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와 모방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비극이란 위대한 인물의 행위와 삶,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 형식이고, 희극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의 행위를 모방한 형식이다(우스꽝스럽다는 것은 혐오와 재미를 유발하지만 고통은 주지 않는 것이다). 그의 시학은 의도와는 달리 비극만 다루고 있는데, 비극의 구성요소는 그 중요성에 따라 플롯, 성격, 사상, 조사, 노래, 장경(spectacle)으로 이루어진다. 플롯은 사건의 결합으로서 이야기의 구조, 밑바탕을 말하는데 사건의 급격한 전환과 새로운 국면의 대두가 플롯의 매혹적인 부분이다. 성격은 인물의 성질로서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내적 규정이다. 재미있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상을 성격 다음으로 배치한 점이다. 사상이란 상황에 따라 내놓을 수 있는 말로써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조사는 이런 사상을 매끄럽게 표현하기 위한 수사적 기교이며 장경은 무대장치를 의미하나, 고대 그리스에서 무대장치란 배우의 분장과 의상, 가면 등 소품에 한정된다.
시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비극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얘기로 흐르는지 의아할 수 있으나, 고대 그리스에서 시인이란 단지 글만을 짓는 작가가 아니라 현대적으로 말하면 작가주의적 무대 연출가에 해당한다. 공연시간에도 당시와 현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극의 경우는 하루 단위(12시간~24시간)의 크기를 갖는다(주1). 영화처럼 두세 시간에 내에 이야기를 압축,집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TV의 연속극처럼 장기간의 크기(megethos)를 갖는다. 밤새 지속되는 공연을 1년에 한두차례 보면서 삶의 애환을 정화시키는 방식은 거칠게 보면 몇주에 걸쳐 드라마를 토막내서 시청하는 현대의 시청자와 별반 다름이 없겠지만, 방식과 효과의 면에서는 물론 상이할 것이다. 인터넷의 발전은 TV 드라마 보기를 장시간의 크기로 연속적으로 시청할 수 있게 한 점에서 고대와 같이 연속적 관람에 가까워 졌지만 무대에서 이렇게 공연을 하는 경우는 바이로이트 축제처럼 매우 한정될 것이다. 일상의 삶을 제쳐놓고 하루종일 동일한 공연을 본다는 것은 현대인의 생활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시학에서 눈여겨 볼 것은 모방에 대한 관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플라톤은 <국가> 10장에서 시인이나 화가를 이데아를 본뜬 제작물의 모방자라 보면서, 이런 모방 행위를 진실과는 세 단계 멀어진 수상한 기교로 처리한다. 바로 이런 모방에 대한 관점에서도 고대 그리스 철학의 두 산맥은 현격히 갈라진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에서 장년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끝을 지상으로, 노년의 플라톤은 손끝을 하늘로 향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두 철학자의 지향점을 대비시킨다. 수많은 개별성으로 손을 뻗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연학은 좋은 본보기이다. 그가 무질서해 보이는 세계를 파고 들어가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플라톤은 피조물에 대한 단 하나의 이데아, 원본을 설정하고 이 원본의 피조물인 세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연(physis)에 대한 문제 보다는 논리(logos)와 규범(nomos)의 문제에 천착한 플라톤으로서는 피조물의 세계는 불완전한 소멸의 대상이며, 불완전한 피조물의 세계를 모방한 예술은 하찮은 양식이다.
이렇듯 플라톤에 의해 추궁되어 추방될 예술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건져 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단지 운문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비극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종합예술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보다 한결 세련된 논의를 비로서 펼친 것이다.
