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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1권을 읽고

책들 Bücher 2010. 2. 4. 09:09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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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부 도서관에 반납하고 난 후 2권째를 빌리려 했는데 대출이 안된단다. 열흘 전에 1,2권을 모두 빌렸다가 아무래도 2주내에 1,2권을 읽기에는 속도가  더뎌 2권은 지난 주말에 미리 반납했다가 어제 대출하려던 것이었는데, 반납한 책은 1주일이 경과해야 대출이 된다는 것이다. 이 무슨 사금융도 아니고..

『파르마의 수도원』1권의 전반부는 우쭐대는 귀족 청년 파브리스가 자신의 우상인 나폴레옹을 흠모하며 워털루 전투에 나서는 내용이다. 책 뒷날개에서는 마치 우리의 주인공이 이 대회전의 중심부에 있는 듯한 홍보성 문구를 늘어놓지만, 고작 이 싸움의 주변부에서 돈키호테처럼 허세를 부리는 우스꽝스러운 참전기일 뿐이다. 마치 임권택의 『취화선』에서 조선말기의 평민 화가 장승업이 일제의 침략이나 동학농민전쟁 등 시대의 대사건을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듯 파브리스는 워털루 전투의 주변부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와 비교해, 스탕달(1783~1842)과 동시대인으로서 워털루 전투를 그 중심에서 다룬 작가는 빅토르 위고(1797~1885)다.  스탕달과 달리 위고는 나폴레옹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백과사전적 지식과 서사시적 표현으로 이 대회전의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스탕달은 호평받는 고전 작가로 자리매김해 있는듯 하나, 내가 보기엔 당시엔 통속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귀족사회의 로맨스와 정쟁으로 얽히고 뒤섞인 이야기는 오늘날의 통속 사극가 뭐가 다를까. 재미는 있지만 『레 미제라블』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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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책들 Bücher 2010. 1. 24. 13:58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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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 박영근 역, 민음사 2007, 419페이지). 오랜만에 읽어보는 지루한 고전이다. 무섭게 다작을 했던 작가에게 이 작품은 그의 관심대상인 사회처럼 거대한 톱니바퀴인 그의 작품전체(91편)의 한 부품일 뿐이다. 즉 이 고리오 영감이라는 <인간희극>의 단일 배역으로 나오는 이 장편은 발자크가 시도한 당대의 총체적 사회연구의 결과물인 대작 <인간희극>의 조연 배우 정도일 뿐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라스티냐크와 보르탱, 뉘싱겐 남작 등은 <인간희극>의 작품들에 재등장하는 다수 출연자이다.  

소설의 내용은 『리어왕』을 연상시킨다.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인 뉘싱겐 부인의 정부로 나오는 야심찬 법과 대학생 라스티냐크가 리어왕의 막내딸 역할을 한다. 수다스러운 인물묘사는 도스트예프스키를 연상시킨다. 아놀드 하우저의 지적대로 플롯은 엉성하지만, 거칠고 왕성한 집필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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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Sanctuary, 1931)

책들 Bücher 2010. 1. 15. 09:15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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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읽었다(이진준 역, 민음사 2009, 436페이지). 월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라는 이름을 어디서 본 듯 하여 두터운 책을 선뜻 선택했는데 읽기가 쉽지 않다. 책 뒷날개의 줄거리를 미리 봤다면 읽기에 좀더 편했을 테지만 의도적으로 읽지 않았다. 다 읽고 봤더니 완전 스포일러다. 포크너가 1950년대까지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에 들락거리며 대본과 각색의 작업을 했던 전력이 있어서인지, 이 소설은 마치 시나리오같은 느낌이 든다.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세부 묘사의 면에서 카메라에 정밀하게 노출되어 있지만, 이 카메라는 마치 술이나 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뭔가 뒤틀리고 혼탁하다. 모더니즘의 문체를 파괴한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게 읽힌다는 뜻이다.

