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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직장 후배에게 빌린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읽었다. 조바넬리 같은 놈이라고 했더 말 취소한다. 그 옛날 강준만이 김대중의 집권을 위해 집필했던 바 처럼, 김어준은 이명박이라는 초대형 쓰나미 이후 집권 가능성이 어렴풋이 보이는  범민주 후보 문재인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시작은 조국의 『진보집권 플랜』의 보론 형식이며 조국의 대중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 타진으로 나가지만, 사실 김어준의 이 책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조국의 진보 집권 전략을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리라이팅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주요 내용은 우파와 좌파에 관한 김어준 식의 통섭적 설명과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우파의 전형적 사례인 이명박의  BBK(도곡동 땅 매입과 이 땅의 포스코 매각->다스 투자->BBK 투자)사건과 조 단위의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결사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된 삼성 지배구조의 3대 세습, 그리고 이런 우파의 돈에 대한 순진무구한 욕망에 비해 죄의식과 의무감에 사로잡힌 찌질한 진보에 대한 김어준 식의 투박한 투정. 이외 기억할 만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삼성은 불매운동으로 공격할 것이 아니라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할 수 있는 정권을 탄생시켜야
-검찰개혁은 검찰총장 이하 검사동일체의 조폭체계를 허물고 각자가 양심에 따라 수사할 수 있도로 해야 하며, 역시 생활인인 그들에게 안정된 퇴직 이후의 삶을 보장해 줘야
-북한의 3대 세습에 관해 노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한 정치적 판단이다. 앞으로 20~30년 내 통일을 전망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해 둔다면. 통일은 세대간 비용전담 문제이긴 하지만 통일로 서울에서 파리까지 도보로 여행할 수 있다면 삼면이 바다와 휴전선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사는 섬 소년에게 확장된 인식체계를 선물해줄 것이다.

몇 가지 생각 나는게 있지만 여기까지. 이명박, 더 나아가 박근혜에 대한 김어준의 공격은 탁월하지만 진보정당을 종교공동체나 수도원 공동체 식으로 처리해 버리는 말에는 물론 진정성이 없다. 전 세계 노동자가 단결하는 시대가 아니라 국민의 욕망을 이해하고 이를 실현해줄 정치인을 김어준이 그린 점에서 그는 또 다른 이명박을 기대하는 걸까?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정치판이 현실인 것은, 결혼은 가짜고 이혼은 진짜라는 그의 말처럼 공고한 현실이다.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노력 전체를 대권 판도라는 프레임으로 후려치는 이 책은 여전히 '씨바'를 외치며 찍혀 나가고 있다.      

김대중을 합리적 보수로 보는 김어준의 스탠스는 자유주의적 보수 언론인의 상에 가깝다. 돈이 아닌 특정한 가치, 예를 들어 명예나 정의라는 가치에 목숨까지 걸 수 있는 것이 김어준이 이해하는 보수이며, 이명박이나 한나라 똘마니들은 보수진영이 아니라 양아치일 뿐이다. 스스로 노빠임을 자임하는 그에게 진보는 아직 세상물정을 논리로만 풀려는 아이들로 보일 뿐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유시민을 위해 경기도지사 후보를 사퇴한 심상정의 결단에서 대중정치인으로서 단독자의 [권력]의지, 대중과 비로서 연애를 하려는 감수성을 읽었다며 반기는 그의 관찰력은 잠룡의 움직임에 민감한 예지력을 발휘하며 킹 메이커가 되고자 한다. 노무현의 노제 때 소방차 뒤꽁무니에서 눈물을 닦으며 노무현을 죽인 세끼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공분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 : 김어준/지승호,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 초판 25쇄).
*1쇄 : 2011년 10월 5일...25쇄 : 2011년 10월 29일...하루에 1번 꼴로 찍어내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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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를 읽었다. 그제 도서관에서 일부러 이 얇은 책을 대출한 것은 어제 어떤 녀석에게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빌리기로 했던 이유였는데, 이 녀석이 어제는 물론 오늘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입을 닦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조바넬리같은 놈이다.

