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2

책들 Bücher 2009. 9. 24. 17:44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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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남한산성>을 계속 보고 있다. 궁금해서 인터넷 지도를 펼쳐 봤더니 남한산성은 내가 살고 있는 남양주에서 수직선상에 있는데, 거리는 약 12km 정도 밖에 안된다. 청군의 우두머리인 용골대가 조선왕에게 쥐새끼처럼 왜 그런 산골에 숨어 들어 갔냐고 야유하는 것처럼, 남한산성은 산세를 잘 활용한 요새이지만, 사방에서 청의 20만 대군이 에워싸면 그대로 포위되고 마는 섬과 같은 지형이다. 물론 왕가 행렬이 강화도에 가려다가 청군이 강화도의 길목인 김포를 선점한 상태라 급작스럽게 남한산성으로 길을 잡은 것이긴 하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서도 왕가와 조정이 이렇게 방비가 없었다는 것도 놀랍다. 조선은 차라리 200년 역사로 끝장나야 했다.

예전에 한번 남한산성 밑자락 쯤에 간 적이 있는데 사철탕 집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닭, 개고기 류인데, 이것도 역사적 유산이다. 호란 당시 병참이 없어 말라가는 남한산성에서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는 날이 갈 수록 줄어들었다. 말까지 대형 솥에 넣어 삶아 먹었을 정도니 계견은 오죽했으랴. 수원에 소갈비가 유독 유명한게, 수원성 건립 후 노역에 동원된 백성에게 정조가 운반용으로 쓴 늙은 소들을 먹인데서 유래했듯이, 모란 시장엔 개고기가 유명하다.

김훈도 화자를 빌려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행태를 조롱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왕가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것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항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병력도 없는데 장기적으로 버티려면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 가야 했다.  도망쳐 다니는게 왕의 위엄에 지대한 손상이었을까? 도주하면서 백성을 끌어 모아 항전을 했더라면, 그래서 끝내 패퇘해 왕조의 운명이 끊겼더라도, 백기투항해 용골대 앞에서 머리를 찧는 것보다 더 낫을 것이다. 그래서 비굴하게 연명한 왕조는 다시 200년 후 400년 전 조선을 침탈한 국가에게 제 나라 백성의 혁명적 봉기를  진압케 하고, 끝내 나라를 넘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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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1

책들 Bücher 2009. 9. 21. 11:5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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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으로 김훈의 소설책을 봤다. <남한산성>. 대략 짐작을 했지만, 국가주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아무래도 그는 왕조시대만을 다룰 수 있는 작가같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이미 전날 얼어붙은 강을 건넜던 왕가 일행이 들어간 남한산성으로 가기 위해 뱃사공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넌 후, 뱃사공을 죽이는 대목은 국가 폭력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얼어붙은 강의 살얼음길을 피해 왕가 일행을 안내하고도 보리 한줌 받지 못한 무지랭이 뱃사공이 식량을 위해 청군에게 길을 안내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예판은 뱃사공을 처단할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러한 '처리'방식은 작가의 허구이지만, 이런 허구를 만든 의식에는 국가주의적 폭력에 대한 묘한 정당화가 도사리고 있다. 전시에 부역하는 자는 일고의 가치없이 처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시에 이런 행태는 비일비재하며, 따라서 이에 대한 제한 장치가 발동되는 것은 익히 예상할 수 있으나, 김훈의 관점에는 마치 자코뱅적인 처단의지가 보인다. 뱃사공 하나 죽인다고 물밀듯이 들어오는 청군을 막을 수 있는가? 전쟁을 초래한 조정에 비해 강에 의존해 연명하는 뱃사공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가? 수탈은 할 뿐 재분배는 없는 조정에 대해 백성은 무슨 아쉬움이 있는가? 실제로 그 당시는 단일한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훈은 어떠한 사정에 놓인 백성일지라도 국가를 배반하는 행위는 응징해야 한다는 국가주의를 풍긴다. 불편하다. 뱃사공은 자신의 불충한 속내를 털어놓은 놓은 이유로, 아무런 대가없이 전날 왕가 행렬을 건네주고, 다음날 벼슬아치를 건네주고도 죽임을 당한 것이다. 살려고 하는 자에게 살 길을 마련해 주지는 못할 망정, 미리 배반을 막기 위해 처단하는 것은 병영국가의 단면이다. 하긴 조선이란 국가가 왕족과 정승의 나라였지 진정한 백성의 나라는 아니긴 했다. 그런데 백성을 말먹이를 위한 일개 지푸라기 정도로 보는 봉건적 시대의식에서 갇혀 있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불편하고 위험하다. 김훈이 이런 시대의식에서 자유롭다면, 뱃사공을 최대한 설득하거나 이것도 안되면 남한산성으로 강제로라도 끌고 가는 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 딸이 강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예판의 권유를 마다한 뱃사공을 기습처단하는 것으로 김훈은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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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는 책 : 베트남의 역사

