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마포의 버스정류장에서 이 영화의 광고물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작품이란 걸 느끼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바램이 들었는데, 엇갈린 비평을 무서운 흥행속도가 잠재워 버리듯이, 오랜만에 영화라는 매체에 압도당했다. 그것은 세계(좁게는 정치적 세계)의 축소판이자 노아의 방주의 변주라고 할 수 있는 '기차간 계급 충돌'이라는 소재의 참신성에서 비롯된다. 스토리상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길리엄의 정체이며 남궁민수의 존재감은 오히려 요나 보다 떨어진다. 길리엄은 폐쇄 체계의 유지를 위해 커티스를 '사주'하지만 제일 앞칸 까지 갈 필요가 있냐고 그를 말린다. 그러나 커티스의 전복적인 의지는 그야말로 열차를 전복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감독이 누누히 강조하듯이 원작의 위대성을 스크린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기술로도 놀랍다. 개체수를 조절하며 도마에 오르는 스시처럼 그 수가 조절당하는 인류라는 주제는 새로울게 없지만 이런 주제의식에 천만관객이 몰입한다는 것은 권좌의 정파에게 위협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열차에서 분출되는 계급의식은 열차의 추동력이자 전복의 동인이므로. 감독은 연쇄 살인마와 강변 괴물에 이어 이젠 계급의식으로 사회를 동요시키는 고전적인 시도를 보여준 것이며, 계급의식의 영화적 상품화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나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처럼 이젠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체계와 환경의 이분법에 따라 이 영화를 본다면, 엄밀히 말해 설국열차가 폐쇄 체계라고 할 수는 없다. 엔진칸으로 유입되는 공기와 눈발로 물을 만들거나 산악 단층에서 내려 쌓인 빙하가 철로를 가로 막는 등 체계는 환경의 도움 내지 간섭을 받는다. 따라서 열차는 부분적으로는 개방체계로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잔혹한 점검도 이루어 지고 있다. 그러나 환경과의 제한된 접촉 보다는 체계 단독-주도적으로 자기유지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열차는 개방 체계 보다는 폐쇄 체계에 가깝다. 또한 계급간 충돌도 체계 내적이다. 체계 밖으로 나가려는 것, 곧 열차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는 규칙위반이다. 왜냐하면 체계가 스스로를 안정화시키는 조절을 계급간 충돌을 비롯한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해 하는 것은 체계 밖은 아직은 죽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손쉽게 체계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결말을 짓는 점이다.
*영화중 주요 인물 소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 열차 꼬리칸 반란의 행동파 지도자
길리엄(존 허트) : 열차 꼬리칸 반란의 정신적 지도자
남궁민수(송강호): 커티스 일행이 앞칸까지 전진할 수 있도록, 100칸의 열차 문을 크롬(일종의 인공마
약)과의 교환 조건으로 열어주는 설국열차의 보안 설계자
요나(고아성) : 남궁민수의 딸로 닫힌 열차문 밖을 볼 수 있는 투시력을 지님
윌포드(에드 헤리스) : 설국열차의 창시자이자 열차내 권력서열의 최상점
메이슨(틸다 스윈튼) : 설국열차의 총리로 윌포드의 지시를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