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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799건

  1. 2010.01.11 족벌의 트러스트
  2. 2010.01.10 『1984년』을 읽고
  3. 2010.01.08 제임스 카메론의
  4. 2010.01.08 퇴근 후 왕십리에서 아바타를 본 후
  5. 2010.01.07 소설책 두 권

족벌의 트러스트

단상 Vorstelltung 2010. 1. 11. 17:5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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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로부터 구원을 받은 이건희가 라스베가스에서 한국민에게 "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마피아 두목이 만찬회에서 몽둥이를 쓰다듬으며 하는 말 같다. 국민경제를 좌우하는 거대기업의 수장으로서 이 정도 만용도 못부릴 것은 없다는 투다. 물려 받은 가업, 정권의 보호 아래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족벌 트러스트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하는 말에는 어떤 섬뜩한 기분이 든다. 블러드크러시를 중심으로 플루토크러시와 테크노크러시의 삼자동맹에서 저런 황당한 말이 나왔을 것이다. 삼성이 방구뀌면 너희들 어떻게 되는줄 알아? 라는 협박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건희의 저 발언은 한국, 아니 한반도를 규정하는 주류집단의 심급은 족벌 트러스트임을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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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을 읽고

문학 Literatur 2010. 1. 10. 18:21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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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이후 체크한 구절을 옮긴다.
 
"우리 생애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가망도 없고. 우린 죽은 몸이야. 우리의 진정한 삶은 미래에 있어. 우린 그때 한줌의 먼지와 몇 개의 뼈다귀로 변해 있겠지. 그러나 그 미래가 얼마 후일까는 알 수 없어. 몇 천 년이 걸릴는지. 현재로서는 조금씩조금씩 올바른 정신을 넓혀 가는 것뿐이야. 집단행위를 할 수 없어. 우린 우리의 지식을 개인에서 개인으로,ㅣ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줄 수 있을 뿐이야."

『1984년』, 184-5.

한 순간에 오세아니와의 교전국이 유라시아에서 이스트아시로 바뀌는 텔레스크린의 낭보를 들으며 윈스턴이 하는 말.
"대상이 바뀐 것 외에는 '증오'는 전과 똑같이 계속하는 것이었다."

상동, 190.

외부당원인 윈스턴 스미스가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에거서 받은 골드스타인의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 중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급사회를 파괴할 위험(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가 파괴다)을 초래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누구나 적게 일하고 많이 먹고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살며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갖는 세상에서는 불평등이라는 가장 명박하고 중요한 사회구조가 붕괴한다.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 권력은 소수 특권계급이 장악하는 사회를 물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회는 장기간 안정적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안정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향유된다면 빈곤으로 우매해야 정상적일 대중들이 점점 깨이고 혼자 사색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고 보면 조만간, 소수의 특권층은 특권적이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되고 따라서 그들을 없애 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아 계급사회[상중하의 3계급]는 가난과 무지를 기반으로 할 때만이 가능하다. 20세기 초의 몇 사상가들이 꿈꾸듯 과거의 농업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실제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것은 거의 전세계를 통해 준본능이 되ㅣ 다시피 한 기계화 경향과 맞지 않을 뿐더러 공업에서의 후진국가는 군사적으로 무력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선진국가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상동, 197-8)

"문제는 세계의 부를 실제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재화는 생산되야 하지만 분배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 계속적인 전쟁이다."(상동, 198)

"전쟁은 잉여 소비재를 소모시키고 계급사회가 필요로 하는 독특한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한다...우리 시대에는 결코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지배집단의 그 백성에 대한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은 영토의 정복이나 반항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있다."(상동, 205)

