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문학 Literatur'에 해당되는 글 101건

  1. 2011.06.28 이야기의 힘
  2. 2011.06.21 해양소설
  3. 2011.06.18 위대한 유산 : 세일즈맨의 죽음 2
  4. 2011.06.16 한류 열병 2
  5. 2011.06.13 고공의 질서

이야기의 힘

문학 Literatur 2011. 6. 28. 18:2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이 책을 보면서 자꾸만 『지옥의 묵시록』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강 깊숙히 밀림으로 들어 갈수록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들과 까면 깔수록 계속 핵심이 나오는 양파처럼. 화자가 화자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말로는 아주 드물게만 작가의 서술 대상이 된다. 어쩌면 우리의 오랜 조상들은 말로의 이야기 방식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할 수 있는 감성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말로가 스타인과 짐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 짐을 원시인이 지배하는 밀림의 벽지 파투산의 교역소 서기로 보내고 난 후]

"아직도 최종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영 내려지지 않을 거야. 충분한 발언이야말로 우리가 일생 동안 말을 더듬으며 노리는 유일한 지속적 의도임이 분명하지만, 사람의 일생이란 그런 발언을 하기에 너무 짧지 않은가? 만약에 최종 판단이 내려질 수만 있다면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판단에 대한 기대 ㅣ 를 이미 포기해 버렸어. 우리의 사랑, 욕구, 믿음, 회한, 굴종, 반항 등에 대해 우리가 최종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영영 없을 거야. 하늘과 땅을 진동하게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적어도, 하늘과 땅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그걸 진동케 해서야 안되지. 짐에 대해서 내가 내릴 최종 판단은 몇 마디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그가 위대함을 성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할 때, 아니 오히려 그걸 들을 때, 그 위대함은 왜소해지고 말걸. 솔직히 말해서, 내가 불신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고 자네들의 마음이지. 자네들이 육신을 살찌우느라 그만 상상력을 굶주리게 했다는 두려움만 없다면 나는 달변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거야."

조셉 콘래드, 『로드 짐』2 이상옥 역(민음사, 2007, 1판3쇄), 17-18.

[짐이 파투산으로 떠나기 전, 말로와의 대화 중]
""기억을 하는 쪽은 내가 아니요 이 세상도 아니라네." 내가 소리를 질렀어. "기억은 자네가 하고 있는 거야. 자네가." 그는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열띤 어조로 말했어. "모든 것을, 모든 사람, 모든 사람을 잊어야죠....""

상동, 34.

[짐을 데리고 파투산 입구까지 데려다 줄 쌍돛대 범선의 선장이 하는 말]
"짐이 잠시 선실로 내려간 사이에 내 말에 대합하면서 그는 "그럼요. 파투산이지요."라고 말했어. 그는 짐을 파투산 강의 하구까지만 데리고 갈 뿐 강을 "상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하더군. 그의 유창한 영어는 마치 광인이 편찬한 사전에서나 나올 만한 말로 되어 있었어."

상동, 37. 
반응형

해양소설

문학 Literatur 2011. 6. 21. 16:53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콘래드의 소설은 『어둠의 핵심』만 읽어 봤는데, 서술형식의 특이성 외에 별도로 짙게 남은 인상은 없었다. 이 소설도 주로 말로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서술 방식은 동일하지만, 파트나 호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해 직접 서술하지 않고 주변으로 빙빙 이야기를 돌면서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긴장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이런 소설에 관해 미리 사전 정보를 읽는 것은 완벽한 스포일러일 것이다.    

