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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802건

  1. 2010.11.23 김수영 산문집
  2. 2010.11.20 늦은 가을 볕 때문에
  3. 2010.11.15 식민본국 수도의 도련님 이야기
  4. 2010.11.10 우연한 기억 하나
  5. 2010.11.04 전후 한국문학의 불안한 심로

김수영 산문집

문학 Literatur 2010. 11. 23. 10:5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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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전집 2편인 산문집을 읽고 있는데, 시보다 재미있는 글같다. 생활인의 감각과 잡기 뿐만 아니라 문학판에 보폭이 넓던 김수영에게 비추인 동시대 문인들에 평가도 볼 만하다.  그 당시 이미 고인이 된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을  현대어 감각을 상실한 인간으로 몰아붙이는 산문의 말미에 그에 대한 치기어린 우정도 보인다. 이어령과의 지상논전은 요즘세대의 댓글논쟁에 못지 않다. 젊은이들이 종로 뒷골목에서 값싼 술을 마시며 문학과 세상을 논하지 않는 세태는 잘못된 것이라며 동네 술친구와 노닥거리는 그는 마치 친근한 40대 동네 아저씨의 풍모를 보이지만, 몹시 피로해 보인다. 시대의 폭정에 짓눌렸고 글쓰는 생활의 폭압에 시달리며 돈안되는 양계나 날림 번역의 유혹도 넘나드는 시인에게 시는 세파를 가르는 닻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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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가을 볕 때문에

문학 Literatur 2010. 11. 20. 22:2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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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판 김수영 시 전집을 마져 다 읽었다.  이 사람의 시가 이 사람 삶의 응축판이 될 수 있다면, 아무리 따스한 주말의 오후 햇살이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건지 의아한 점이 없지 않지만, 최소한 시인이 남긴 말자취만은, 비록 중간 졸기는 했지만 일단 쫏았다고 밖에 더 할 말이 없을 듯 싶다. 특히 '나가타 겐지로'에서 집중적으로 졸음이 쏟아져 여닐곱 번은 시집을 다시 뒤적였다. 

시를 쓴다는 일은 쉽지 않다. 김수영도 중간 중간에 시를 쓰는 생활의 핍박을 통로한다. 쓰기 어려운 시만큼 이해하기 힘들고, 쉽게 쓰여진 시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의 막판에서 다이스케의 형은 부정을 일으킨 다이스케를 몰아붙이여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위험하다"고 했다.
 
웬지 그 시대, 군사정권의 발끈기에  그가 위험한 인물로 몰린건 아닌건지,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지금 불현듯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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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본국 수도의 도련님 이야기

문학 Literatur 2010. 11. 15. 12:1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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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1909)를 읽었다. 이야기의 템포가 매우 더디고 3인칭 소설이지만 1인칭이라고 할 만큼 주인공 다이스케의 심리묘사가 상세해서 지루한 감이 있다. 러일전쟁이 끝나고 한창 일본의 군국주의가 발흥하던 때에, 무사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가  에도에 마련해준 집에서 하인까지 거느리고 빈둥대는 30대의 인텔리 주인공에게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어떠한 반영은 없고 오직 자신의 느낌만이 전부다. 당시 아사히 신문의 전속작가로서 이 작품을 신문에 연재했던 나쓰메 소세키를 극찬하는 가라타니 고진은 결국  아시아 식민제국주의의 본국이라는 시대배경을 가로치고 여기서 일어나는 개인주의를 극찬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에 대한 언급이 한 번 나오는데, 조선 총독부에 가 있는 친구가 고려자기를 보내줬다는 정도다. 물론 제국주의문명의 생산과 팽창에 대한 암울한 전망과 일본경제의 불안정에 대한 서술도 있다. 작가는 단지 개인의 낭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부정시되는 사건을 통해 사회와 개인의 극명한 대립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간다. 사회와 개인의 대결구도를 소세키가 드러냈다는 점이 고진에게 선구적인 것이다. 곧 전개되는 삼각관계의 붕괴는 제국에 봉사하는 주인공 집안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였지만-소설 후반에서 히라오카는 신문사 근처 술집에서 다이스케에게 일본제당주식회사와 같은 스캔들이 다이스케 집안의 기업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은근히 경고했다- 결말은 밋밋하게 나고 만다. 그러나 자연의 감정에 따르고자 했던 주인공은 소세키의 이후 작품(『문』)에서 내면의 복수를 당해야 했다. 

후반부의 급격한 전개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벼랑끝 질주처럼  속도감이 있지만 주인공들을 단칼에 파멸시키는 무자비함은 없다.

텍스트 : 나쓰메 소세키, 『그 후』윤상인 역(민음사, 2008, 1판 17쇄).

