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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Bücher'에 해당되는 글 169건

  1. 2011.03.04 『싯타르타』 중
  2. 2011.02.18 멋진 신세계
  3. 2011.02.11 공상과학소설
  4. 2011.02.05 명절의 독서
  5. 2011.01.30 인간의 동물화

『싯타르타』 중

책들 Bücher 2011. 3. 4. 17:4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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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단식은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요. 예컨대 싯타르타가 단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신[싯타르타에게 방생술을 전수할 카말라가 소개시켜 준 부유한 상인 카마스와미]한테서, 아니면 다른 데서라도 오늘 당장 아무 일자리리건 얻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겁니다. 배가 고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싯타르타는 이렇게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으며, 초조해하지도 않고, 곤궁해하지도 않으며, 설령 굶주림에 오래 시달릴지라도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나으리, 단식이란 그런 데에 좋은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 『싯타르타』 박병덕 역(민음사, 2008, 신장판 22쇄), 9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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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책들 Bücher 2011. 2. 18. 13:2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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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전개의 힘이 후반부로 갈수록 약화되는 느낌이 든다. 셰익스피어 전집에 정통한 헉슬리가 야만인 존의 입을 통해 이야기 상황에 맞춰 줄기차게 이 전집을 인용하는 방식은 방식 자체의 단조로움을 더한다. 결혼,가족,죽음을 몰이해하도록 조건반사교육을 시키는 신세계의 계급화된 사회에서 알파,베타,감마,입실론의 개체들은 감정의 전이라는 게 없이 바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데, 그 매개는 자유연애와 소마다.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19세기의  협동주의적이며 유토피아적인 격언("만인은 일인을 위해, 일인은 만인을 위해")이 바로 자유연애의 모토가 되버리고, 죽음은 화장 후 남는 인이라는 화학 요소로 재활용되는 유용성은 있지만 아무런 슬픔없이 그냥 사라지는 것으로 수용된다. 병에서 조작된 복제기술로 계급이 예정된다는 구상 자체는 이 소설의 출판 당시로서는 획기적일 수 있으나, 서유럽 세계 총통에게 소마 대신 자유를 달라는 존의 외침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에 대한 조잡한 변주같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제목을 따왔다 점으로 이 소설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것은 행복을 대량생산하는 기계화 시대에 직면해, 금서로 묶인  고전의 세계로 돌아가고픈 야만인의 절규다. 마치 『박하사탕』의 철로에서 외치는 설경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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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소설

책들 Bücher 2011. 2. 11. 12:2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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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를 읽기 시작했다. 도입부에 나오는 인간 난소 수정체의 대량 복제 분할은 포드식 대량 생산시스템을 비꼬면서 미래로 던진 투사이지만, 2030년대 90억 인구를 바라보는 현시점에서 동일 수정체로 일정 유형의 동일 인간을 대량생산한다는 발상은 억지스럽다. 이와 반대로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히려 『인간 종말 리포트』(2003)에서 인구 억제를 위한 환희이상 알약의 개발과 이에 따른 전지구적 인구 종말을 다뤘다. 말년에  헉슬리가 『아일랜드』(1962)라는 또다른 대작 공상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멋진 신세계』의 도입부 분위기는 마이클 베이의 영화 『아일랜드』에서 나오는 인간배양소의 약품 처리장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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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독서

책들 Bücher 2011. 2. 5. 20:2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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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상과학 소설류를 읽어 보려고 어제까지 마거릿 애트우드의 『인간 종말 리포트』를 읽었다. 저자가 유전자 조작이나 게임 등 팩트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를 한 노고는 보이지만, 조지 오웰의『1984년』정도의 감흥을 기대했다면 큰 착각이다. 작품이라기 보다는 누더기 리포트. 누군가의 소개로 오늘부터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들었는데, 잘 모르겠지만 대단한 포스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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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동물화

