풀다의 위쪽에 헤센 제후의 영지가 있었다.

In strategisch günstiger Lage konnte so der Flussübergang für die Fernstraßen gesichert werden.

그렇게 간선도로를 가로지르는 강은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로 확보되었다.

Anstelle einer fast 200 Jahre alten Burg ließ Landgraf Ludwig II. im Jahre 1466 einen neunen Schlossbau errichten “mit einem gewaltigen steinern Fuß, hölzern Stockwerk, hübschen Spitzen und Zinnen”.

1466년 제후 루드비히 2세는 거의 200년 된 낡은 성을 대신하여 단단한 돌 바닥과 목조 구조물, 멋진 첨탑으로 된 새로운 성을 세웠다.

Um 1500 wird das Schloss zur Fulde hin um den Rothensteinflügel erweitert.

1500년에 이 성은 풀다를 바라보며 로뎀슈타인 별관으로 확장되었다.

 

 

 

반응형

에어푸르트 Erfurt

여행 Reise 2020. 12. 22. 05:08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비자를 빨리 받을 생각으로 에어푸르트에 한 달간 있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으며 불필요한 비용발생을 초래했지만, 경주같은 이 고도시를 얼마간 배회한 기억들이 사진 너머에 있을 것이다.  

 

Ich war einen Monat in Erfurt mit der Absicht, mein Visum früher zu bekommen.  Infolgedessen war es eine falsche Wahl und verursachte unnötige Kosten, aber die Erinnerungen an das Wandern in dieser alten Stadt wie Gyeongju werden jenseits des Fotos liegen.

 

이 숙소에 있으면서 흡연 때문에 베란다를 자주 이용했는데, 달리 보면 베란다 때문에 흡연을 자주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코로나로 외출을 삼가하는 상황에서 베란다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쉽게도 현재 머물고 있는 카셀의 집은 베란다가 없다. 그러다 보니 흡연은 밖에 나가서 하게 되는데, 좀처럼 밖에서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없는 이곳에서 밖에서의 흡연은 다소 불편한 일이지만, 담배를 확실히 덜 피우게 되는 이점은 있다. 

 

Während ich in diesem Hostel war, habe ich die Veranda oft wegen des Rauchens benutzt, aber mit anderen Worten, ich habe oft wegen der Veranda geraucht. Es ist jedoch ein Glück, dass es eine Veranda in einer Situation gibt, in der Menschen aufgrund von Corona19 wie heutzutage nicht mehr ausgehen. Leider hat Kassels Haus, in dem ich mich gerade aufhälte, keine Veranda. Infolgedessen gehe ich nach draußen, um zu rauchen, und das Rauchen im Freien ist an diesem Ort, an dem es selten Menschen gibt, die draußen rauchen, etwas unangenehm, aber es hat den Vorteil, dass ich weniger rauchen kann.

 

 

한국에서 자택 자가격리중인 사람이 1분간 격리 의무를 위반해서 보건당국의 고발을 당해 재판에까지 넘겨졌는데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는 기사가 떴다. 확진자 수가 적은 초기에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상호감시체계의 경계의식을 환기시키는 사례의 하나이겠지만, 아마도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집에만 틀여박혀 12일간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In einem südkoreanischen Artikel heißt es, eine Person, die sich zu Hause in Selbstquarantäne befand, wurde vor Gericht gestellt, nachdem sie von den Gesundheitsbehörden beschuldigt worden war, eine Minute lang gegen die Quarantänepflicht verstoßen zu haben, und zu einer Geldstrafe von 2 Millionen Won(1.530 Euro) verurteilt. Es mag einer der Fälle sein, in denen das Bewusstsein für das gegenseitige Überwachungssystem geweckt wird, um die Ausbreitung in den frühen Tagen zu verhindern, wenn die Anzahl der bestätigten Fälle gering ist, aber die Reaktion des südkoreanischen Volkes darauf ist wahrscheinlich eine Atmosphäre der Akzeptanz. Es wird jedoch nicht einfach sein, 12 Tage nur zu Hause zu bleiben.

 

에어푸르트에 있으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2주간 자가격리 때문에라도 더 버텨 보자고 생각했다. 아예 길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라면.    

