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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가 세상의 끝인 토미로 추방되어온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에 대해 코타에게 하는 말.

"돌은 존재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최후의 방법...ㅣ...절벽 아래의 음지나 동굴의 진흙 바닥에 평온하게 놓인 평범한 자갈은 어떤 제국과 정복자들보다 더 오래 존속할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제국의 궁전들은 황폐화되고, 왕조는 썩어 부패할 것이며, 황실의 영롱한 모자이크 바닥 장식은 집 높이만큼 쌓인 흙더미에 파묻힐 것이다. 그 흙더미에서는 엉겅퀴나 귀리마저 자라지 않을 것이다. 벌레와 구더 ㅣ 기가 득식거리는, 구역잘나고 악취 나는 유기체의 부패 과정에 비하면 화석의 운명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또 인간의 품위에 어울리는 일인가. 이런 역겨움에 비하면 화석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구원이며, 언덕과 협곡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낙원에 이르는 과정이다. 유성(流星)과 같은 인생의 영화는 무에 불과하다. 돌의 위엄과 지속성만이 최고의 것이다......하고 오비디우스가 말했다고 했다."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최후의 세계』Die Letzte Welt(1988) 장희권 역(열린책들, 2006, 보급판 1쇄), 115-1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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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 생협의 공급사업부에서 근무하는데, 현장직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주관부서라서 현장 공급지원을 나갈 일이 있다. 지난 금요일엔 용산구의 문배,신계,갈월,동자, 후암동을 나갔다. 용산구의 이 지역 공급은 처음이었고, 지역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어서 목요일 밤엔 긴장되기도 했다. 금요일 새벽 3시에 잠이 깰 정도였으니. 개인차를 몰고 수색 근처의 배송센터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며 지도를 펼치고 37집이 나온 이 지역의 각 집 지번을 지도를 보며 찍는데 30분이 넘게 소요됐다.  오전 상차를 마치고 9시 넘어 출발하면서 그려진 지도 2장을 챙기고 차에 네비까지 있었지만, 내가 조작을 못해서 그런지 마음은 바쁜데 네비의 탐색이 안됐다. 어차피 네비는 큰 도움이 안되는데, 첫 집 찾아가는데는 그런대로 쓸만하지만 아무리 조작해도 탐색이 안됐다. 가양대교 북단에서 한남대교 방면 강변북로를 탔는데 차는 어찌나 밀리는지...마포대교 북단에서 공덕동으로 빠져 삼각지로 넘어가는 백범로에서 첫 집을 찾았다. 1~4번째 집은 그런대로 수월하게 찾아 갔는데, 주의설명을 들은 5번째 오피스에서 엄청 헤맸다. 공급장에서 나온 설명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처음 나가는 사람이 아주 골탕먹기 좋은 집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현장 주변이었는데,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듯한 일부 구조물 주변에 불쑥 불쑥 고층 아파트가 솟아 있는 구역이다. 이곳을 끝내고 도착한, 서울역과 남산 서남단의 사이에 있는 산동네 갈월동과 동자동에서도 헤맸다. 그나마 새로 시행준비중인 길이름이 도움이 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이 지역 담당자가 코스를 일부러 헤매도록 짠 것처럼 빙긍빙글 코스를 돌아야 했다. 동자동의 한 공부방은 분명 그 지번으로 보이는 수녀원까지 들어가서 이곳에 공부방이 있냐고 물어본 뒤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녀님은 의아하게 나를 쳐다 보다가 밖의 탑차와 내려 공부방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자 웃으며 알려 주었다. 아주 찾기 애매한 지점에 있는데, 공급장 설명엔 차를 상당히 경사가 심한 비탈길 위의 아파트에 대라고 나와 있다. 아무래도 고생시키려는 안내같다. 동자동을 끝내고 간 후암동은 그야말로 양반동네. 고급 주택촌이 은근히 있는 이 동네에 한국은행 독신직원 숙소가 있는데, 복잡한 용산 속의 호텔같았다. 역시 산 밑에 있는 동네는 살기 좋은 것 같다. 중간에 후배의 지원을 받고, 점심을 쫄쫄 굶으며 마지막 29번 째 집을 끝내자 오후 3시 반. 정말 보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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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2년 부터 사회당의 당원이지만 당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없는 유령당원이다. 이 논란에 한 마디 하고 싶지만, 이런 나의 자격미달로 이 블로그에나마 짧은 인상을 남긴다.  이명박이라는 초대형 날림 정권 말기의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한국사회 권력지형의 빅 이벤트를 앞두고 진보진영에서도 제도 권력을 향한 이합집산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민노당은 선뜻, 유시민을 내세운 열린우리당의 잔류파와 합세함으로써 대중정치를 향한 노정을 굳혔으며, 심상정과 노회찬은 진보신당을 박차고 자랑차게 이 대열에 몸을 실었다. 심노라는 얼굴마담들이 빠져나간 진보신당은 지난 대선 이후 민노당에서 탈퇴한 명분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자칫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퇴락할 수 있는 이 황당한 출혈을 겪은 당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긴급 수혈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 1차 대상이 사회당이었다. 창당 20년이 넘은 사회당에서는 지난 2008년 총선 시점에서도 진보신당과의 통합 문제로 홍역을 치룬 경험이 있으며, 현재 진보신당에는 사회당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민노당의 20년간의 공력이 무력하지만은 않은 한국 정치의 양강구도에서 보면, 이들의 행태는 지질히도 없는 것들끼리 치고 받는 옹졸한 싸움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기성 대중정치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물과 힘의 우열로 돌아가는 정세가 여기에서도 관찰된다. 사실상 사회당은 진보신당보다 소수 정당이다. 진보신당과 달리 그 흔한 기초의원 조차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당의 당권파는 진보신당에 기울어져 있다. 더 힘이 있는 진보신당으로서는 사회당이라는, 자신과 성향이 비슷하지만서도 그래서 까칠한 정파이기도 하지만, 위기와 기회가 맞물린 근래의 상황에서 사회당이 자신의 우군이 되어 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소수당의 당권파로서는 계속 써클주의에 매몰되어 역사에서 점점 더 무력하게 사라지기 보다는 '나' 아닌 것(für sich)의 힘을 빌려 현실정치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싶은 정치적 욕구는 정당 정치를 하는 이들로서는 정상스러운 욕구이다. 한쪽은 저쪽을 흡수합당의 대상으로 보고, 저쪽의 당권파는 자신이 흡수합당의 대상인 것은 알지만서도, 당원들에게는 쪽팔리는 '흡수'라는 말은 빼고 합당을 한 뒤, 모양새를 갖춰 달라고 하면서 내세운 것이 수임기구를 통합 2차 통합과정이다. 여기에 사회당의 당원 게시판은 근래 드물게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외로운 단독자의 길을 더 외롭게 계속 걸어갈 것이냐 아니면 이질적인 힘들과 결합해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실험에 들어설 것이냐의 중대기로에 선 것이다. 나도 새로운 기회로 이 통합의 과정을 지켜 봤지만, 그래서 새로운 만남도 기대되기도 했지만, 이 논란에서 드러난 진상은 아무래도 정치공학적인 수순같아서 씁쓸하다. 이 사회당의 이름으로 자신을 던지며 활동한 이들에겐 굴욕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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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문학 Literatur 2012. 2. 14. 08:5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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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이 소설은 실존인물을 모델화하면서 이 실존인물과 경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소설 종결 후 작가의 말에서, 애시당초 이청준은 주인공의 자전적 경험이 가미된 이 소설에서 주인공 조원장에게 부당한 간섭을 행사함으로써 그 실존 인물 이후의 삶에 분명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은 작가가 배반과 탈출의 섬 소록도를  '문둥이'의 애환이 깃든 섬이 아니라 하나의 우화로 그림으로써 힘의 질서로 운위되는 세계에 대한 비판 위에서 작가의 도덕주의적 정치관을 개입시려는 데서 드러나는데, 그것은 자유와 사랑에 바탕한 힘의 행사로 나타나며, 그 사랑에는 공동적 운명을 감수할 믿음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배자는 사랑과 권위로, 피지배자는 자유로 상호 관계맺음으로써, 이 둘 사이의 애매한 지배/피지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다소 동양 고전의 유토피아적 지배절서를 지향하는 듯한 작가의 해결책은 조원장으로 대표되는 선의의 대의에 대한 이상욱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에 비하면 너무도 무력하고 허망해 보이기도 하다. 작가의 예리한 비판의식은 결국 종교, 특히 기독교적 주제인 화해에 경도되어 무뎌지고 순화된다. 단지 제 3부에서 이정태 기자와 조원장의 대화로 이 소설에서 줄기차게 전개된 갈등의 양태들을 해결해 버리려는 것은 안이한 뒷처리로도 보인다. 시종일관 무겁게 전개되던 소설이 제 3부에서 구원의 해결책을 만났다고 할까? 차라리 제 3부는 없애고, 이상욱의 편지 두 통만 추가하는 것으로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했다면, 이 소설은 내일에 대한 선택을 독자에게 맡김으로써 이청준이 말한 '당신들의 천국'을 '독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탁월한 글쟁이임에는 틀림없겠다.  

