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적 가치 변화의 단면

책들 Bücher 2011. 3. 14. 16:2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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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러가 펜타곤에서 자진 체포된 후] "미국의 작은 마을은 계속해서 커지고 불어나면서 소통과 바람 사이, 삶과 유령 사이의 조화, 광기, 우울증(겸손이 깃든 광기)을 배울 수 있는 엄숙한 자연의 처소들을 지금 모두 잃고 말았다. 조금씩 잃고 말았다. 이제 이런 겸손한 광기는 옛이야기처럼 마을을 떠났다. 마을이 커지면서 세포들은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정부를 위해 일하고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키며 안정을 누렸다. 그래서 옛날 바람을 타고 휩쓸던 광기는 이제 요술쟁이의 코끝에서나 노는 신세가 됐다. 야만인들의 정욕이나 학살당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피의 전쟁 등 이런 악몽은 잠자리에 더 이상 찾아들지 않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게 됐다. 발달하는 산업은 바람에게서, 다락방에서, 지금은 잊힌 원시적인 장소 곳곳에서 그 광기를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 ㅣ 은 열기와 힘의 기계들이 합쳐진 라스베이거스나 경마장, 프로 미식축구, 흑인들의 인종 폭동, 교외에서 벌이는 술잔치 같은 데서 그 광기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그 옛날의 광기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베트남에서 그걸 찾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소도시가 한바탕 힘을 써보자는 곳이 바로 그곳이 됐는지도 모른다."

『밤의 군대들』, 237~238면.

[자칭 보수적 좌파라고 하는 메일러의 비둘기파에 대한 견해] "비둘기파의 대다수는 어느 가능성과도 대면하기를 피한다. 자유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파헤치려 들면 결국 자신들이 주창하는 자유주의의 근본이 파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두드러지게 되면 끝장날 수 있는 정책들을 기꺼이 옹호해야 하고 인정해야 하기 떄문이다. 이건 곧 스스로 매파에게 굴복하는 것과 같다."

상동, 283면.

[전세계 공산화의 치명적 한계]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는 것이 힘의 균형을 얻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해답은 철수하라는 것이다. 두려워할 것 없으니 빨리 손을 떼라. 공산주의가 확장될수록 공산주의 그 자체의 모순은 더욱 더 커질 것이고 세계를 정복하겠다던 생각은 더욱 더  흐느적거릴 것이다. 공산주의의 팽창 그 자체가 스스로 견제한다. 공산주의를 패배시킬 유일한 힘은 바로 공산주의 그 자체다."

상동, 287면.

[미국적 가치의 딜레마] "메일러는 베트남 전쟁을 넘어서 아주 슬픈 결론을 내리게 된다. 미국의 중심이 정신 나간 것 아니냐. 이 나라는 해가 지날수록 깊어만 가는 정신분열증을 잘 다독거리며 견뎌 왔 ㅣ 다. 어쩌면 이런 논쟁은 이미 시효가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기독교에 헌신해 왔고 미국이라는 사단법인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악에 사로잡혀 본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그 압박감으로 영혼과 마음이 갈라지는 듯한 그런 통증. 기독교 정신의 정수는 신의 아들이라는 신비함이다. 그런데 사단법인의 중심은 과학 기술을 숭배하며 신비함을 배척한다. 과학 기술만큼 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과 반대되는 개념도 없으리라.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평범한 미국인들은 매일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더욱 더 정반대의 길인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있다. 예와 아니오, 1과 0. 그러니 점점 머리속이 분열될 수 밖에 없으리라. 이 두 가지 반대 방향으로 인하여 기독교적 영혼의 균열은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명예보다는 사랑을, 욕망보다는 책임을, 권력에 대한 정욕보다는 자선을 강조하고 실천함으로써 맑은 정신을 유지해 왔다. 그 균형을 맞추기는 힘들었으나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비에 대한 사랑과 컴퓨터라는 신비가 전혀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은 억압된 정신분열의 상태를 심화시켰고 결국 터져 버렸다. 베트남 전쟁은 일시적인 치료와 같다. 이 동물적인 폭발을 통해 분열된 정신은 일시적으로 구제를 받을지도 모른다."

상동, 287-2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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