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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7 『발칸의 전설』
  2. 2010.02.23 『파르마의 수도원』 1
  3. 2010.02.19 『정신현상학』강독 시작 6
  4. 2010.02.17 터미널
  5. 2010.02.11 제 49호 품목의 경매

『발칸의 전설』

문학 Literatur 2010. 2. 27. 12:4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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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Staroplaninski legendi이며 슬라브어로 되어 있다. 불가리아의 민담을 채집해 요르단 욥코프가 각색한 단편 모음집이다. 스타로플라닌스키는 불가리아 북서의 벨로그라드치크에서 흑해 연안까지 530킬로미터에 걸쳐있는 백두대간 지역이라는데, 옮긴이는 이 넓은 지명을 독자의 이해를 위해 발칸으로 옮겼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은 별로 재미가 없어 수록된 단편 중 <시빌>, <암사슴>, <가장 믿음직한 경호원>, <보주라>만 읽었다.  19세기까지 500년간 지속된 터키의 지배는 민담에 고스란히 전해져 있어 불가리이인들에게 이 작품이 고전으로 추앙받았나 보다. 웬지 일제시대 나도향과 같이 토속성을 발산하는 분위기가 욥코프의 이 단편에서 느껴진다. 특히 <암사슴>은 <물레방아>를 연상시킨다. 그러고 보니 욥코프의 이 단편이 나온 시기는 일제시대이기도 하다(1927년). 나도향에 별 관심이 없듯이, 욥코프에게도 관심이 가지 않는듯 하다. 신윤곤 역, 문학과 지성사 2006.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되는데, 스타로플라닌스키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위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의 북쪽 국경선 너머는 루마니아이며, 우측의 바다가 흑해, 그리고 우측 흑해 아래가 터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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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

책들 Bücher 2010. 2. 23. 09: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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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스탕달(본명은 앙리 벨)이 59세의 나이로 파리의 한 거리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4년 전인 1838년, 52일간의 구술로 완성된 작품이다.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의 혁명군에 참가해 출세가도를 달리던 스탕달은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국외를 떠돈다. 이후 그는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으로 관직에 복귀해 이탈리아의 교황령 치비타 베키아 주재 영사로 근무하던 중 파리에 휴가차 왔다가 집필한 것이 이 소설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던 파르네제 가문의 실화를 바탕으로 시대에 맞춰 각색된 이 소설의 제목이 드러내듯, 이 소설의 중반부와 후반부의 주무대는 이탈리아 북부 오스트리아령의 파르마이지만, 왜 '수도원'이 들어가는지는, 이 소설의 급격한 결말에 가서야 알 수 있다.  파브리스가 클렐리아를 만나기 위해 설교소동을 벌이던 끝에 두 사람이 은밀한 밤, 크레센치 저택의 오렌지나무 온실에서 극적으로 만난 이후 벌어지는 3년간의 일들을 작가는 단호히 생략했는데, 이 부분만 다뤘어도 국역본으로 2권의 분량으로 된 이 소설은 3권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도덕을 모두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정략과 정열로 넘치는 이 소설의 통속성은 이 결말에 이르러서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시종일관 희극으로 치닫던 소설이 몇페이지를 남겨두고 급격히 비극으로 깍아 내려지는 급벼랑을 만난 듯한 형국이다. 이런 소설의 분위기는, 마치 한 시대를 뒤흔든 혁명의 시대에 가담해 역사의 전장을 밟고, 열정적인 로맨스를 벌였으며, 시대의 고난과 반전을 겪다가 객사한 스탕달의 인생과 흡사하다.

이 소설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 때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던 작중 화자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밀라노 공국 델 동고 가문의 일화를 듣는데서 시작하는데, 이 동기는 스탕달이 베키아 주재 영사로 이탈리아에 돌아와 16세기 파르네제 가문을 역사를 접한데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밤을 세워가며 이 이야기를 즐겨 들었던 화자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 볼 것을 생각한다. 이것은 스탕달이 [파르네제 가문의 위대함의 기원]이란 기록물의 복사본을 모두 읽고 사본 여백에 이 이야기로 작은 소설을 만들어 볼 것이라고 적은데서 연유할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작은 일화 정도의 실마리를 보이지만, 책의 분량이 말해 주듯 파브리스와 고모인 산세베리나 공작부인, 모스카 백작, 클렐리아,  궁중인사들을 중심으로 굵직한 모험들과 정략들이 이 소설에서 펼쳐진다. 다시 언급하지만, 연정을 위해 마키아벨리적인 권모술수와  활기로 넘치던 이 소설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흡사한 결말에 급작스럽게 당도한다. 삶의 활력이 치닫는 길은 결국 종교라는 종점에 이른다는 것인가? 소설에서 바로 그 종점은 '파르마의 수도원'인 것이다.   