영미 문학에서 꽤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히나 본데, 내가 보기엔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이라는 두 고래 사이에서 자유분방한 바람둥이 아가씨의 수난기 정도의 평이한 소설로 밖에 안보인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문화적 온도 차이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고 할까?
 
펭귄클래식에 나온 이 책은 해설이 본문의 1/3에 해당한다. 신기의 의미부여다.

텍스트 : 헨리 제임스, 『데이지 밀러』최인자 역(임프린트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초판 1쇄).

등장인물 : 윈터본, 데이지 밀러, 랜돌프, 밀러 부인, 유제니오, 코스텔로 부인, 조바넬리, 워커 부인 외.
장  경 : 스위스의 브베,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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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과 24일 부서연수가 강릉 포남동에서 있었다. 첫날은 예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주문진의 가공공장을 둘러 보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저녁까지 회의를 한 후, 새벽까지 술집과 당구장을 전전했다. 다음날은 동해의 처가로 일행들이 나를 데려다 주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전망 좋은 동해 휴게소와 대진의 방파제로 내가 일행들을 안내했는데 다들 좋아했다. 처가에서 하룻밤 자고 어제 뒤늦게 내려온 가족을 남겨두고 오늘 점심 때 혼자 귀경길 버스에 올랐는데, 삼척에서 출발해 동해를 거쳐 동서울로 가는 이 버스의 내 자리 옆에 사북,정선,태백을 지역구로 하는 통합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먼저 타고 있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일 수 있을 듯 해서 횡성휴게소까지 모른 척 하면서 졸고 가다가 버스가 횡성 휴게소에서 떠날 때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할 때 까지 주로 정치 현안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개인적인 일정에는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얘기와 이런 저런 의정활동에 들어가는 품에 비해 의정활동비가 현실화되어 있지 않아 대다수 국회의원이 이리 저리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의정 현실에 대한 공분이 이어졌다. 종편 관련 방송위 국감에서 보여 주었더 투사 이미지 답게 민주당의 통합과정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보여 줬는데, 새롭게 진입한 젊은 신진세력에 대한 견제감을 보이는 반면 문성근의 정치참여에 대해선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혹시 배우로 다시 복귀한다면 같이 일해 보고 싶은 감독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명세나 임권택 같은 감독들이 제대로 펀딩을 못받아 작품활동을 할 수 없는 영화계 현실의 어려움을 개탄했다. 정치현실과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해 진저리난다는 듯한 토로와 표정을 보여주면서도 분명히 19대에도 출마할 뜻이 있음을, 당내 경선에서 당권 도전 의사가 없냐는 질문에 자신은 야권 내에서도 야권을 표방하는 무당파라는 소신의 답변에서 읽을 수 있었다(그 다음날인 26일에 통합민주당의 지도부를 뽑는 예비경선이 있다). 지난 국감 때 감사대상인  KT 간부들과 있었던 술자리 파동에 대해선 다소 억울한 입장임을 말하면서 당장 28일 열리는 MB의 영부인 김윤옥의 명예훼손건에 대한 재판에 더 신경을 쓰는 인상을 받았다. '영부인이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 때문에. 한강변에 들어서는 버스에서 석양을 받으며 영화계 현실을 얘기하는 초로의 배우 출신 의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40년 배우 인생의 최종 기착점은 배우임을 알리는 사명감마져 보일 정도로 진중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지난 한 주간 보아온 황순원의 『神들의 주사위』를 다 읽었다. 작가가 60대의 나이 이후에 이런 장편을, 소설가  김치수의 해설처럼 인물들간의 대단한 조직성을 갖춰 장인정신으로 제작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시골 토호 집안의 촉망받는 한 고시생의 로망과 농촌문제 및 환경오염, 통치문제에 대한 고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다만 주요 인물들간의 일부 대화가,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정성어린 표현기법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다. 해설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딱히 규정하기 힘든 점에서 로망이라고 봐야할 개인적 서사이지만, 도시자본에 종속되어 붕괴하는 농촌 사회에 대한 공분은 있어도 이를 극복하는 미학적 상징성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같은 역작에 비해 약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무지몽매한 내게 여름 한 철 잠깐 내렸다 그치고 말 '소나기'로만 기억되는 작가가 이런 작품을 이미 30 년 전에 내놓았다는 것은 시대의식의 선견지명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염색공장이 들어서는 농촌 사회에서 지역개발을 우선하는 유지들과 이를 염려하는 지식인 계층간의 대립구조는 원전단지 유치 예정인 삼척과 영덕에서 확대재생산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인접 지역구의 최의원에게 물어봤는데, 원전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알지만 아무래도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냐는 식으로 들리는 애매한 답변을 들었다.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텍스트 : 황순원, 『神들의 주사위』(문학과 지성사, 황순원 전집 10, 2003년 재판 3쇄) 