책들 Bücher 2009. 8. 31. 13:4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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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논문준비에 들어간 이후 주로 논문관련 책만 보고 있다. 7월 한달간 쓴 논문초고의 경우 주제가 변경되면서 뒤짚어 지는 바람에 8월 들어 새로 쓰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책을 보고 글 쓸 수 있는 시간은 출퇴근 전철 시간대와 퇴근 후 마을 도서관에 잠깐 들르는 경우와 주말 밖에 없다. 지난주 사회적 경제에 관한 강연회 후 뒤풀이 시간에 어떤 분이 공동체는 결핍이 있어야 운영된다고 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고독의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어 잠까지 줄여가면서 작업을 하진 않고 있다. 

마을 도서관이 생긴 이후로 개가열람실의 책을 빌려 보는데 주로 역사책을 빌리고 있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중 남북국시대(발해와 통일신라) 편을 보았고, 메리 풀부룩의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를 보았다. 두번째 책은 반납기간 때문에 앞부분만 보고 이후 다시 대출해 마져 읽을 생각이다. 이 책을 반납하면서 최병욱의 <베트남 근현대사>를 빌렸다. 10세기 까지 베트남은 중국의 속국이었고, 현재와 같은 통일왕국의 베트남은 19세기 들어서야 성립했다. 사이공과 메콩강이 있는 남부와 중부는 그 이전까지는 다른 부족들이 지배하고 있었던 지역이었다. 저자는 조선이 500년 동안 단일국가의 틀에 묶여 있는 동안 베트남은 근세까지 남으로 영토확장을 도모한 역동적 국가로 서술한다. 10세기 이전의 베트남은 아마도 부족 연맹체 성격의 지역이었을 것이다. 베트남이란 말도 최초의 통일왕국을 형성한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왕조(1802~1945)의 국호(Viet Nam, 越南)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 짧은 왕조의 통일도 1859년 프랑스의 식민지배로 붕괴된다. 어떻게 보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창한 휘호 아래 계속 분열되었다가 19세기말 비스마르크에 이르러서야 통일을 이룬 독일과 흡사한 역사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신성하진 않지만 오래가는 제국임에 틀림없기도 하다.    

복잡한 전철에서 어느정도 해석된 팩트를 읽는게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의 경우, 발해를 국내사로 편입하기 위해 사용한 남북국시대라는 명칭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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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선과 악의 결정적 싸움에서 결국 죽음 앞에서 공통적으로 무너지고 마는,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벽을 세운다. 악의 편에 있는 사람(맥베스, 던컨, 에드먼드, 고너릴, 리건, 그리고 이아고), 악의 편에 조정당하는 사람(오셀로), 악에 맞서 싸우는 사람(햄릿, 코델리아, 데스데모나) 모두가 죽음의 파도에 휩쓸리고 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구성은 선과 악이라는 대립 구도 자체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라는 점을 인간의 순간적 격정을 통해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셰익스피어는 악에 대한 분명한 응징을 결과함으로써 서슬퍼런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면서도 이로인한 선의 찬란한 승리를 보여주진 않는다. 상처투성이인 정의의 판정승일 뿐이다. 그래서 비극이지만 이런 비극이 왜 세익스피어 당시의 관객들에게 호응을 일으켰으며 현대에 와서도 현실감있게 느껴질까? 그때는 희극의 유행이 사그러들면서 비극이 새로운 양식으로 부상하는 시기였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 만연되어 있는 비극적 상황때문은 아닐까? 9시 뉴스를 보면 참담하다. 쇼킹하고 발칙한 사건의 발굴에 혈안인 매스 미디어는 비극의 연출자이면서도 자질구레한 쇼와 재담으로 비극적 현실을 천박하게 무화시키는 희극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두 딸로 부터 버림을 받아 황야를 배회하는 리어왕이 자신의 비탄한 심정을 잊으려고 하는 듯 어릿광대를 붙여 다니듯이, 미디어는 분열된 제왕의 권위를 행사한다.

