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

책들 Bücher 2011. 4. 1. 18:0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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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를 읽고, 집에 있던 오래된 범우사 문고판의 『왼손잡이 여인』을 읽기 시작했다. 『..여인』의 초판 번역본(1977)이 나왔을 때 작가의 나이는 사십대 중반이었다. 『어두운 밤..』(1997)과 거의 20년 넘게 차이가 나는 변화가 너무도 선명하다. 마치 한 작가의 내면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는 여행같다. 사실 『어두운 밤..』은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독서가 매우 더뎠고, 글의 이미지가 잘 맺혀지지 않았다. 문명과 자연 사이의 완충공간으로 작가가 설정한 도시와 도시 사이의 사막같은  스텝이라는 이미지가, 마치 『파리 텍사스』의 첫 장면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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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책

책들 Bücher 2011. 3. 23. 18:0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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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와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더니, 9권 중 1권이 연체되어 3일간 대출중지에 걸렸다. 내가 빌린 책은 한 권이고, 나머지는 가족이 빌린 건데, 한 권의 연체 때문에 대출가능한 9권 중 단 한 권도 대출이 안되는게 비합리적이지 않냐고 대출실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살짝 클레임을 걸었다. 건의해 보겠노라는 늘상 그렇고 그런 식의 답변을 받고 집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었다. 몇 주 전에 이 책을 대출해 보다가, 아내에게 추천을 했더니 구입했다. 좀 아껴 보려고 절반쯤 읽다가 반납한 후, 다른 책을 봤다. 그런던 중 칼비노의 『우주 만화』를 읽었는데, 상상의 고공행진에 질겁을 했다. 이에 비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간결하고 시적이다. 제목처럼, 상상 속에 존재하는 도시들을 쿠빌라이 칸에게 술술 읊어대는 마르코 폴로는 현실보다 더 생생한 가상의 도시 얘기를 펼쳐 나간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상상은 응축시키면서 독자 스스로 의미를 한정시키 않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상상을 펼치는 장으로, 도시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도시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풀어볼 수 있게 해 준다. 도시와 도시가 확장되는 와중에 도시와 도시의 중간이 사라져 가는 거대한 도시화에서 인간의 삶은 고래싸움의 새우등처럼 쪼그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던진다. 예전에 나는 한 이웃과 양평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양평이 행정구역상 양평시가 맞는지, 양평군이 맞는지 설왕설래를 한 적이 있다. 지방행정단위의 체계상, 예산의 효율적 집행상, 양평시와 양평군이 별개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양평은 모두 도시인가? 아니면 앞으로 모두 시로 흡수되버릴 곳인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마져 다 읽고, 현재는 아내가 이 책과 함께 구입한 페터 한트케의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In einer dunklen Nacht ging ich aus meinem stillen Haus(문학동네, 윤시향 역, 2011, 초판)을 읽고 있다. 한트케(1942~)의 비교적 후기작으로 1997년에 출판된 책인데, 새로운 형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작가답게 이야기가 무척이나 생소하다. 역시 독일인의 서늘한 정서가 뭍어 있는 구절 하나.

"나[탁스함의 약사] 자신에게 어떤 규율이나 삶의 규범을 부여한다면...지금 곁에 없는 네 가족들이-아주 넓은 의미에서의 가족이지요-어디서든 너 없이도 잘 지내고, 늘 그렇게 먼 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하라. 방해하지 말고!"(28면) 

소설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인근에 있는 국경의 은둔 도시 탁스함의 지리적 독특함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발동을 걸고, 다소 기벽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약사가 시인과 동계 올림픽 챔피언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으로 본 궤도에 오른다. 슬슬 탑승의 재미가 일어난다. 어린 시절에 무언가 탈 것에 오르면 이동중에 재미가 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언제부터 이런 느낌이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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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시위대와 이민자의 시련

책들 Bücher 2011. 3. 20. 08:4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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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러의 『밤의 군대들』을 읽었다. 다음 구절은 다소 애국주의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정치적 투쟁의 불가피성 내지 통과의례적 성격을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시련을 피하지 않은 자에게 새벽녘 잠시 찾아오는 달콤한 신비는 혹한 속에 피어나는 한 줄기 불꽃이다.

