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의 수렁에 빠진 연인

문학 Literatur 2011. 7. 16. 14:5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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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느 플로렌스 메리가 주드의 은사 필롯슨과 결혼한 후, 드루실라 할머니의 악화되는 병세로 그녀는 메리그린에서 주드와 만나게 된다. 짧은 만남 이후 헤어진 두 사람은 수가 남편의 학교와 정착한 새스턴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지만, 잠깐의 만남 후 두 사람은 또다시 급작스럽게 헤어진다. 헤어지면서 수는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주드에게 다시 새스턴으로 초청을 한다.]

"그녀가 초청한 대로 다시 그녀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읽은 근엄한 선인(先人)들, 수가 다소 불경스러운 마음으로 주드의 반신(半神)이라고 부르는 성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의심했다면 이러한 만남을 피했으리라. 그러나 주드 자신에게는 그 만남을 말릴 힘이 없었다. 그는 만남과 만남 사이의 시간에 단식을 하고 기도를 하였겠지만, 그의 내면에는 인간적인 면이 신성보다 훨씬 강렬했다."

토마스 하디, 『이름없는 주드』2 Jude the Obscure(1894/1912) 정종화 역(민음사, 2009, 1판 3쇄), 23.

[다음날 수는 다시는 그러한 만남을 하지 말자는 편지를 보내고, 주드 역시 그러자는 회신을 보낸다. 그러나 이들의 애매모호한 만남을 극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난다. 할머니의 죽음.]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그것으로 최종적인 듯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들의 결정 외에 또 다른 힘과 법칙이 작용했다."

상동, 25.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친 후, 수는 아직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필롯슨과의 결혼생활이 고문과 같음을 고백한다.]

"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매우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헀지요. 교육 대학에서의 사건에 휘말렸을 때 나는 나 같은 바보나 가질 수 있는 자신감에 차서 결혼을 서둘렀어요. 모르고 한 짓은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일은 많은 여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차이점은 그들이 항복하는 데에 반해 난 발길질을 하는 거예요......후세 사람들이 우리가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시대의 야만스러운 관습과 미신을 바라본다면 뭐라고 하겠어요!"

상동, 39.
 
[장례식을 마친 다음날 아침, 알프레드스턴으로 가는 한적한 길과 연결되는 언덕길에서 주드는 수를 배웅하다가 '그들의 내밀한 관계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두 사람은 다투게 된다. 수는 친족으로서의 키스를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주드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결국 서로 등을 돌리고 제 갈 길을 가려던 두 사람은 잠시 후 다시 몸을 되돌려 서로에게 달려가 엉켜 들어가고 만다. 이 일을 겪고나서,  주드는 한 때 주교가 되려는 야심으로 학문에 매진하려다 한 여자와의 결혼으로 이 소원이 좌절된 이후, 신학공부를 통해 평범한 사제가 되고자 했던 두 번째 소원마저 폐기처분한다.]

"거의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그는 제리미 테일러, 버틀러, 도드리지, 패일리, 퓨지, 뉴먼[이상 17~19세기의 신학자들]의 저서 낱장과 표지와 그 밖의 전부를 잿더미로 태워버릴 수 있었다. 밤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삼지창으로 책장을 돌리고 또 돌리는 동안, 이제 자신은 위선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그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그 안도감은 마음에 평정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여전히 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신앙을 지킬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아무 의견도 표시하지 않았으며, 신앙을 주장하거나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 장치의 주인으로서 자연히 자신에게 그것을 먼저 적용해 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러ㅣ 지 않은 것이다. 이제 그는 수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안고도 회칠한 무덤의 위선자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죄인으로 남을 수가 있었다."

상동,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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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주드는 사촌 수 브라이헤드를 만나게 된다. 직장 상사와의 불화로  다른 도시로 떠나려는 수를 주드는 옛은사인 필롯슨의 보조교사로 추천해 럼스던의 마을학교에 남게 하지만, 이후 필롯슨과 수가 다정하게 지내는걸 보고 절망한다. 다른 한편, 주드는 오랜 세월 독학을 해왔지만 여전히 고색창연한 대학도시의 외부인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해 보고자 대학의 학장들에게 편지를 띄우고 드디어 한 학장에게 답신을 받게 된다.]

