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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Literatur'에 해당되는 글 101건
- 2012.03.02 주변부 문학의 위대성
- 2012.02.14 당신들의 천국
- 2012.02.07 파업의 산고(화, 다시 추워짐)
- 2012.01.26 김원일의 『전갈』: 불우한 현대사에 뒤덮힌 가족사[목, 맑고 쌀쌀]
- 2012.01.10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잃어버린 본원(화, 맑고 다소 쌀쌀)
등장인물 : 조백헌 대령, 황장로, 이상욱 보건과장, 김정일 의료부장, 이정태, 윤해원, 서미연, 주원장, 사토, 한민 외
텍스트 : 이청준,『당신들의 천국』(문학과 지성사, 2011, 5판 15쇄; 초판은 1976년).
공산당에 입당한지 얼마 안된 짐은 골수 당원이자 파업 전문가인 맥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사과농장에 잠입한다. 들어가자마자 이들은 농장의 일용 노무자들을 이끄는 지도자 런든을 찾아 가는데, 런든의 막사에서는 런든의 며느리가 해산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극심한 산고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맥은 이것이 런든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애를 받아본 경험도 없으면서도 짐과 함께 달려들어 결국 성공한다. 파업의 전야에 일어난 이 일은 파업에 대한 상징이다. 파업에 돌입한 농장의 노동자들은 출혈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바리케이트를 쳐부수고 파업 파괴 노동자를 처단하려 진격하기도 하지만, 산고의 아픔 처럼 파업이 하루 이틀 연장될수록 고통과 불편이 이들을 짓누른다. 파업은 노사 양측에서 협상의 여지가 없을 때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생존조건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 사용자를 향한 무기이면서 자신에게도 겨누어지는 무기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앤더슨의 소농장에 건설된 파업 노동자들의 임시 주거촌에서 위생과 의료를 담당한 의사 닥 버튼은 파업의 소용돌이를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그러한 비관적 전망을 던진다. 간이 식당차를 운영하는 앨을 통해 파업 기간동안 노동자들이 머물 주거촌을 확보하고, 딕을 통해서는 식량을, 조이를 통해서는 파업파괴 노동자의 회유를, 닥을 통해서는 위생과 의료를 확보하는 식으로 성공적인 파업을 위한 준비를 마친 맥은 초반에는 파업의 승리를 가늠하고, 온갖 기회(조이의 장례식, 앨의 식당차 전소, 연단에서 파업 지도자 런든을 모함하다 런든에 의해 쥐어 터진 헌터)를 활용해 파업을 성공시키려 하지만 보안관과 보안관 보조 대원들 및 농장주의 자경대원들로 잘 조직된 파업 분쇄의 벽이 점차로 이들을 궁지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회를 위해 자신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던 짐을 맥은 엄숙히 이용한다.
아들이 자경대원에게 린치를 당하고 그의 식당차가 전소되었으며, 농장 헛간과 포인터까지 잃어버린 앤더슨의 몰락에 대해 짐은 재산을 잃어버린 게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말하며, 가진 게 없는 무산자인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다고 한다. 파업은 유산자에게는 재산의 낭비이지만 무산자에게는 희생을 담보한 투쟁인 것이다. 특히나 파업의 주모자에게는 더욱 더.
[에필로그 : 맥이 짐의 얼굴없는 몸을 가리키며]
"이 친구는 자신을 위해 원한 게 아무것도 없었소. 동무들! 그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단 말이오."
존 스타인벡,『의심스러운 싸움』In Dubious Battle(1936) 윤희기 역(2006, 보급판1쇄), 327면.
*이 소설은 이 소설의 출간 2년 후 나온 『분노의 포도』와 비교해 보면, 파업의 의미를 거시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국지적인 파업 현장의 이야기를 파업 주동자의 관점에서 전개시킨다. 반면 『분노의 포도』는 두 가지 서술형식을 병치시키면서 오키들의 이주 원인과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적 세련미와 미학적 완성도에서는 단연『분노의 포도』가 앞서지만 『의심스러운 싸움』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을 연상시킬 정도로 생생한 다큐 문학의 느낌도 들게 한다.