"처음부터 이 나라는 시련의 의식으로 세운 나라가 아니었던가! 이 의식을 겪지 않고 이 나라에 발을 붙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럽고, 두렵고, 소란스러운 조타실 옆에서 여드레 동안(그 보다 더 길든 더 짧든!) 바다를 항해하여 찾아왔다 해도(노예 선에서 팔십 일간을 신음했다 할지라도) 미국의 위대한 후예들은 자신들의 의식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앨러게니 산맥과 애디론댁 산맥의 숲 속에서, 포지 계곡에서, 1812년 뉴올리언스에서, 로저스와 클라크와 함께 수터스밀에서, 게티스버그에서, 알라모에서, 클론다이크, 아르곤, 노르망디, 부산에서. 펜타곤에서의 싸움도 바로 이런 것들 다음에 오는 창백한 시련의 의식이었으며 진실한 것이었다. 죽고 메마르고 버르장머리 없는 중산층 아이들에게 불어 닥친 시련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도덕적 선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격을 감행했고 선서를 지켰다. 미국은 옳고, 미국은 강하고, 미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믿음의 나라라는 ㅣ 원칙을 상징하는 최고의 권위 앞에서. 그러므로 마약에 탐닉하고 속어의 엉망진창을 헤매던 이 물렁물렁한 아이들에게 그 밤은 시련의 의식이었다. 아이들은 그 밤을 견뎌 냈다. 기쁨 속에서 막이 오른 그 칠흑같이 어두운 밤, 공포에 질려 텅 비고 무감동한 시간 속으로 질질 끌려 가면서, 빛의 섬광을 외롭게 바라 보면서 시련의 의식을 겪고 도덕적 사다리를 오른 것이다. 시련을 겪고 난 아침, 이들은 전날 밤과는 전혀 달라졌으리라. 이것이 시련의 의식에 숨은 뜻이다. 배가 난파되고 온갖 유혹이 난무한 항해를 거치고 나면 어느 지하 세계에서 삶 속으로 들어왔던 죄악(태어날 때 물려받은 죄악)은 도망치고 떠나가고 단념한다. 몸속 어딘가가 재생된 듯싶고 기분이 훨씬 낫다. 영혼의 어느 부분이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달콤한 감촉의 작은 미립자로 재생됐다. 이들이 알링턴 기념교 위를 행군할 때, 가장 수줍고 비틀어진 사람들이 두려움밖에는 느낄 수 없었던 펜타곤까지 행진해 전쟁 수행자들의 땅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밤의 군대들』, 415-4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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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 가치 변화의 단면

책들 Bücher 2011. 3. 14. 16:2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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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러가 펜타곤에서 자진 체포된 후] "미국의 작은 마을은 계속해서 커지고 불어나면서 소통과 바람 사이, 삶과 유령 사이의 조화, 광기, 우울증(겸손이 깃든 광기)을 배울 수 있는 엄숙한 자연의 처소들을 지금 모두 잃고 말았다. 조금씩 잃고 말았다. 이제 이런 겸손한 광기는 옛이야기처럼 마을을 떠났다. 마을이 커지면서 세포들은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정부를 위해 일하고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키며 안정을 누렸다. 그래서 옛날 바람을 타고 휩쓸던 광기는 이제 요술쟁이의 코끝에서나 노는 신세가 됐다. 야만인들의 정욕이나 학살당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피의 전쟁 등 이런 악몽은 잠자리에 더 이상 찾아들지 않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게 됐다. 발달하는 산업은 바람에게서, 다락방에서, 지금은 잊힌 원시적인 장소 곳곳에서 그 광기를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 ㅣ 은 열기와 힘의 기계들이 합쳐진 라스베이거스나 경마장, 프로 미식축구, 흑인들의 인종 폭동, 교외에서 벌이는 술잔치 같은 데서 그 광기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그 옛날의 광기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베트남에서 그걸 찾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소도시가 한바탕 힘을 써보자는 곳이 바로 그곳이 됐는지도 모른다."

『밤의 군대들』, 237~238면.

[자칭 보수적 좌파라고 하는 메일러의 비둘기파에 대한 견해] "비둘기파의 대다수는 어느 가능성과도 대면하기를 피한다. 자유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파헤치려 들면 결국 자신들이 주창하는 자유주의의 근본이 파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두드러지게 되면 끝장날 수 있는 정책들을 기꺼이 옹호해야 하고 인정해야 하기 떄문이다. 이건 곧 스스로 매파에게 굴복하는 것과 같다."

상동, 283면.

[전세계 공산화의 치명적 한계]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는 것이 힘의 균형을 얻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해답은 철수하라는 것이다. 두려워할 것 없으니 빨리 손을 떼라. 공산주의가 확장될수록 공산주의 그 자체의 모순은 더욱 더 커질 것이고 세계를 정복하겠다던 생각은 더욱 더  흐느적거릴 것이다. 공산주의의 팽창 그 자체가 스스로 견제한다. 공산주의를 패배시킬 유일한 힘은 바로 공산주의 그 자체다."