모방과 유희
계속해서 시학에 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비교해 보자. 시인은 모방자라고 본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입장을 수용한다. 그런데 시인이 행하는 모방은 과연 특정한 행위를 그대로 모사한 것일까? 플라톤은 모방을 그 개별적인 원리는 물론 사용방법도 모른 채 겉만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장식으로 본다(601b, 601d). 따라서 모방은 진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방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유희'에 불과하다(602b). 플라톤 자신이 쓰고 있는 이 '유희'(form of play)라는 말에는 모방을 장차 그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하게 만든 단초가 숨어 있다. 도대체가 회화는 정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며, 사진은 피사체의 영혼까지 담는 것인가?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을 보고 실물을 묘사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할 것이다. 모방은 플라톤이 은연중에 감지하고 있듯이 인간의 행위나 사물의 외관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플라톤은 동일성의 철학에 따라 모방을 가짜인 모사품, 진리가 없이는 있을 수 없을 뿐더러 진리보다 세 단계 떨어진 기술로 처리하지만, 여기서는 아퀴나스의 유출설처럼 진리에 세가지로 농도 차이가 나는 단계가 보인다. 이런 농도의 차이는 진리라는 동일성이 낳은 산물이다. 즉 복제품은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지만 원본을 원본이게끔 하는 질적 충만감에서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토마스 만의 단편 <베니스에서 죽음>을 영화화한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 죽음>을 보고, 이 영화가 원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모사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과연 이 단편에 종속된 재현에 불과할 따름인가? 원작을 바탕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가 원작에 못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장르가 다른 예술형식 사이의 소통을 두고 진위 논란을 부치는 것은 감정가를 매기기 위해 진위를 따지는 진품명품식의 고루한 발상이다. 이것은 시를 모방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귀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의 진정한 기능은 단지 원본의 형상과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는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시는 은유로 넘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는 천재의 표징"으로 본다(1459a5). 여기서는 은유가 다만 비극을 탁월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잔기술에 해당하는 시어체와 복합어, 방언의 적절한 사용과 비교하여 우월하다고 평가되고, <시학>의 다른 부분에서 은유에 대한 별다른 의미부여는 없지만, 진리를 동일성의 일관성으로 파악하려는 이성중심의 전통 철학에 대해 진리를 은유의 양식으로 해소시키려는 감성중심의 해체 철학의 도발적 교전이 조심스럽게 <시학>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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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비극과 서사시의 길이에 관해 청수(lastmarx)님과 짧은 대화가 있었다.
청수 : 서사시의 배경이 몇 주 혹은 몇 년에 걸친 이야기라는 것이지 공연이 며칠간 진행된다는 건 이상하군요. 서사시를 공연했다는 것도 그렇고요. 판소리처럼 몇시간 동안 암송하지 않았을까요.
갈대아 : 글쎄요, 저는 사건의 경과시간을 공연시간으로 이해했습니다. 48페이지 주14번을 보면 "그리스 극은 보통 동틀 녘에 시작하며 또 실제로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모든 작품에서 드라마 내의 사건을 위하여 12시간이며 충분하다'는 역자의 설명을 볼 때 공연시간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좀더 알아봐야 겠군요. 그리고 이 글은 좀더 쓴 후에 카페에 올릴 예정입니다.
청수 : 비극의 경우 하루에 마친다는 거죠. 서사시가 며칠 동안 공연한다는 이야기는 없지 않나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의 경우 사건의 경과 기간이 무려 16년이나 되지요.
갈대아 : 역자 천병희는 길이의 문제에 관해 3가지 해석을 제기하는데, 두번째 해석이 바로 길이를 비극의 공연 또는 서사시 낭송에 필요한 시간이라고 합니다(47페이지 주 13참조). 또한 법정 변론에는 시간제한이 있으나 드라마 공연에는 시간제한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58페이지 주 4번) 길이에 대한 두번째 해석을 따른다면 장기간의 공연 시간이 있었던 셈이죠. 47-48페이지 본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비극은 가능한 한 태양이 일 회전하는 동안이나 이를 과히 초과하지 않는 시간 안에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서사시는 시간적으로 제한이 없다. 이것이 양자의 차이점이다." 이 점에서 서사시가 며칠간 지속될 수 있다고 유추를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는 길이를 공연 시간이 아닌 사건의 경과시간으로 본다고 하는군요. 47페이지 주석 13번을 보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모두 사건의 경과 기간이 수주일 이상씩이다" 라고 되있는데, 수주일 이상에는 16년도 포함되죠.