등장인물 : 조백헌 대령, 황장로, 이상욱 보건과장, 김정일 의료부장, 이정태, 윤해원, 서미연, 주원장, 사토, 한민 외  

텍스트 : 이청준,『당신들의 천국』(문학과 지성사, 2011, 5판 15쇄; 초판은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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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춘천행(월, 봄날 같은 날씨)

여행 Reise 2012. 2. 13. 16:52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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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매서운 한파가 돌던 지난 토요일 오후, 한 동문과 춘천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경춘발 급행 전철을 타고 가본 것이다. 아무래도 예전의 단선 기차에 비해서 빠르긴 했지만, 노선의 상당 부분이  시커먼 터널을 관통해야 하는 길은 역시 멀다. 춘천역에서 내려 양키군대가 빠져 나간 캠프 페이지의 허리를 잘라 널찍하게 새로 난 도로를 걸으며 요선동과 강원도청, 한림대를 거쳐 후평동 골목길의 유서 깊은 닭갈비집에 갔다. 중간에 강원도청 앞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아는 단체에서 생명버스를 타고 합세한 시위대였다. 홍천 두미리를 비롯해 강원권에서 추진중인 골프장 건립을 6년째 반대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노숙시위 100일 째인데, 최문순 도지사가 당선 전에는 관심을 보이더니 요즘은 시큰둥한가 보다. 삼척의 원전 유치도 지역발전 사업으로 보는 인사에게 골프장 쯤은 놀이터로 보이는 것일까? 시위대에 아는 얼굴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칼끝같은 추위와 일행 때문에 그냥 지나쳐 갔다. 닭갈비 집의 주인은 경춘선 복선화로 올라간 아파트 값 때문에 오히려 지역의 서민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춘천이 수도권의 교통망에 포섭되면서 집값도 수도권에 포위되는 형국이다. 술자리를 옮겨 맥주집에서 한 잔 더 한 후 막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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