한국전쟁에 관한 소설을 많이 남긴 작가답게 이 소설은 역시 한국전쟁, 그러니까 이 전쟁의 원인과 결과로 지목된 한반도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특정인, 그러니까 이 소설의 나래이터이자 주인공인 강재필의 이야기를 작가가 대필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의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강재필이 실제 인물이 아니더라도, 소설의 창작은 얼마든지 사실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로 가공할 수 있는 것이며, 작가는 이런 점에서 탁월한 이야기 솜씨를 보여준다.
전쟁이 일어나면 성인 남자들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전선으로 몰려 가고 부녀자와 아이들, 노약층은 고향에 남거나 피난을 간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원심분리기가 가족을 갈갈히 찢어 놓을 뿐만 아니라 삶을 위한 굴육감을 안겨준다. 종전 후에는 살아가기 위한 생활 전선이 세대를 아울러 걸쳐진다. 생체실험부대의 끔찍한 고문을 운좋게 피하고 살기 위해 부역을 했다가 목숨을 건사한 조부에 이어, 아비는 산업화의 밑바닥 일꾼으로 나섰다가 장애를 입고, 자신이 받은 장애에 대한 보상심리와 범죄적 욕망이 결합해 또 다른 가족을 이룬다. 여기서 자라난 재필은 건강히 성장할 수 없었으며, 조울증을 평생 겪게 된다. 재필은 두번째 수감 생활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조울증의 뿌리를 캐기로 결심한다. 이 뿌리에 바로 한반도민의 보편적 경험이라고 해야할 시대의 격동과 고통이 펼쳐져 있다. 일제강점과 반쪼가리 해방, 좌우대립,전쟁, 30년 이상 지속된 독재권력, 그리고 이명박. 숨가뿐 이 현대사의 고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라디오 광고처럼 기적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다소 특이한 점은, 현대사의 굴곡에 뒤얽힌 가족사라는 점에서 볼 때, 조폭과 연루된 강재필 주변의 신상 이야기는 만만치 않은 이 소설의 주요 서사를 이끌어가는 예인선 역할을 할 뿐, 이 소설의 주도적 흐름과는 무관한 이야기로 비춰지는데, 결말 부분 나회장과의 면담에서 이 두 사람의 엇갈린 가족사가 드러나면서 소설은 유기적 구조를 갖추게 된다.
등장인물 : 강재필, 나상길 회장, 안나, 명희 누나, 영배, 최주임, 허군, 김부장 외 다수
텍스트 : 김원일, 『전갈』(실천문학사, 2007, 초판 1쇄).
<곡두 운동회> : 좌우의 광기어린 대립을 우화화 한 작품. 이런 광기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에서 소설의 제목처럼 소피에게 두 남매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명령한 아우슈비치의 미치광이 장교의 광란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새벽> : 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의 폭압에 대한 또 하나의 우화. 최인훈의 『광장』에서 이명준의 공간을 마음대로 침범하던 낯선 자들의 무례한 횡포가 위층에서 일어난다.
<아버지의 땅> : 아버지가 전쟁중 월북한 54년 생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짙은 작품이다. 금강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태백산맥은 한국전쟁의 허리 봉합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대남에 있던 공산 잔류의 월북을 위한 주요한 루트였다. 강원도 산간에 있는 한 마을은 이 산맥의 줄기가 급경사를 이루는 낭떠러지로 험난한 지형을 이루는데, 이런 지형탓에 마을주민은 빨치산과 국군 양 진영으로부터 길지기로 동원된다. 기동훈련을 하던 두 병사가 참호를 파다가 발견한 피피선에 묶인 유골은 월북을 하던 빨치산인지 이 동네의 주민인지 알 수 없다. 마을 어른의 북어와 소주로 제를 받은 이 유골은 작가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 유골은 결국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사평역> : 단편영화로 만든다면 매우 아름답게 연출할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각색해 장편으로도 충분히 연장할 소재를 갖추고 있다. 톱밥 난로의 온기에 모여 앉아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2시간이나 연착되는 완행열차를 기다리면서 삶의 애환을 찢어진 북어 쪼가리를 나누며 털어 놓는다.