책들 Bücher 2011. 1. 30. 11:5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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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와 이동주택을 세워 놓던 장소로 보이는 빈터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서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감탄과 격려의 소리가 들려 온다. 짝짓기 중인 것이다. 크레이커들의 짝짓기는 매우 드문 행사다. 크레이크는 그들의 수에 대해 연구한 뒤 짝짓기가 한 여자당 3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네 남자와 발정기의 한 여자로 구성된 기본 집단이 있을 것이다. 밝은 푸른색으로 물든 엉덩이와 복부를 보고 모든 사람이 여자의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비원숭이에게서 도용한 색소 침착에다 문어에게서 빌린 확장 가능한 발색단을 결합시켜 이루어낸 기술이다. 크레이크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이든 적용 방법을 생각해 봐. 분명 어딘가에 있는 다른 동물이 그것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았을 거야.
  남자들은 오직 푸른 피부 조직과 그것에서 방출되는 페르몬만으로 자극을 받기 때문에 이제는 일방적인 사랑도, 억눌린 성욕도 존재하지 않는다. 욕망과 행위 사이에 어떤 그늘도 존재하지 않는다. 구애는 냄새가 조금씩 풍기기 시작할 때, 연한 하늘색이 비치기 시작할 때 남자들이 여자에게 꽃을 주면서 시작된다. 수컷 펭귄이 둥근 돌을 선물하는 것 혹은 수컷 은붕어가 정액 꾸러미를 선물하는 것처럼 말이지. 크레이크는 말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노래하는 새들처럼 돌발적으로 노래 부르기에 빠져 든다. 남자들의 성기가 여자의 복부와 잘 어울리도록 밝은 푸른색으로 변한다. 발기한 남자들이 똑같이 성기를 이리저리 흔들어 대고 발을 놀리며 그에 맞 ㅣ 춰 노래를 하는, 일종의 푸른 성기 춤을 춘다. 그것은 크레이크가 게의 성적 수신호 동작을 보고 고안한 특징이다. 여자는 자신에게 바쳐진 꽃 중에서 네 송이를 선택한다. 탈락한 후보자의 성적 욕망은 즉각 사라져 버리고 어떤 감정의 찌꺼기도 남지 않는다. 그런 후 여자의 복부의 푸른색이 가장 짙은 색으로 변했을 때 한 여자와 네 남자는 은밀한 장소를 찾아가 일에 착수해, 여자가 임신을 해서 푸른색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다.
  어쨌든 "싫어요"가 "그래요"라는 뜻이라는 말 따위는 사라졌군. 눈사람[지미]은 생각한다. 매춘 행위도, 아동 성 학대도, 가격 협상도, 포주도, 성적 노예도 더 이상 없다. 강간도 없다. 다섯 사람은 몇 시간 동안 법석을 떨 것이다. 한 남자가 성행위를 하는 동안 다른 세 남자는 방어를 하고 서서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순서를 바꾸어 가며 계속된다. 크레이크는 여자들에게 최강의 외음부(특별한 피부, 특별한 근육)을 마련해 주어 여자들이 이 마라톤을 견딜 수 있게 했다.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산으로 물려 줄 재산도 없고 전쟁에 필요한 부자간의 충절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섹스는 더 이상 반대 감정이 병존하는 태도 혹은 노골적인 혐오의 태도로 다뤄지지도 않고,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면서 자살과 살인을 야기하는 비밀스러운 의례도 아니다. 이제 그것은 운동선수들의 실연(實演), 자유로운 놀이와 비슷하다.
  어쩌면 크레이크가 옳았는지도 몰라. 눈사람은 생각한다. 옛날 같은 체제에서 성적 경쟁은 가혹하고 잔인했다. 모든 행복한 연인 뒤에는 낙담한 자, 소외된 자가 있게 마련이었다.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투명한 거품 모양 돔이었다. 두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ㅣ 것은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들어갈 수 없었다. 
  홀로 남겨진 남자가 창가에서 슬픈 탱고 가락에 맞추어 망각 상태에 이를 때까지 술을 마셔 대는 것, 그 정도는 비교적 온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폭력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극단적인 감정은 치명적일 수 있다. 내가 당신을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이도 가져서는 안 돼 등등. 죽음이 들어설 수 있었다."

마거릿 애트우드, 『인간 종말 리포트』1권 Orix and Crake 차은정 역(민음사, 2008, 초판1쇄), 246~24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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