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김기덕의 <시간>을 본 이후로 나는 더이상 그의 영화적 변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봤다. 복수의식의 구조화란 틀에서. 묘하게도 그 이후로 그는 어수선한 혼란을 겪으며 퇴락의 상태에 빠져 들었지만 다시 일어 섰고, 대작이라고는 할 수는 없으나 그의 영화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 영화 역시 복수의식의 구조화란 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분명한 사회적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점에서 그는 원숙한 변신을 했다. 죽은 자식이 담긴 냉장고가 있는 철물 공작소의 철문 자물통을 툭툭차며 엄마(조민수)가 대부업체 사장을 찾아가 아들의 복수를 하는 장면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 사회적 응징의지를 내포하며, 강도에게 하는 복수는 너무도 비정하면서도 아름답고 서글픈 것이다. 단지 복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김기덕 감독이 구원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강도의 자취방 건물 건너편에 서너 차례 보여지는 단기 목사 양성소인 합동신학교 건물은 현실을 숙주로 삼으면서도 차디찬 현실을 외면한 채 구원을 사업화시킬 뿐임을 보여 주지만 현실에서 버려진 사람들에게서 그는 구원의 가능성을 물은 것이다. 여전히 그의 장난기가 녹슬지 않은 마지막 장면은 그의 상상력이 이제 숭고미의 색채로 채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자본의 힘에 의탁하지 않고 외롭더라도 계속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는 그는 가장 흔해 빠진 산업의 도구로 전락한 영화를 아직까지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예술가다.
*<피에타> 조기 종료에 관해 :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5530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