"편지 내용은 간단했으며, 비록 학장이 직접 회신을 쓰기는 했지만 그가 기다리던 내용이 아니었다. 편지는 다음과 같다.
  수신 : 석공(石工) 주드 폴리 씨
  귀하의 서신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귀하가 자신을 노동자로 기술하는 점으로 판단하건대, 귀하가 사회에서 성공 ㅣ 하는 보다 나은 기회는 다른 길을 찾는 방법보다 귀하의 영역에 그대로 남아 현재의 직업에 매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본인이 귀하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비브리올 대학 T. 티투피네이                              "

『이름없는 주드』1, 208-209.

[ 이 편지를 받고 크게 절망한 주드는 술집으로 가서 술객들과 어울리다가 위스키 몇 잔을 얻어 마시고 라틴어로 사도신경(혹은 니케아신경)을 암송하지만, 자신의 공부가 술객들에게 희화화된 것에 실망해 수의 하숙집에 찾아간다. 그러나 새벽에 깬 후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 일어 수의 하숙집을 나와 30여 킬로 떨어진 고향 메리그린의 할머니 댁으로 걸어서 간다.]

"그는 대학 생활보다는 도시 생활이 훨씬 더 활동적이며 변화무쌍하고 간결하면서 포괄적인 인간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먼저 살다 간 가난한 사람들이, 비록 크리이스트나 민스터[대성당]의 의미를 몰랐지만, 크라이스트민스터의 실체였다."

상동,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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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하디의 마지막 소설

문학 Literatur 2011. 7. 12. 17:1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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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는 처녀들의 계략으로 아라벨라와 급작스럽게 결혼한 후 잦은 다툼을 겪다가 사실상의 파혼단계에 들어간다. 얼어붙은 연못의 한 가운데까지 걸어들어가 자살까지 시도하다가 아라벨라와 처음 데이트할 때 갔었던 술집에 간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절망하는 인간들, 가치 없는 인간들이 정기적으로 행하는 판에 박은 수단이다. 이제야 그는 왜 사람들이 술집에서 술타령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마스 하디, 『이름없는 주드』1 Jude the Obscure(1894/1912) 정종화 역(민음사, 2009, 1판 3쇄), 128.

이 소설에서 중심적으로 나오는 지명으로,  이 책 서문 뒤에 하디의 웨섹스라고 나오는 영국 남중부 지도에 '크라이스트민스터'라는 지명이 있다. 인터넷 지도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런 지명은 없었다. 위치상으로나 작품의 흐름상 옥스포드를 말하는 지명이 분명해 보인다. 한편 지도를 보면 전에 읽었던 『테스』 에서 나왔던 지명도 보인다. 블랙무어 계곡, 에민스터, 트랜트리지, 체이스 숲, 샌드본, 그리고 스톤헨지의 남부 웨섹스『이름 없는 주드』의 무대는 이 보다 북동쪽인 메리그린, 크라이스트민스터 등의 북부 웨섹스로 옮겨진다.  소설이 사실을 반영한 허구이듯이 이 작품의 지명도 그런듯 하다. 아래는 실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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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문학 Literatur 2011. 7. 10. 13:4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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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과 1928년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선정기사였던 루스 스나이더-저드 그레이 소송사건을 반영한 이 소설의 제목은 코르셋 외판원 저드 그레이의 정부인 루스 스나이더가 잡지 편집자인 남편 앨버트 스나이더의 사망시 받게될 배액 보상(double indemnity) 보험 조항에 따라,  남편의 사망 후 우편배달부가 벨을 두 번 울림으로써 보험 지급증서가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를 의미한다. 이 신호와 성적 불성실은 배액 보상을 뜻하는 상투적 표현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케인의 이 작품에서 코라는 남편의 성적 불성실보다는 자신보다 나이가 훨 많은 이 그리스인 남편 닉 파파다키스에 대한 인종적 폄하를 더 강하게 보여준다. 1차 살인사건이 무위로 돌아간 후, 코라는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갑자기 아기를 갖자고 하자 기겁을 하게 되고, 이는 2차 살인모의를 급물살로 몰고가는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대책없고 쓸모없지만 똑똑한 방랑자 프랭크 체임버스를 좋아하지만 그의 방랑에는 따를 수 없던 코라는 개기름이 잘잘 흐르는 그리스인 남편은 싫어하지만 그의 안정된 사업기반-식당,모텔,주유소,그리고 비어가든-에 계속 정착해 있기를 바란다. 영화화되고 오페라로도 무대에 올려져 확대재생산된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지겹도록 쏟아내는 전매특허식 상품이라 별 감흥은 없지만 당대에는 아주 충격적이어서 까뮈의 『이방인』에도 영감을 심어 줬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교묘하게 겁박을 하는 검사 새킷과 교활한 장사꾼같은 변호사 카츠의 공방이 흥미로운 국면을 조성하지만 법정소설이라고 하기엔 이들의 소송전이 너무도 짧다.
 