[말로의 이야기]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범죄보다 더한 나약함을 저지르다가 발각된 사람을 지켜보는 일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거든. 가장 평범한 형태의 강건함만 있어도 우리가 법률적 의미의 죄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하지만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나약함으로부터는 안전할 수가 없어...반생이 넘도록 우리에게 숨겨져 있어서 더러는 그것을 감시하기도 하고 못 보기도 하고, 또 더러는 기도로써 그것을 막으려 하고, 사내답게 멸시해 버리고, 또는 억압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런 나약함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일세...나는 거기 서 있던 그 젊은이[로드 짐]를 지켜보고 있었지. 그의 외모가 내 마음에 들었던 거야. 그런 외모를 난 잘 안다고. 그는 출신이 좋은 사람이거든. 그는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라할 수 있어. 거기서 그는 자기 부류 사람들의 태생을 대표하고 있어. 결코 영리하거나 재미있지는 않지만 정직한 믿음과 본능적인 용기에 존재의 근거를 두고 있던 선 ㅣ 남선녀를 대표하고 있었지. 나는 군대의 용기라든지 시민적 용기라든지 또는 그 어떤 특별한 종류의 용기를 말하려는 건 아니야.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저 유혹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타고난 능력으로서 이지적이지는 못하되 허식이 없는 마음의 태세이기도 해."   

조셉 콘래드,『로드 짐』1 이상옥 역(민음사, 2007, 1판 3쇄), 71-72.

[짐이 파트나 호를 빠져나오는 시점에 관한 말로의 이야기]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이상한 소음에 대해 분별력 있는 주의를 기울일 정도로 유식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철선이며 하얀 얼굴의 사내들이며 그 밖의 모든 광경과 소리 같은 배 위의 온갖 것들이 무식하고 경건한 다수의 승객들에게는 똑같이 신기하기만 했고 또 영원히 불가사의할 뿐만 아니라 믿음직해 보이기도 했겠지. 그에게는 그런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것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했으니까."

상동, 133.

[파트나 호를 공해에서 발견해 아덴항으로 예인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프랑스 군함 장교의 이야기]
"예인하는 동안 우리는 사뭇 두 명의 조타원에게 도끼를 들려 밧줄 곁에 서 있게 했답니다. 만약에 기선이 침몰할 경우에는 우리 군함에서 예인 밧줄을 잘라버리자는 것이었지요...ㅣ 장교 한 사람이 그 배에 남아서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건 올바른 판단이었습니 ㅣ 다...우리 배는 구명정들을 내릴 준비를 해두었고, 나 역시 그 배에서는 여러 조치를 취한 거예요."

상동, 214-216. 

[짐을 다시 만나 추천서를 써주기 위해 그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온 말로의 이야기]
"그는 너무 섬세하고 섬세해서 아주 불행했던 거야. 조금만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그런 마음고생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한숨짓거나 불평하거나 아니면 너털웃음을 웃으며 자신과 화해했을 테니까. 좀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아무 상처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무지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내게는 전혀 흥미가 없었을 테지."

상동, 268.

짐은 파트나 호가 난파의 위기에 몰려 일촉측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서 멈칫거리다가 이미 구명정을 내려 승객들을 팽개친 채 자신들만 빠져나가려던 선장과 항해사 등 간부 3명의 긴박한 호출로 기선에서 뛰어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짐을 조지라는 기관사로 오인한 것이었다. 결국 이들 세 명의 뱃사람과 함께 짐은 선원증을 박탈당하지만 이들과 달리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말로의 사무실에서 계속되는 말로의 이야기]
" 나로 하여금 잠자코 있게 한 것은 그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어. 왜냐하면 내가 만약 그를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놓아 준다면 영영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불가해한 힘으로 날 짓누루고 있었기 때문이야."

상동, 272.

[짐이 말로의 추천장으로 두번째로 일한 항구의 선구상에서 또다시 일을 그만두고 떠나려 할 때, 이 상점의 공동경영자인 에그스트룀이 짐에게 했던 말을 말로에게 전하는 대목]
"내가 말했지요. '다만 이 말은 해두어야겠어. 자네가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자네를 지탱해 줄만큼 넓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 걸세...'...[말로에게 짐이 파트나 호의 항해사였다는 얘기를 듣고] 세상에 누가 그런 ㅣ 걸 상관한답니까...이 세상은 그의 광분을 지탱해 줄만큼 넓은 곳이 되지 못할 거라고 녀석에게 말해 주었다고요"

