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크 이야기(火, 쌀쌀하면서 맑음)

책들 Bücher 2011. 10. 25. 09:1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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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계명작동화 중 『대장 부리바』로 불렸던 고골의 원작을 읽었다. 정확한 발음과 이름으로는 『타라스 불바』로, 타라스는 '대장'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바의 이름이며, 성의 발음은 '부리바'가 아니라 '불바'라고 한다(따라서 고골리가 아니라 고골). 15세기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형성된 반(半) 자치 유목민이었던 카자크들은 16세기, 러시아 외곽의 변경 수비대 역할을 하면서 전성기를 이루는데, 주요 지역에 형성된 돈, 그레벤(카프카스 지역), 야이크(우랄 강 중류), 볼가, 드네프르, 자포로제 중에서 작가는 자포로제 카자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러시아 정교를 숭상하던 카자크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정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카톨릭을 신봉하는 폴란드와 잦은 분쟁에 돌입한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군사적 공동체로 국가에 봉헌하는 카자크들은 20세기 초반의  러시아 제정 말기까지 최정예 부대로 이용된다. 이 소설에 보이는 카자크들의 강렬한 용맹성을 500 여 년에 걸쳐 국가가 이용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카자크들의 생활 양식을 보면 오늘날의 조직폭력배와 흡사하다. 세치의 가족을 떠나 자포로제로 몰려든 카자크들은 남자들끼리 생활하면서 평상시엔 고주망태로 술을 퍼마시고, 싸움꺼리가 오기까지 몸을 간질거린다. 이 소설은 러시아인들에겐 작가가 태어난 우크라이나 땅의 전설적 영웅들의 이야기를 채록한 민족의 서사시로 보이겠지만, 폴란드인에게는 야만의 기록일 것이다. 민족적 특성과 종교의 차이가 처참한 갈등과 폭력을 유발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역작이다.

주요 인물 :  휴전 중에 있던 폴란드의 소도시와 전투를 선동한 실질적인 총대장 타라스 불바와 그의 첫째 아들 오스타프, 폴란드 귀족의 딸에게 넘어간 둘째 아들 안드리, 전쟁으로 한 몫 챙기는 유태 상인 얀켈 등.  

니콜라이 고골,『타라스 불바』조주관 역(민음사, 2010, 1판 2쇄).

카자크에 관한 역자의 해설 중
"카자크라는 명칭은 15세기에 드네프로 강 유역에서 형성된 반(半)자치집단인 유목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15세기 말에는 농노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폴란드, 리투아니아, 모스크바 공국에서 드네프르 강과 돈 강 유역으로 달아나 자유로운 성격의 군사조직을 만든 농민들도 포함하게 되었다. '카 ㅣ 자크'라는 말은 원래 '독립적인 또는 자유로운'이라는 의미를 가진 터키어에서 유래하였다...그들 대다수가 大러시아인들이 아니면 우크라이나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폴란드로부터 종교적 억압과 민족적 핍박을 받았고, 세금 착취와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교도적인 요소가 가미된 러시아 정교를 믿고 있었던 그들은 초기에 어업과 수렵에 종사했지만, 일부튼 터키, 크리미아, 페르시아 등지의 해안에서 주로 약탈을 일삼았다. 17세기 이후 그들의 생업은 농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들의 사회구조는 전통적으로 평등과 토지 공동소유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상동,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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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소략

책들 Bücher 2011. 10. 17. 16:5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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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읽었다. 다른 것도 그렇겠지만, 단편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 진다. 조그만 인상이라도 남겨두는 것이 노화되는 기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기록이 의식 저편의 기억에 잔존하던 인상을 상쇄하는 역효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다시 읽어야 한다.

-관리의 죽음
체호프의 초기 희곡의 특징을 보여주는 풍자극. 상명하복과 눈치밥에 이골이 난 공무원이나 직장인에게 귀감이 될 만 하다.

-공포
도무지 무엇이 공포스러운지 알 수 없는 단편이다.

-베짱이
남편의 진가를 그의 최후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여주인공이 베짱이일까?

-드라마
악성 팬에 걸려든 작가의 고뇌를 보여준다. 문득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베로치카
우유부단한 남성의 후회기?

-미녀
소유할 수 없는 미에 관한 고전적 논의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다.

-거울
거울 저편에 미래의 삶이 과거로 투영된다.  

-티푸스
톨스토이 혹은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던 것 같다.

-주교
 높은 성직이 주교의 숨을 막히게 한다.

-『체호프 단편선』박현섭 역(민음사, 2008, 1판 20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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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복수의 책을 병행해서 읽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중간에 읽다가 그만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생처럼 학습이 주된 일상사가 아닌 입장에서 더욱 그렇다. 집에 묵혀 둔 밀의 『자유론』은 그런 식으로 읽다가 책의 1/3 정도의 지점에서 책을 덮은 것이 2003년이었다. 당시 잠깐 다녔던 일본어 학원의 수강증을 책갈피로 써서 시기를 알 수 있었는데, 그 때 줄쳤던 부분은 지금 봐도 공감이 간다. 『자유론』은 강남좌파로 지목된 조국의 인터넷 강좌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워낙 유명하고 중요한 저서라 내 생각에는 고등학교에 철학과목이 개설된다면 한 학기 동안 『자유론』을 교과서로 써도 좋다고 본다. 공리주의자로서 개별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때의 자유는 다수의 폭압에 억눌러진 자유로, 이렇게 개별자가 침묵을 강요당하면 사회적 발전도 퇴보할 수 없다고 밀은 본다. 여기서 다수는 정부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는데, 정부는 제도를 통해 소수를 통제할 수 있고, 사회는 여론을 통해 소수를 제압할 수 있다. 특정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가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이 의사를 제도와 여론으로 사장시키는 것은 다수의 맹목적 폭력이다. 다수가 자신의 의견을 소수의 의견을 묵살한 채  관철시켜가는 것은 스스로 정당성과 유용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즉 다수의 의견은 소수의 의견을 통해 검증받을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을 통해 오류로 판정될 가능성을 놓칠 수 있거나 소수의 의견을 통해 더욱 강화된 진리로 확인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제도 없이 유유히 라인을 타고 흘러가는 강은 늪지와 모래밭과 같은 여과장치를 파괴하며, 그 결과는 점진적인 사회의 균열과 와해로 나타난다.
 