텍스트 : 제임스 M. 케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34) 이만식 역(민음사, 2011, 1판 8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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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문학 Literatur 2011. 7. 6. 09:1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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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투산에서 도라민과 함께 지도자의 권위를 획득한 짐은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는 브라운 패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파투산으로 들어가는 강의 하구에서 브라운은 노략질한 스쿠너 범선으로부터 보트를 띄어 13명의 부하들과 함께 강 상류로 진입하다가, 밀림의 원주민으로부터 격렬한 저항사격에 보트를 버리고 방어용으로 쓸만한 구릉으로 부하들과 도망친다. 여기에 목책을 구축하고 불안하게 목숨을 연명하다가  짐과 적대관계에 있던 라자 진영에서 온 밀사 카심과 비밀 접촉을 하게 된다. 다음은 브라운의 악랄한 본성을 보여주는 대목. 

"그[브라운]가 거짓 동맹 관계를 계획하고, 마음속으 그 백인[짐]의 운명에 대해 이미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고자세로 당돌하게 카심과 음모를 꾸미면서, 그 자신도 거의 모르는 가운데 실제로 원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를 거역했던 그 밀림의 고을을 파괴하여 온통 시신으로 덮이고 불길에 휩싸이게 하자는 것이었음을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다."

조셉 콘래드,『로드 짐』2, 227.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이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 콘래드는 서술을 말로의 이야기 방식에서 말로의 편지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이 작품에서  드물게 나오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형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그리고 짐의 최후. 스타인이 짐을 가리켜 '로맨틱'하다고 규정한 것은 역자의 해설처럼 역설적이게도 자기 파괴적인 이기주의를 포함한 다중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백인은 좌우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자랑스럽게 굽힘 없는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 난 후 그는 손을 입술에 대고 앞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는 구름에 가려진 채 떠나갔으며, 심중을 헤아릴 길이 없었고, 잊혀졌으되, 용서받지는 못했고, 지나치게 로맨틱했다. 그가 소년다운 꿈을 꾸던 그 걷잡을 수 없던 시절에도 이런 비범한 성공의 유혹적인 형상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랑스럽고 굽힙없는 눈길을 보냈던 그 짧은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한 동방의 신부처럼 베일을 쓰고 자기 곁에 다가온 그 기회 ㅣ 의 얼굴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명성을 챙기는 무명의 정복자가 되어 자기의 도도한 이기주의가 보내는 손짓과 부름을 받고 샘 많은 연인[주얼]의 품에서 자기 자신을 떼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허깨비 같은 이상적 행위와 무자비한 혼례를 올리기 위해서 살아 있는 여인을 버리고 떠나고 있다. 그가 이제는 아주 만족하고 있는 걸까?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알아야겠다. 그는 우리 중의 한 사람이다."
 
상동, 291-292.

스타인은 자신의 옛친구이자 전우였던 도라민으로부터 우정의 증표로 받은 은반지를, 파투산으로 떠나는 짐에게 일종의 신임장으로 주었는데, 짐은 파투산에서 이 반지의 보증과 더불어 복수도 당해야 했다. 퇴각하던 브라운 일당의 역습에 강하구를 지키다가 전사한 도라민의 아들 다인 와리스의 손가락에 짐에 대한 신뢰의 증표로 이 반지가 끼워져 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복잡한 서술형식은 불가지하고 혼돈스러운 짐의 캐릭터에 대한 암시를 드러내는데, 이는 새로운 형식과 더불어 더이상 영웅이라고 할 수 없는, 불완전하고 규정불가능한 주인공들이 몰려오는 현대소설의 도래를 예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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