물론 그렇다. 만연된 죽음과 그 암울한 그림자에 짓눌려 암울하게 지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을 말초적 방향전환으로 웃고 넘기는 것은 집단적 광증이다.

어차피 삶이란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지속일 뿐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삶의 태도와 죽음의 형태는 다양하다. 카를로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는 이런 비극적 현실을 내용으로 삼으면서도 이런 현실로부터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미지의 남자가 밑줄을 그어대는 텍스트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다. 주로 연인간의 사랑에 관한 담론이 주류를 이루는데, 사랑이 절박한 이유는 죽음의 한계때문이기도 하다. 문학은 삶과 죽음의 바탕위에서 끊임없이 이것을 의식하면서도 도피하려고 하는 몸부림이 아닐까? 도피가 불가능함을 알았을 때 주인공이 맞닥트린 절망감은 독자에게 동정과 공감, 번민의 부질없음을 일으킨다.

봉그랑의 밑줄은 미로처럼 텍스트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을 남겨둔다. 어쩌면 이 흔적은 콩스탕스에게만 보여주려고 남긴 밑줄이 아닐지 모른다. 사랑하고 싶어하는 콩스탕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언어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사랑을 노래하는 책의 언어는 그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너'의 언어로 된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밑줄 긋는 이는 콩스탕스라는 여자의 연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고래적부터 그리고 펼쳐질 미래에도 죽음이 아가리를 벌린 채 생명을 삼키는 대지위에서도 사랑의 빗물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거기에 살짝 손을 갖다만 대도 쉽게 전염되어 버린다. 콩스탕스처럼.

(200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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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와 맑스의 비교연구중 고전에 해당하는 저서다. 부록에는 20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베버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주는 더글라스 켈너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칼 뢰비트는 베버의 합리화 개념과 맑스의 사물화 개념을 중심으로 두 거대 이론가의 공통점과 차이를 충실히 보여 주려 한다. 베버에게 경제적 합리성의 증대와 관리체계의 효율화는 세계사의 진보에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맑스에게 이러한 경향은 사물화로 나아가는 타락의 과정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 즉 맑스진영으로부터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베버적 합리화에 대한 오역을 저자는 충실히 교정하려 한다. 베버에게 맑스주의는 자본주의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전복을 실천하려는 변혁적 세계관으로 인정받지만 과학으로 인정되진 않는다. 과학의 요건을 충족시키기에는 유물론적 사관 자체가 하나의 학문적 독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베버는 결코 사회학 방법론을 개척한 과학자 내지 방법론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 또한 맑스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베버의 의도와 결과물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용한 것은 하버마스에 이르러서 가능했다.

베버의 총체적 관심사는 하나의 이념형으로 특정사회를 이해하려는 방법으로 나타나는데, 그 결과물의 하나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저서를 통해서 베버가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공생관계를 주요 인식 동기로 가지고 있었다는 오역이 나오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근대 초기에 한정된 독일 제국의 자본주의의 형성에 끼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만을 베버가 인정한 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연구는 어디까지나 금욕주의라는 청교도적 정신이 경제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서술한 경험주의적 문화과학의 첫 결실로서 의의가 있다.

고전에 해당하는 비교서인만큼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지도 13년이 된 책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생생히 현대적임에 틀림없다.
 

(200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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