그나 저나 오랜만에 철학책을 접해서인지 건조한 감이 들어 도서관에서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을 대출했다. 오 헨리의 단편을 고를까 했는데 내가 즐겨가는 서가에 없어서, 역시 앞부분을 읽다가 만 체호프의 작품을 골랐다. 토마스 만의 경우처럼 단편은 중장편이나 대하서사와 비교해 소품이나 대작을 위한 디딤돌로 볼 수 있는데, 체호프에게는 단편이 더 알려져 있다. 체호프도 서머셋 몸처럼 젊은 시절 의사직을 던지고 집필에 몰두했다면 대작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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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독서(화요일, 맑음)

책들 Bücher 2011. 10. 4. 08:5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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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철 이사를 가야할 상황이라 요즘 정신이 어수선하다. 몇 주간 접한 책들은 깊은 독서를 못했다.

최영준, 『홍천가변에서 주경야독 20년』(한길사, 2010, 1판 2쇄).
역사지리학자의 반(半)귀농 이야기다. 저자가 90년대 초반에 홍천 강변의 산골에 터전을 마련해 서울을 오고가며 지내온 시골생활을 보여준다.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안정된 귀농이 가능함을 알려준다.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임수현 역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Dans la solitude des champs de coton(민음사, 2007, 1판 3쇄).
두 편의 희곡이 실려 있는데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두번째 희곡은 읽다가 손을 들었다. 어둠의 뒷골목에서 자신의 판매물건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 딜러와, 자신의 욕망의 대상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 손님 사이의 대결구도는 재미있는 설정이다. 두 사람은 욕망을 놓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En)attendant Godot, Waiting for Godot.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귀찮아 집에 있는 책을 들었다. 원본은 불어본인데, 영문본을 중역한듯 하다. 그래도 콜테스보다는 낫다 싶은데, 역시 의미가 오리무중인 희곡이다. 예전에 한 대학 캠퍼스에서 친구인듯한 두 노인이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 할아버지가 먼저 집에 간다고 하자 다른 할아버지가 화를 내는 장면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뭔가 불완전 연소같은 대화를 연상시킨다. 고도는 누구일까? 죽음, 구원, 신, 등장인물, 나무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베케트는 마치 목화밭의 저 딜러와 손님처럼 고도를 명시하지 않는다. 상징을 벗겨내는 것은 문학을 욕되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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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중심

책들 Bücher 2011. 9. 18. 10:1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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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 지옥편』을 읽다가 지루해서 반납했다. 고대 이후 서양 지성사에 대한 일종의 검열같은 리뷰라는 점에서 존 바스가 했던 시도와 유사하다. 오히려 존 바스가 더 생동감있지 않았나 싶다. 바스는 선대의 유산을 단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유산을 개작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읽다가 뒤쪽에 있는, 본문의 분량과 맞먹는 기다란 주석을 참조하며 읽는 것도 고역이다. 주석에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본문 밑에 짧은 분량으로 싣는 방식이 가독에 더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작을 중간에 읽다가 그만두면, 큰 산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린 듯한 낭패감이 든다. 그래서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경영서 한 권을 골랐다. 허남석과 포스코 사람들이 지은 『강한 현장이 강한 기업을 만든다』(김영사, 2009, 1판 13쇄). 아무래도 노골적인 자사 홍보물로 밖에 볼 수 없는 책인데, 이런 높은 판매부수는 직원이 1만 7,000명에 달하는 포스코의 규모를 짐작해 볼 때 알만한 수치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이런 책을 들여다 볼 만한 관심은 조금 있지만, 중간 중간에 구역질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서두를 장식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추천사부터 그렇다. 철강산업이 쇳물을 만드는 제선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현실에서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법으로 탄소배출량을 상당히 줄였다고 하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소형원전을 이용한 수소환원기술을 상용화해 '환경오염이 없는 제선작업을 이루는 동시에 저탄소 녹색성장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는 이병박 정권의 녹생성장과 뜻을 함께 한다. 원전을 늘려가며 녹색성장을 한다는건 원전을 녹색으로 칠해 그 위험성을 가리겠다는 곡학아세다. 그래도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450 만평에 이르는 광양제철소 공장 구석 구석을 제철소장이 헬맷을 쓰고 방진복을 입고, 작업화를 신은 채 매일 매일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살피는 현장 중심주의다. 현장을 옥죄기 위한 의도는 분명하지만, 직원들과 작업과 관련없는 대화도 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준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본다. 이건희나 이재용은 위험산업장으로 찍힌 삼성전자 공장을 과연 얼마나 가 보았을까. 사장단 회의도 자신의 집에서 주재하는 등 웬만 해서는 출근을 하지 않는 이런 족벌세습경영주와는 전혀 다르다. 입으로는 위기 경영이니 하면서 게거품을 물며 겁박이나 할 줄 알지 현장 알기로 개코로 아는 경영주야말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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