*다음 구절은 도시인의 변덕스러운 심미주의에 대한 다이스케의 주장이다. 자연에 따르겠다는 다이스케에게 작품을 갈아 타서 작가가 복수하는 후기작 『문』(1910)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그는 육체와 정신에 있어서의 미(美)의 유형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미에 접할 기회를 얻는 것을 도시인의 특권으로 여겼다. 모든 종류의 미에 접해서 그때마다 갑에서 을로 마음이 바뀌고, 을에서 병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감수성이 부족해서 감상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그것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리라고 믿었다. 그 진리로부터 출발해 도시에서 생활하는 모든 남녀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 있어서 전부 어떤 계기로 인해 예측하기 힘든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부연하자면, 이미 결혼한 한 쌍의 부부는 양쪽 다 세간에서 부정이라 일컫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결혼이라는 과거로 인해 빚어진 불행과 항상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다이스케는 감수성이 가장 발달했고, 가장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는 도시인의 대표자로서 게이샤를 선택했다. 그들 중에는 평생 정부를 몇 명 바꾸는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일반적인 도시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게이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이스케는 요즘 같은 세상에 변함없는 사랑을 입에 담는 사람을 제일가는 위선가로 간주했다."(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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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억 하나

단상 Vorstelltung 2010. 11. 10. 17:07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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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화제거리인 MBC 월화 드라마 <역전의 여왕>을 어제 보았는데, 백여진 역으로 나오는 비싹마른 배우를 보다가 갑자기 중학교 3학년 때 도덕선생이 떠올랐다. 백여진 만큼의 미모는 전혀 아니지만, 그만큼 깡 마르고 멀대처럼 컸으며 얼굴빛이 새하얏던 그 선생이 수업시간중에 내게 뭐라 했던게 생각났다. 중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그 선생은 전혀 기억에 없던 사람이었다. 그때 수업중 그 선생이 내린 어떤 문제에 관해 반 전체가 짤막한 소견을 적고, 이 선생의 지적을 받은  학생이 의견을 발표했다. 나도 지적당해 시사문제와 연관지어 꽤 냉소적인 단문을 냈었는데, 의외로 관심을 보이며 그런 문제의식을 잘 발전시켜 보라는 식으로 말했던 거 같다. 그러고 보니, 고2 때 윤리선생도 생각난다. 내가 철학과에 간다고 해서, 여러모로 정보와 전망 같은 걸 얘기해 주셨는데, 동지감을 느껴서인지 저녁밥도 사주셨다. 이 분은 가끔 생각난다.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던 사람이 드라마를 보다가 떠오르는 일도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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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한국문학의 불안한 심로

문학 Literatur 2010. 11. 4. 15:5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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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선정한 20세기 한국 중단편 소설집을 읽고 있다(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 21). 주중에 술먹고 보거나 졸음을 참으며 읽으면서 집중력은 다소 떨어진 독서였지만, 간단한 느낌을 차례로 정리해 본다.

포인트(최상규,1956) : 갓 결혼한 백수 남편에게 입대영장이 온 후 겪는 심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편인데, 왜 제목이 포인트인지 모르겠다. 소수점에 점 하나를 찍어 더 작은 단위로 내려 가듯이, 점점 위축되어 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암시하는 것일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보이는데,  마치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하는데서 오는 박탈감 비슷한 심정이 보인다. 작가로 입신하기 위해 부인은 백화점에 보내고, 군대까지 요리 저리 피해보려다 결국 덜미가 잡힌 막가는 청춘의 모습 속에 징집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것인가? 이 점만으로도 그 시대에 작은 충격을 줄 만한 소재로 보인다.

흑색 그리스도(송상옥,1965) : 분위기는 포인트와 비슷하다. 제목은 종교적 주제를 암시하는데, 이야기 흐름과 큰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마치 술취한 사람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듯, 특정구절을 이따금식 반복해 보이는게 당시로선 새로운 형식의 추구로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겨울밤(이병주,1974) :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작품이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하다. 오히려 이후 작가가 발표할 기록문학의 예고편 같은 다짐과 포부를 보이는 작가의 말같다. 그의 처녀작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노정필의 비판, 그러니까 이 작품은 작가의 말대로 기록문학이 아니라, 서정문학이라는 평가에 몰려 작가는 보다 충실한 기록문학을 준비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역시 작품의 제목과 작품의 내용이 엇갈린다.  

병신과 머저리(이청준, 1966) :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의 대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사실과 상상의 엇갈림, 리얼리즘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봉합시키는 작가가 또 있을까. 동족상잔의 참란이라는 상흔을 안고 있는 '병신'인 전전 세대와 근원을 모를 병폐를 안고 있는 '머저리'인 전후세대의 대립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서 극명해 진다. 상흔을 잊고 현실에서 싸워나가기 위해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의 참상이 너무도 깊기 때문인 반면, 전란을 소용돌이를 비켜간 세대에겐 망각과 흔들림이 거추장스러운 위선으로 비춰진 것일까.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약간의 변조를 거쳐 <자서전들 쓰십시다>에 이어진다.

자서전들 쓰십시다(이청준,1976) :   이른바 성공한 인간들 열댓명의 자서전을 대필해온 작품 속 작가는 자서전이란 대필 청부업자에게 의뢰를 하더라도, 그 주제는 자신을 의견을 주장하는 과거시제의 미래투영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만인에게 드러내 보이는 고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자서전은 자신의 과오도 미덕으로 추앙하는 위장을 드러내는데, 그래서 짓밟히는 사람들은 두번 짓밟힐 수 있는 것이다. 그 성공에 짓눌린 무수한 타인들은 기록 속에서도 짓밟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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