출판이력 : 1978년, 『문학과 지성』봄호, 첫 회 발표. 
               1980년 7월 『문학과 지성』정간, 
               1981년 『문학과 지성』8월호부터 1982년 5월호까지 연재.
등장인물 : 두식영감, 한영아범, 한영, 한수, 진희, 세미, 병배, 민섭, 봉룡, 문진영감, 송회장, 윤의사, 보건소장, 강사장, 심읍장, 명재소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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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있어서도 질서 혹은 안정을 추구하는 정당과 진보 혹은 개혁을 지향하는 정당 둘 다가 정치적 생활의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필수적 요인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에 속하는 사실이다. 이것은 둘 중의 하나가 그 정신적 포용력을 확대하여 질서와 진보를 동등하게 표방하는 정당이 되어서 보존하기에 적합한 것과 폐지해야 할 것을 구분해서 인식하게 될 때 까지 그러하다. 이러한 각각의 사고 유형이 효용을 가지는 이유는 상대방이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도출되지만, 각자로 하여금 이성과 정신적 건강의 범주 내에 머물게 해 주는 것도 역시 주로 상대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대 귀족주의, 재산 대 평등, 협동 대 경쟁, 사치 대 절약, 사회성 대 개별성, 자유 대 통제,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다른 대립에 대한 의견이 동등한 자유를 가지고 표현되고, 동등한 재능과 정력을 가지고 옹호되고 이행되지 않는다면, 양쪽 모두가 자기  몫을 획득할 기회를 잃게 된다...진리는 인생의 중요한 실천적 관심사에 있어서 반대편 입장을 화해시키고 접목시키는 문제여서, 엄밀히 가까울 만큼의 조정을 해낼 수 있는 광활하고 무사 공평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그 조정은 적대적인 가치하에서 투쟁하는 전사들 사이에서의 투박한 대립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만일 방금 열걸한 풀리자 않은 중요한 문제ㅣ 들 중의 어느 것에 대한 찬반 의견 가운데에서 다른 의견에 비해 더욱더 관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무되고 격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의견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특정한 시각에 특정한 장소에서의 소수 의견이다."

존 스튜어트 밀,『자유론』, 66-67면.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밀이 말한 것처럼 상호침투하면서 균형을 이룬 역사과정을 거쳤지만, 한국에서 보수는 안정보다는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진보의 파트너가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란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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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 적들이 사라지고 나면, 곧 스승과 제자들은 잠자리에 들게 된다...언어와 문학은 모두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그 속에서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인생에 대해 일반적으로 관찰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관찰은 모든 사람이 알고, 모든 사람들이 반복하거나 말없이 경청하고, 당연한 진리로서 수용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서 그것도 대체로 쓰라린 종류의 경험을 통해서 그 관찰이 현실로 될 때 비로서 그 의미를 진정으로 배우게 된다...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직접 느끼게 전에는 그 전체적 의미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진리가 많다. 만일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논의를 익히 들었더라면, 이러한 진리가 뜻하는 바를 더 많이 이해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이상 의심스럽지 않을 때 그것에 대한 생각을 중지하려는 인류의 치명적인 경향이 그들의 실수에 있어 절반을 이룬다."

존 스튜어트 밀,『자유론』김형철 역(서광사, 2002, 1판9쇄), 61면.

그러니까 진리로 묵인되는 사안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집요하게 물어 뜯으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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