상동, 287면.

[미국적 가치의 딜레마] "메일러는 베트남 전쟁을 넘어서 아주 슬픈 결론을 내리게 된다. 미국의 중심이 정신 나간 것 아니냐. 이 나라는 해가 지날수록 깊어만 가는 정신분열증을 잘 다독거리며 견뎌 왔 ㅣ 다. 어쩌면 이런 논쟁은 이미 시효가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기독교에 헌신해 왔고 미국이라는 사단법인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악에 사로잡혀 본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그 압박감으로 영혼과 마음이 갈라지는 듯한 그런 통증. 기독교 정신의 정수는 신의 아들이라는 신비함이다. 그런데 사단법인의 중심은 과학 기술을 숭배하며 신비함을 배척한다. 과학 기술만큼 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과 반대되는 개념도 없으리라.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평범한 미국인들은 매일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더욱 더 정반대의 길인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있다. 예와 아니오, 1과 0. 그러니 점점 머리속이 분열될 수 밖에 없으리라. 이 두 가지 반대 방향으로 인하여 기독교적 영혼의 균열은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명예보다는 사랑을, 욕망보다는 책임을, 권력에 대한 정욕보다는 자선을 강조하고 실천함으로써 맑은 정신을 유지해 왔다. 그 균형을 맞추기는 힘들었으나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비에 대한 사랑과 컴퓨터라는 신비가 전혀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은 억압된 정신분열의 상태를 심화시켰고 결국 터져 버렸다. 베트남 전쟁은 일시적인 치료와 같다. 이 동물적인 폭발을 통해 분열된 정신은 일시적으로 구제를 받을지도 모른다."

상동, 287-2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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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베트남 반전 시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가 뒤섞인 듯한 독특한 다큐문학이다. 특히 이 소설은 MB 집권 초반기에 들불처럼 예언적으로 일어난 2008 촛불시위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반전 시위의 주동자급이자 내부 관찰자로서 메일러는 시위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듯한 미지의 세계로 돌입해 가지만 내적으로 크랙이 발생하는 조짐을 읽는다. 하지만 인간 사이의 분열에 비해 일본 도호쿠의 지진이 보여주듯 저 자연이 일으킨 지각의 균열은 얼마나 경악스러운 위협인가.    

"멋진 전문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메일러는 자신의 일과 관련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고무됐다. 섹스와 미식축구가 아주 흡사해서 프로 미식축구 선수들의 성적 욕망이 강하듯이, 메일러는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글 쓰는 작업과 비슷해 그것을 즐겼다. 이건 너무 지난친 대비일까? 작가의 의식을 넘어 어떤 낱말이나 어떤 구절 속에 숨겨진 것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바로 그 순간에 대부분의 글이 민감하게 쓰인다는 걸 생각해 보라..ㅣ..대중 속에서 이야기하는 기쁨은 은총이 제공하는 감성이다. 쏟아 내는 말에 따라 더 나빠지기도 하고 더 멋지게 보이기도 하며 청중과 연사 사이에서 떠도는(이건 잘 되는 경우들인데) 실존적 진실의 약속, 진실하구나라는 느낌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멀이지기도 한다...공감이 지속될 때 즉시 전략적 선택이 따라야 하고, 그런 순간에 연사는 자신에게 도박사의 피가 흐로고 있음을 인식한다."

노먼 메일러, 『밤의 군대들』권택영 역(민음사, 2007, 1판 1쇄), 52-53면.  

"맨 처음 불을 뿜는 전선[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의 군도]으로 걸어 들어갔던 때, 다치는 한이 있어도 그건 인생의 어느 때보다 더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이후 벌어진 조그만 격돌은 그보다 못했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싸우느라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몇 달만 지나도, 싸움은 마음에 안  들게 된다. 피로가 누적되고, 열대지방의 내장은 들끊고, 끝없이 진흙 속을 걸어야 하고, 누가 죽든지 살든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첫 입김 ㅣ 은 아직도 생생하다...ㅣ...이 대군의 모습[펜타곤 시위에 각양 각색의 복장으로 모여든 사람들], 수천 가지 복장을 하고 모여든 군대는 곧 우리 장군의 전쟁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상을 완성했다. 장군은 싸움터에 나가는 자는 모두 각자 마음에 드는 복장을 하고 오라고 했다. 그것이 참전하는 사람의 권리이며, 다양성이 있어야 싸움에서 땀 흘리고 싸우는 자들의 열정이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오늘 여기 모인 수천 명은 줄무늬 재킷, 코르텐이나 멜빵바지를 걸쳤다. 공격 준비 완료!)"

상동, 143~144, 1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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