1920년대 가공의 미국 남부 촌락인 잭슨과 멤피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오늘날로 보면 신문의 사회면에 짤막하게 실릴 사회병리의 하나 정도라는 충격을 준다. 당시엔 사디즘 문학으로 평가되었다고 하지만, 포크너는 전반부에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아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후반부에 가서야 알 수 있다. 사실 묘사 보다는 인물들의 행위에서 유추한 심리묘사에 집중한 것이다. 인칭에 대한 표현도 뒤죽박죽이라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는건지 의심스러울 정도고 어떤 사실인지(예를 들어 레드와 포파이가 미스 레바의 사창굴에서 했던 일) 파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뭔가 정형화되고 분명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의미보다는 굴절되고 마비되고 뒤엉킨 남부의 현실을 반영한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비교하면, 시종일관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다. 

역자는 포크너 소설의 중심무대인 잭슨시가 가공의 도시라고 했는데, 미시시피에는 실제로 잭슨시가 있다. . 1950년 포크너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삶을 개척해 가는 흑인들이 그려지지만, 『성역』에서는 도착적인 백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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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증거

책들 Bücher 2009. 12. 18. 09:03 Posted by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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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중) : 타인의 증거』, 용경식 역(까치, 2009). 

5~6년 전에 이 시리즈의 상편과 하편만 보았었는데, 지난 주말 우연히 마을 도서관에서 중편을 발견해 읽었다. 그때 서점에서 중편은 절판되었다시피 자취를 감췄는데, 중편의 판쇄를 보니  10번 찍혔다. 상편에 비해 분위기가 무겁지만 하편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고, 담담하면서도 자극적인 표현과 잔혹스러움이 부곽된다. 하편은 이 시리즈와 무관하나 상편과 중편은 연결된 스토리로 봐도 좋겠지만, 별개로 보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듯 하다. 

전란의 참상이 사회적 기형을 초래하는 것을 루카스, 야스민, 마티아스, 클라라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제시된다. 이국의 누나집으로 간 빅토르의 편지는 또다른 비극적 소품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루카스는 사라지고 그의 유품은 그의 형제 클라우스에게 남겨진다. 형제의 유품, 특히 방대한 노트를 호텔에서 밤새 읽은 클라우스는 40여년간의 세월의 간격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한다. 빅토르는 살인죄로 사형판결이 처해지자, 왜 사회는 자신과 같은 범죄자가 책을 내어 사회에 기여하도록 기회를 주기 보다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죽은 자로 남겨지게 하는가라고 묻는다. 죽은 자가 세월이 지나도 남기는 것은 뼈와 글이다. 그런데 글이라는 증거는 타인의 존재가 자체가 의심된다고 해도-호적부상 신원확인이 안된다 해도-  거짓말처럼 유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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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고전 <논어>의 512중 130장을 현대적 언어를 입혀  공자와 제자들의 가상적 이야기로 풀어 쓴 책이다. 도가 풍의 해석이 보인다. 예를 들어 자공이 가난해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해도 교만함이 없다는 자신의 품성에 대해 말하자  공자는 가난해도 즐거우며, 부유해도 예를 갖춘 만 못하다고 핀잔을 준다(學而). 또한 자공이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낼 만하다고 내세우자 공자는 자공이 호련(瑚璉)과 같은 큰 그릇이라고 치켜 세워준다. 호련은 종묘의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물을 담는 그릇으로 큰 벼슬을 상징한다. 그러나 호련은 자공이 한자리를 차지 하겠지만, 이것은 자신의 재능만 부리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재능을 키워주지는 못하며, 결국 스스로를 굳어진 틀에 가두는 것으로 그치는 것을 상징한다(公冶長).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사소한 일을 맡더라도 단지 수고로움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 일 자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마음이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도 스스로 굳어지지 말고 유유히 삶을 풍랑하듯 즐기라는 무위(無爲)와 풍류의 사상이다.  멋진 말이며 어떤 울림을 주며, 그래서 여전히 논어는 고전이겠지만, 사실 너무 고고한 감이 있다. 어쩌면 공자는 히피문화의 원조일 수도 있다. 고전을 현대적 세트로 설정하고, 여기에 그 당시대의 등장인물을 끌어들여 전개하는 방식이 신선해 보이진 않지만 따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가벼워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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