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계절이다.
스리랑카에서 촬영된 이 전쟁영화는 역설적으로 여름휴가의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노역에 동원된 영국군 포로들은 마치 휴양지에서 놀듯이 엉성하게 엮어놓은 나무교각 건설 현장에서 다이빙까지 하며 즐긴다. 열강에 진입한 시기만 다를 뿐, 제국주의적 침략국가의 본성상 다를게 없는 영국과 일본 중에서 일본을 두둔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영화에서는 어떤 인종주의적 시각도 드러난다. 장교의 노역을 거부한 영국군 대령과 일본군 사령관의 대립은 두 인종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비춰지며, 풀어진 병사들의 군기를 확립하고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영국군 대령은 다리 건축에 총력으로 매진한다. 원주민들은 도주한 미군 포로를 깍듯히 모셔 보내줄 뿐만 아니라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는데 기꺼이 동원된다. 어렸을 때는 재밌게 봤을지 모르겠지만, 뭔가 불편하다. 기일내에 다리가 다 완성되자 성취의 결과물에 심취하는 것은 영국군 대령이며 낙담하는 것은 일본군 사령관이다. 일본군 사령관은 상부의 명령만 따랐을 뿐이다.
물론 일본이 제국의 열강으로부터(특히 독일) 서구 문명을 사사받았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서구문명의 우월성은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우월성 주장에는 폭력적 침략과 침탈이 동반된다. 또한 말 자체가 침략적이기도 하다. 용산과 잠실에 짓는다는 초고층 건물은 한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낼까?
뭔가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만드는 일 자체에 매몰됨으로써 다른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쉽게 망각된다. 심지어 대상물의 붕괴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