상동, 295-296.
반응형

위대한 유산 : 세일즈맨의 죽음

문학 Literatur 2011. 6. 18. 07:24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꿈의 스웨덴 님께 [댓글에 다시 댓글 저장이 안되는 이 블로그의 사려깊은 기능 때문에 여기에 올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아서 밀러의 이 작품을 통해 불안전 고용상황으로 치닫는 사회현실을 반추하는 서평같습니다. 칸트는 수명의 연장이 악덕의 연장이라고 했죠. 이것은 단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차원의 문제로 본 역사철학적 프레임에서 나온 예견으로,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묵시론적 전망입니다. 저는 앞으로 기대수명과 아울러 실제수명의 연장과 저출산으로 인한 고용구조의 변형으로 정년은 연장된다고 봅니다만, 님의 지적과, 세습 2세 사장 해럴드를 찾아가 뉴욕 본사의 내근직을 요구하는 세일즈맨 윌리에게 보스톤에 [외근을] 안가고 왜 여기 있냐고, 소 닭보듯 사장이 우문을 하는 바처럼, 골드 칼라가 아닌 노년의 일자리는 한여름의 햇살에 무방비로 노출된 거북의 등껍질처럼 갈라질 것입니다. 83년 이 작품이 중국의 인민극장에서 아서 밀러의 연출로 공연된 것에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중산층 가정의 이러한 붕괴를 당시에 경고했던 것인지 꿈꾸었던 것인지 하는 점입니다. 중국의 오랜 변방에서 보험사기에 의한 연간 지출 규모가 2조원을 넘는다는 사실은 죽음도 투자로 만드는 극악한 천민자본주의의 사회현실을 반영합니다. "

[벤] 모르는 사람과는 절대 공정하게 싸우지 마라, 얘야. 그래서는 절대 정글을 빠져나오지 못한다.(56)

[윌리] 만날 고물만 내 차지야! 막 자동차 할부가 끝나니 폐차 직전이지. 냉장고는 미친 듯이 벨트나 닳아 없애고 있어. 그런 물건들은 유효 기간을 정해 놓고 나오나 봐. 할부가 마침내 끝나면 물건도 생명을 끝나도록 말이야.(86)

[윌리]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117)

[찰리] 아무도 이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어. 넌 몰라. 윌리는 세일즈맨 ㅣ 이었어. 세일즈맨은 인생의 바닥에 머물러 있지 않아. 볼트와 너트를 짜 맞추지도 않고, 법칙을 제시하거나 치료약을 주는 것도 아니야.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 미소에 답하지 않으면 끝이지. 모자가 더러워지고, 그걸로 끝장이 나는 거야. 이 사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그게 필요조건이야.(172-173)

텍스트 : 아서 밀러 Arthur Miller,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강유나 역(민음사, 2010, 1판 2쇄).
반응형

한류 열병

문학 Literatur 2011. 6. 16. 18:28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함석헌은 한반도가 세계의 하수구라고 했다. 세계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의 찌꺼기들이 집약된 곳이라는 말이다. 십대를 상품화시켜 화려한 눈요기로 세계의 무대에 진출시키는 열광에 일말의 부끄러움은 없다.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답게 문화를 수출한다고 자부한다. 열정 보다는 열병의 수출이다.  

어제는 휴가를 내서 집에서 쉬다가 도서관에 갔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오웰의 『1984년』앞부분을 다시 보았다. 역시 이 책의 서두 부분은 암울하다. 마치 숙취를 안고 기능이 마비된 미래의 도시에 떨어진 느낌을 들게 한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1949)을 빌려 나왔다. 유진 오닐의 『밤의로의 긴 여로』이후 희곡의 매력에 다시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반응형

고공의 질서

문학 Literatur 2011. 6. 13. 16:02 Posted by 산사람
반응형

페르세우스의 사촌인 벨레로폰의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구절.

"나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어. 모두 내 목소리인데, 어느 것도 내가 아냐.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예전처럼 확실하게 단언할 수가 없어. 모호해지거나 어려워지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냐. 나는 영감을 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즐겁게는 해 주고 싶었어. 하지만 사람들은 광기에 덧씌워진 질서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고나 할까. 때때로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내려다보면 미로 같은 늪 길도 구도가 분명해 보여. 물이 어떻게 흐르고 왜 흐르는지, 그리고 어떤 짐을 지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지. 하지만 지상으로 내려와 늪 사이로 들어가면 수렁에 처박히게 돼."
 
존 바스, 『키메라』, <벨레로포니아드> 219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