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전장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오스트리아의 브라우나우에서 시작된다. 30 베르스타의 행군으로 막 이곳에 도착한 러시아 보병연대의 사열 에피소드는 군생활을 해본 사람들에게 흐뭇한 추억을 새기게 해줄 장면이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투조프는 브라우나우에서 반 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대기중인 이 보병연대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음을 오스트리아 장군에게 보여줌으로써 고전중인 오스트리아군의 지원을 위해 당장 이 부대를 투입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피폐한 행장 그대로의 사열을 의도했지만, 전령의 명령서에는 이런 의도가 드러나 있지 않았다. 행군에 지친 장병을 밤새 다그쳐 행색과 무기를 손질하게 함으로써 충분한 인사를 하려했던 연대장은 뒤늦게 사령관의 의도를 전달받고, 사열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다급한 시간에 다시 원래의 비참한 상태로 군대를 되돌려 놓아야 했다. 우스꽝스러운 이런 군대의 상황은 이후 프랑스군에 쫓겨 퇴각을 거듭해야 하는 러시아군의 사태를 예시한다. 톨스토이는 퇴각을 하더라도 싸우면서 퇴로를 확보하는 러시아군의 용맹성을 드러내지만 협상과 외교적 실패가 불러오는 암담함이 전투의 패배 보다 더욱 참담함을 보여준다(프로이센의 중립). 불리한 형세에서 전투 보다는 협상에 응했던 오스트리아 장군들(마크 장군과 아우어슈페르크 공작) 덕분에 이미 빈을 버리고 브륀으로 도망쳤던 궁정은 다시 북동쪽 보헤미아의 올뮈츠로 이동해야 했고, 러시아군 역시 도나우강과 그 지류를 사이에 두고 프랑스군과 대치한 채 북동쪽으로 퇴각을 이어간다. 협상이나 강화는 임진왜란 때 조선침공의 1군 사령관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처럼 전세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항복일 뿐이었다. 단, 쿠투조프는 바그라티온 공작이 결사대로 전위에 선 쇠그라벤 전투에서 프랑스의 이런 가스코뉴식 우회전략을 역이용하여 성공하기도 했다.
외교는 전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교계에서도 관건이다. 베주호프 백작의 막중한 유산을 상속받은 피예르는 단숨에 사교계의 최고 인기 인물로 급부상하며, 본능적으로 처세에 기민하게 선제대응하는 바실리 공작은 자신의 미모의 딸 옐렌을 피예르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을 치밀하고 단호하게 실행시킨다. 전쟁이 전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평화가 사교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