<뒤안에는 바람 소리> : 인민군 점령 시기 빨갱이 앞잡이로 고향 마을을 휩쓸던 마을 친구들은 상황이 역전되자 산으로 피신하고, 마을 후배 을석을 통해 식량을 지원 받으며 탈출을 시도하지만 을석의 어미는 이미 을석이 밤마다 어디에 다녀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이 탈출하기 전날 밤, 어미가 잠들어 있는 을석을 놔두고 지서에 다녀왔을 때, 사실 을석은 자고 있지 않았다. 흰 옷을 입고 광풍으로 몰아치는 뒤안의 바람은 출애굽을 앞둔 유대민족의 집에 불어 닥치는 죽음의 광풍처럼 피를 갈구 한다. 결국 문앞에 피를 묻혀 놓아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듯이, 어미는 서로 간 것이다.
<어둠> : 임신중 교통사고로 소아마비 아이를 치여 숨지게 한 부부의 이야기. 여인은 속죄를 하듯 사고장소의 공원으로 나가 무너진 삶을 한탄하는 낯선 사내에게 아이를 갈망한다.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에서 미친 여자가 분만한 아이와 같이.
<잃어버린 집> : 건장한 남편과 어여쁜 아내, 그리고 딸. 이렇게 세 명의 핵가족이 임철우의 이 단편집에서 전적으로 나오는 가족 형태이다.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마을은 물론 이 가족에게도 불운이 닥친다. 해갈이를 하던 집의 감나무는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아이가 집을 떠난 이후로 매해 진홍빛 감을 깊어가는 가을에 주렁주렁 늘어 놓으며 익은 감을 낙하시킨다. 삶의 아픔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는가.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 : 무등산으로 도주한 좌빨 무리에게 소개된 산자락의 한 초가에서 불빛이 보인다. 소개령을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미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러 온 것인데, 이 어미의 뒤를 쫏아 미친 여자와 군대가 따라올 줄은 생각도 못하고 어미는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무등산으로 도주한 아들이 돌아온 줄만 안다. 호롱불빛이 세어 나오는 집을 보고 마치 불나방처럼 달려든 아들은 또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는 집 앞에서 쓰러지고 만다.
<개도둑> : 불운한 가족사의 애환을 품에 안고 큰 아버지 댁에서 자란 주인공은 역사에 근무하다가 아버지의 묘지가 장마로 범란한 강발에 휩쓸려 가버렸다는 전갈을 받는다.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해 못견뎌하던 어머니는 강원도 탄광 어느 대포집으로 떠나 버렸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주인공에게 이 비극의 운명은 전쟁의 참화와 다르지 않다. 불이 일어나는 개의 눈빛에서 광기어린 아버지의 눈빛을 읽은 주인공은 개를 안고 뛴다. 강에 흩어져 흘러가 버리는 아버지의 잔골을 수습하는 것이다.
<그물> : 석유파동에 따른 경제한파로 무역회사에서 퇴출을 당한 미스터 김은 25층의 빌딩에서 벗어나며 마치 그물에서 자신이 빠져 나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주인에겐 고분고분하면서도, 과자까지 상납하며 저자세로 나오는 세든 사람에겐 사납게 짖어대기만 하는 개 한 마리도 어쩌지 못하는 소시민의 운명을 발견한다.
<수박촌 사람들> : 신흥 부유 주택단지인 행복동에 사는 남자들은 씨없는 수박이란 소문의 진상에는, 마을 통과하는 시내버스가 동네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근거로 항거를 나온 이 동네 아줌마들의 힘이 있었다.
출판이력 : 1984년 초판(문학과 지성사), 1994 15쇄, 1996 재판, 2007 13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