 

Als ich in Erfurt war und mich fragte, ob ich nach Südkorea zurückkehren sollte, dachte ich, ich würde versuchen, mich länger zu halten, auch wegen der Selbstquarantäne für zwei Wochen. Es sei denn, es scheint ein Weg nicht zu sein.

 

 

반응형

카셀에서의 생활

단상 Vorstelltung 2020. 12. 20. 04:56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코로나 시대에 생존전력은 집에 잘 붙어 있을 수 있고, 가능하다면 집에서 수익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외국에서, 그것도 정식 비자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언어도 잘 안되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런 필요성이 절박해 지지만 딱히 뭘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다시 1년만에 독일에 온지 두 달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그 사이 한국에서 했던 일을 여기서 잠시 할 수 있었던 며칠 간의 시간을 제외하면 유트브로 옛날 드라마나 보는 것이 그나마 소일거리가 되지만, 이것만 보면서 무력하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전에 이따끔식만 스치듯 보던 유명한 드라마들을 다시 보는 재미는 상당하다. 그만큼의 대가를 광고를 보며서 치뤄야 하지만. 결국 코로나 시대에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콘테츠와 이것의 전달이다. 전달이라는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포괄한다. 집에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집에서 먹고 마시는 일은 실물의 전달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다. 

얼마 전에는 이베이 소광고에 작은 구직 광고를 올린 적이 있다. 전등설치와 이사보조 2건을 올렸는데, 이사쪽에 문의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차가 없다고 하자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 내지 팔 물건과 적정한 비용협상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이것도 일종의 전달행위이다. 서비스 내지 물품이 사전 협상을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천 명 대에 들어서면서 안그래도 시끄러운 나라가 더 소란스러워지는 국면이다. 이에 더해, 이미 백신접종이 일부 국가들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경우 백신 수급 상황 자체도 아직 확정적이지 않다. 두 자리수에서 세 자리수로 확진자가 늘어나도 안달을 낼 정도로 K방역이란 이름 아래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해 문자로 서비스해 주는 방식의 인질적 방역에 치중하던 예전의 상황에서 백신의 필요성은 간과된 것일 수도 있다. 이제 그 대가를 치루는 것인가? 계절적 요인을 생각한다면, 이곳과 달리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을 넘기는 것이 문제다. 백신 없이 원시적 감시체계로 제어할 만한 수준으로 확진자 수가 떨어질 봄을 기다려야 할 상황같다.

반응형

두 도시 이야기

단상 Vorstelltung 2020. 12. 9. 08:32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1년 만에 다시 독일에 와서 비자를 받기 위한 고군분투의 시간을 두 달 가까이 겪어오다 일단 카셀에서 임시비자 6개월을 받았다. 빠른 비자진행을 위해 먼저 도착한 에어푸르트에서 주소지 등록을 하고 비자 테어민을 기다렸지만 한달이 지나도 정식 테어민을 받지 못하고 이 도시의 비자청에서 우편으로 보내라는 서류만 넘긴 채 11월말에 카셀로 왔는데, 뜻밖에도 카셀에서 테어민이 먼저 잡혔다. 이미 에어푸르트 비자청에서 까다롭게 요구한 서류를 모두 제출한 상태라 카셀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비자처리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카셀에서 임시비자를 받은 어제, 에어푸르트에서 드디어 테어민을 잡아줬지만, 거기선 또다른 서류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에어푸르트 비자청은 그야말로 코로나를 핑계로 시간끌기를 하면서 비자를 갈구하는 외국인을 회피하는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일처리를 보여준다. 오래된 튜빙겐의 도시는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외국인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으려는 보수주의의 강력한 성벽이 가로 놓여 있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도시의 규모가 더 크고 외국인도 많은 헤센의 이 도시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나름 빠른 비자진행을 위해 두 도시를 놓고 양동작전을 펼치면서 많은 비용, 결과적으로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발생했지만, 이 불확실성은 마치 농사와도 유사하다. 옥천의 한 포도밭에서 잦은 비로 망칠줄 알았던 하우스에서 의외로 작황이 좋았던 곳은 멀칭 비닐이 바람에 날려버려 하늘이 훤하게 드러난 부분이었다. 대비를 안할 수는 없지만 대비가 안된 곳에서 의외의 성과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