오브라이언이 줄리엣과 함께 체포되어 개조를 당하는 스미스에게 설명하는 권력의 본질

"옛날 사람들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마저 비열하고 위선적이지.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공산당이 그 방법에서는 우리와 극히 비슷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동기를 자인할 용기가 없었어. 그들은 마지못해, 그리고 잠시 동안 권력을 장악했다. 머지 않아 인간이 자유스럽고 평등한 천국이 오리라고 그들은 가식, 아니 믿고 있었지. 우리는 그렇지 않아. 누구든 권력을 장악할 때는 그것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이야. 권력은 수단이 아니야. 목적 그 자체지.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 독재를 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 혁명을 하는 법이야. 박해의 목적은 박해야.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그처럼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다."(상동,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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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Film 2010. 1. 8. 23:46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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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와 비교해 볼 때 뭔가 대기만성적이다. 이 두 감독도 대단하지만, 카메론은 난잡한 다작 보다는 시기적 집중으로 승부를 거는 감독같다. 그가 일약 뜬 건 『터미네이트』인데, 그 이전 부터 실상 카메룬의 관심사는 SF였다. 『아바타』는 이런 그의 오래된 관심사를 구현한 흥행물이다. CG에만 의존하지 않고 배우의 연기에 중점을 둔 것은 영화적 주제와도 상관있지만, 고전적인 작가주의적 냄새마져 풍긴다.

재미있는 점은, 카메룬을 세계적으로 알린 『터미네이트』에서 인류를 위협한 것이 미래의 외계 기계족이었는데, 이제는 미래의 인간이 외계인을 괴롭힌다는 설정이다. 외계족의 존재 여부는 미궁 속의 실마리로 높아져 가지만,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인간성은 미궁에서 그 실체는 물론, 실마리마져 있었는지 가물가물해 진다. . 

미래 세계에 대한 조금 색다른 카메론의 내놓음에 이제 어떤 반격과 창안들이 나올까. 한국에서 대박은 뭔가 어설프더라도 1000만 동원으로 결정되는데, 현재 700만을 상회한 카메론에게 미래에 관한 주제의식으로 관객동원에 매몰하지 않고 도전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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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집에 가다가 이 구절이 눈에 띄였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관계였고 죽어 가는 사람에게 포옹하고 눈물 흘리며 위로를 하는 등 전혀 무익한 행동도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아직 이런 상태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당이나 나라, 사상에 충성할 필요가 없고 서로의 인간에 충성한다. 그는 비로서 노동자들을 경멸할 수 없고 언젠가 생명을 되찾아 세계를 재생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힘으로 보기에 이르렀다. 노동자들도 인간이다. 내부까지 굳어 있지는 않다. 그들은 그가 의식적으로 다시 배워야 할 원시적인 감정으로 살고 있다."

『1984년』,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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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두 권

서술 Beschreibung 2010. 1. 7. 09:10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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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부터 현재까지 좀처럼 글을 쓸말한 여유가 없지만,그래도 출퇴근 전철과 깊은 밤에 잠깐식 소설책은 본다. 다시 펼쳐든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중 1편 야곱의 이야기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1984년』은 중반에 줄리엣의 고백으로 다소 상투적이긴 하더라도 예상못한 반전이 일어나면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 진다. 야곱의 이야기는 몇 줄 안되는 구약의 구절을 현실감있게 복원시키는 토마스 만의 주도면밀한 상상력에 빨려 든다. 실제로 토마스 만이 근동을 답사하고 취재를 하고 난 후 고 소설을 쓴 점은, 마치 범죄 영화를 만들기 위해 30년간 형무소로 쓰인 알카트라즈 섬을 답사하고 수감자들을 취재했던 마이클 만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취재는 오늘날 창작의 기본이다. 책상머리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으나, 이제 작가는 도서관과 인터넷을 물론, 현장의 답사를 통해서 상상력에 현실의 갑옷을 입힌다. 창작의 고통은 단지 머리 속의 고통이 아니라 전신의 노동에서 비롯되는 고생이다. 고통없이 산출이 있던가.    

창세기편 중 에사오를 피해 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문 야곱의 이야기에서, 야곱은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7년간 라반에게서 종살이를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간단히 처리된 7년이라는 수를 놓고 만은 7년이란 수의 막막함과 덧없음을 상술한다. 하루 하루가 지나 7일의 한주가 되고, 한주가 모여 한달이 되고, 계절이 바뀌어 1년이 되듯, 되돌아 보면 7년은 마치 하루의 7일인 한 주 처럼 흘러간다. 여기에 바로 만의 맹점이 있다. 창세기의 짧은 구절에 놓인 시간의 공백을 면밀히 채워 나가는 전형을 만은 탁월하게 보여준다.   

조지 오웰의 당에 날리는 일침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어떤 점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납득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공적 사건에 충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침해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정상적이다. 마치 한 알의 곡식이 소화되지 않고 새 몸뚱이를 거쳐 탈없이 그대로 나오듯.."(『1984년』,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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