끝으로 이 소설의 에필로그는 To the Happy Few("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라는 치사로 끝나다. 여기서 소수의 행복한 사람이란 파브리스나 산세베리나 공작부인, 나아가 모스카 백작처럼 사랑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열정가들을 가리킨다. 사랑을 위해서란 말은 극히 감정적이지만, 이런 열정 자체는 희귀하다. 그러나 이런 희귀한 한 사람의 열정이 열사람, 아니 그 이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이런 정열의 위대함과 공허함이 있는지 모른다.

*텍스트 : 스탕달,  『파르마의 수도원』 원윤수,임미경 역(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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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강독 시작

헤겔 Hegel 2010. 2. 19. 09: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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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무실에 일역본이 도착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원서와 樫山欽四郞의 일역본(2009 초판 10쇄, 보정판)을 필사하며 한 문단을 번역해 봤다. 혹시나 싶어 임석진의 국역본(1995 초판 6쇄, 개역판)도 봤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 의미는 제대로 전달하는 듯 하지만 문형을 자기 이해에 맞춰 자의적으로 구성하는게 심하다. 일역본은 난삽한 원서의 긴 문장을 구두점으로 구획하고, 직역에 가깝게 문형을 원서와 일치시켜 이해하기 편하다. 이제 시작했으니 좀더 두고볼 일이다. 3년 전 강유원의 『정신현상학』서문 강독회에 몇번 참석 한 이후 다시 보는 원문은 느낌이 새롭다. 서문(Vorrede)은 건너뛰고 서론(Einleitung)부터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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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단상 Vorstelltung 2010. 2. 17. 09:0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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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시골에서 돌아 오는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 저녁에 동서울 터미널에 나갔다. 명절 연휴 다음날이지만 아직도 터미널은 증편된 버스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주로 보이는데 비해, 이제야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설레임이 터미널에 있다. 터미널은 오는 사람들의 귀착감과 가는 사람들의 설레임이 뒤섞인 곳이다. 변함없는 노점상의 뜨근한 국수를 먹고 기다린다. 기다린다..

터미널에 대한 또 한가지 기억이 난다. 20대 후반, 종로의 소격동에서 자취하며 살 때가 있었는데, 추석명절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명절이었는데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큰누나 집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타고 수원에 가서 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오래된 터미널이었으며 오래된 버스를 타야 했다. 

이 때 터미널에서 붐비던 인파에 어떤 위협감도 들었다. 명절에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움직임에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청년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움츠려 있는 모습은 터미널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이번주 동해의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기다릴 때, 고향의 터미널에서 오랜만에 만난듯한 두 청년이 취업에 관한 불안한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 졸업을 미루면서 자격증 취득 등으로 취업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이 오랜만의 만남도 어색하게 만드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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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호 품목의 경매

책들 Bücher 2010. 2. 11. 13:2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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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ying of Lot 49, 토마스 핀천, 김성곤 역(민음사, 2009). 음모론과 정보이론이 결합된 고전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혹은 『푸코의 추』,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에 익숙해 있으며,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에 진력이 나버린  21세기 초반엔 진부한 감이 있다. 이 소설이 출간된 1966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1960년대 미국 서부 연안에서 자아분열의 이상을 감지한 시대적 촉수는 비공식 우편제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핀천은 인터넷 시대를 예감했을까? 공식 우편망을 마비시키려는 트리스테로라는 비밀조직은  오늘날엔 해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별 감흥없이 빠른 속도로 무미건조하게 읽어나가기 좋은 소설같다. 이 소설의 주제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철학작품을 꼽는다면 가따리와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일 것이다.
 
『제 49호 품목의 경매』를 반납하고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2권을 빌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수도원'의 주인공들이 나르시즘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18세기형 인간의 특징인지도 모르지만, 월리엄 포크너나 토마스 핀천의 작품에서  이런 나르시즘은 붕괴된다(이런 점은 다자이 오사무도 마찬가지다). 철학도 하나의 거대체계로서 헤겔에 이르러 종점을 찍듯이, 근대인의 열정과 자아도취도 이제 빛바랜 시대의 유산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역자 해설에서 숫자 49와 관련된 설명이 나온다. 49는 제자들이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오순절 전날이나 죽은 자가 현세와 영원히 작별한다는 사십구제 처럼, 어떤 완전함, 결단을 기다리는 유예상태라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또한 이 소설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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