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도움으로 올 한 해 붙일 수 있는, 10여 평 규모의 밭떼기를 갈고 왔다. 길이가 약 30 미터, 너비가 1미터 정도 된다. 밭 만들기는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어차피 두둑을 만들고 고랑을 파는 단순한 일이라 쉽게 보고 덤벼 들었지만 영 모양새가 시원찮았다. 앞쪽의 흙은 거름도 줘서 잘 파혔지만 뒤로 갈수록 돌도 많고 거의 맨땅 수준이라 땅 파기가 만만치 않았다. 1시간 정도 밭의 모양새를 만들고 비닐 멀칭을 했다. 멀칭은 안할까 하다가 뒤 부분의 일부를 빼고 비닐을 덮었다. 집에서 도보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농장이니 심심찮게 가볼 수 있는 일거리가 생긴 셈이다. 와부에서 평당 백만원이 넘는 땅이라 하는데, 10평 정도만 사서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좋겠지만 누가 고만한 땅떼기만 팔겠는가.
예전에 매장관련 일을 할 때, 도봉의 한 임대인과 계약을 한 일이 있다. 외양은 완전 농사꾼 할아버지인데 연산군 묘 근처 그린벨트 지역의 엄청난 땅을 소유한 갑부 양반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억척스럽게 땅을 사모아 농토를 넓혀온 이력이 얼굴에 씌여 있었다. 자수성가한 농부의 저력이랄까. 어차피 그린벨트로 묶여 대지로 전환이 안되니 주말농장이나 식당, 창고로나 활용되는 땅이라 투기꾼의 눈에는 붕 뜬 땅이겠지만, 요즘처럼 주말농장이나 텃밭에 관심이 고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메마른 대지의 단비같은 땅이다.
지난 금요일에 갈월동, 동자동 지역에 두 번째로 공급 지원을 나갔다가 길이 비좁은 비탈 주택가에서 한 집을 못 찾아 헤매다가 어림 짐작으로 차를 언덕길 위로 올리며 돌다가 우연찮게 가려던 집을 찾았다. 갈월동의 이 비좁은 주택가 언덕길은 잘못 들어가면 후진으로 빠져 나와야 해서 차량의 운행이 거의 뜸하다. 그래서 서울의 웬만한 동네에서는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길놀이가 이런 동네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개발 폭풍의 최일선이라 할 만한 용산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이번 어린이날은 어떻게 보내나 은근히 걱정도 됐는데, 교회의 도움으로 모처럼 홀가분한 하루를 보냈다. 어린이날이 아니라 어른의 날이 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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